• 오타쿠(おたく)……

    한 때는 만화나 영화, 비디오 게임 등에 심취해
    사교성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비견되었으나
    지금은 단순한 ‘마니아’의 수준을 넘어서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바뀌어 있다.

    한국에 와서 변형된 ‘오덕후’나, ‘덕후’는
    아직 변화되지 않은 시대의 산물로 비하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지만, 

    일본문화 전문가인 ‘프레드릭 쇼트’는 오타쿠가 처음엔
    ‘정신적으로 사회적인 위협이 될 수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다가
    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야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오타쿠는 분명 정상적인 범주 내에서는 극단적 ‘또라이’들이 맞다.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다가도 자신의 오타쿠 성향에 맞는 이야기가 나오면
    지구상 누구와도 견줄 수 있을 정도의 방대한 정보를 거리낌없이 뱉어낸다.

    하지만, 왜 그런 또라이들에게 세계의 시선은 미래를 향한 조건으로 그들에게 관심을 둘까?

    개인보다는 ‘민족’이란 밑도 끝도 없는 단어 앞에 뭉친
    집단주의 성향을 가진 이 나라에서 그런 오타쿠들은
    아직까지도 시대적 흐름을 타지 못하고
    그냥 또라이로만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일까?

    후자는 간단히 답을 낼 수 있다. 

    근거를 알 수 없는 ‘민족’이란 단어 앞에 뭉쳐 개인보다는 집단주의 성향을 드러내는
    현 대한민국의 상황으로는 이들의 존재는 그저 또라이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 세계는 이제 그런 또라이들에게 기회를 제공해주는 형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일단 오타쿠의 탄생과정을 보면 재미있는 공통성이 있다.
    모두들 힘든 시기를 겪지 않고 비교적 풍요로운 시기에 태어나
    먹고 살만한 청춘들이 오타쿠가 되어간다는 것이다.

    미국의 먹고 살만한 놈들이 히피가 되거나,
    있는 집안 자식들이 공산주의자가 되어 가는 과정과도
    비슷한 형식이지만 방향성이 완전히 다르다.

    한국이라고 별반 차이점은 없다.
    풍요로운 세상에서 태어났지만 사회에 대한 허무주의,
    기성층의 정체, 대립과 경쟁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그들은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하며 오타쿠가 된다.

    물론 어디에서고 그 태생은 사회부적응자의 모습으로 좋지 않은 이미지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세상은 그들에게 주목하기 시작했다.
    왜? 그들은 어느 순간 최고의 소비자이면서, 최고의 생산자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제일 처음 오타쿠에 주목한 대상은 바로 ‘기업’들이다.
    그들은 먼저 현실을 외면하고 가상세계에 빠져드는 오타쿠들의 습성에 주목했고,
    그 잠재적 소비능력을 계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계산은 철저히 맞아 떨어져
    수많은 오타쿠 관련 상품과 매장들은 호황을 누리기 시작했다.
    아무리 세계경제가 위기네, 나라 살림이 위험하네 해 봤자 그들에겐 소용없다.

    오타쿠들은 자신이 사랑하는 자신들의 욕망의 대상을 가지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했다.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고객인 ‘오타쿠’를 확보한 기업들은
    짭짤한 수익을 올리며 지금도 호황 중이다.

    그러다가 오타쿠들에 의해 일본의 만화와 제패니메이션들이
    전세계적으로 성공하자 이제는 ‘투자자’들이 그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비단 일본의 오타쿠 문화 현상만이 아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대부분이 아마도 ‘페이스북’을 하실 것이다.
    그러면서 여러분은 페이스북의 창시자인 ‘마크 주커버그’의 성공에 부러워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누차 마크 주커버그가 아닌 ‘숀 파커’에 주목하라고 떠들고 다녔다.
    왜냐하면 또라이들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미친 놈들이나 하는 것이다.

    결론은 여러분들이 컴퓨터와 SNS라는 새로운 무기에
    오타쿠가 되지 않는 한 마크 주커버그가 될 확률은 없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가 백만장자가 된 것이 부러운 것이라면 그렇게 돈을 벌게 하고
    자신은 주커버그 같은 오타쿠를 이용해 돈을 챙기는 ‘숀 파커’가 되는 것이 현명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냅스터’의 창시자였던 숀 파커는 주커버그가 재미로 만든 ‘페이스북’의 성공 가능성을
    알아봤고, 주커버그라는 오타쿠를 이용해 소리소문 없는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 만화의 성공과 새로운 인터넷 세상 SNS로 인해
    이제 오타쿠는 골방에 처박혀 만화 속 캐릭터에 열광하는
    사회적 쓰레기들이 아닌 새로운 산업의 중요한 존재로 자리잡게 됐다.

    그리고, 전세계적으로 문화산업의 틀 안에서
    매우 창조적인 사업들이 이 존재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성공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인간은
    이제 그 이상의 것을 원하고 있고, 

    뭔가 하나에 미쳐버린 이 오타쿠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사람들의 요구에 매우 적절히 이용(?)되고 있다.
    세상은 넓고 또라이들은 많으니 말이다.

    지금 이 나라의 현 상황에 맞춰 쉽게 말하면
    지금 정부가 말하는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모든 핵심적 코드를 바로 이들,
    ‘오타쿠’가 제공해줄 수 있고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을 맡아 일을 해야 하는 공무원 놈들만 모를 뿐이지.
    문광부든, 새롭게 시작되는 미창부든 창조경제와 문화에 관련된 업무를 하는 곳에서는
    이런 오타쿠들은 커녕 현장 전문가 한 사람 구경하기 힘들다.
    있어봤자 이미 현장에서는 도태된 사람들이거나 그저 대단하신 ‘교수’분들만이 보일 뿐이다.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들 중 공무원이 있기를 바라면서 한가지 질문해 보자.
    이미 만들어졌고 정리된 것을 말하고 알리는 ‘교수님’들과
    지금 현재의 상황은 상관없이 새로운 것들 것을 창조해 내는 오타쿠들 중
    과연 누가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에 적합한 인물인지 말이다.

    전문지식 때문이라고? 그런 이유라면 필자의 모든 것을 걸고 내기 한판 제안할 수도 있다.
    누가 더 전문적인지 말이다. 세상에서 한 분야에서만큼은 가장 많은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존재는 교수가 아닌 ‘오타쿠’라는 것에 필자의 모든 것을 걸겠다.

    더군다나 그들의 정보는 너무나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재미가 있다.
    그들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즐기기 때문인 것이고,
    그것은 대중들에게 산업적으로든 문화적으로든 지식적으로든
    가장 빠르게 흡수될 수 있는 탁월한 형식으로 보여진다.

    예를 들어, 가장 대중들에게 어렵다는 경제 분야를 가지고 말해 보자.
    일반 대중들이 경제학자들의 글을 읽을까, 미네르바의 글을 읽을까?
    지식적인 정보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오타쿠들의 힘이
    위대한 것은 실전이 없거나 실전에 약한 교수 같은 지식이 아니라
    철저하게 현실적이고 대중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필자는 한가지 상상을 해본다.
    이제 앞으로 펼쳐질 증강현실의 세계에서 가장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부류가 누구일까?
    이미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져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냈던
    오타쿠들의 정보와 기술력은 그 증강현실의 문을 여는 아주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단지 그들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
    새로운 세상을 구축할 자본과 투자자, 
    그리고 또 다른 오타쿠들과의 조우를 연결할 중개자이다.

    오타쿠가 아닌 이상 문광부나 미창부가 고민해야 할 부분은 보여주기식 행정,
    드라마 지원이나 하는 한심한 것이 아니라 바로 이 부분이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주커버그(오타쿠)’가 되려 하지 말고
    ‘숀 파커(투자자 or 중개인, 배급업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건 비단 관공서에게만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가들이나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 개개인 모두께 드리고 싶은 말이다.

    오타쿠는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지 혼자 발광 떨면서 하다 보니 되는 것이다.
    이제 세상은 그들에게 주목하고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이 나라도 그들에게 주목해야 한다.

    언제까지 꽉 막힌 우물 안 개구리 신세로 스스로 전락해서
    헐리웃에서 만든 ‘겨울왕국’에 나오는
    한국인들 이름이나 보면서 좋다고 헬렐레~ 하고 있을 것인가?

    왜 우리나라의 문화산업과 창조경제를 일으켜 세울 오타쿠 인력들을 그렇게 내쫓기만 할 것인가?
    그렇게 하면 ‘겨울왕국’의 월트디즈니가 한국에 용돈이라도 줄 것 같은가?
    극장을 찾는 대한민국의 관객들 호주머니에서 나온 돈만 월트디즈니로 들어갈 뿐이다.

    필자는 그저 한국의 ‘숀 파커’가 그리울 뿐이다.
    제발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꽉 막힌 기업가들과 공무원들이 이제라도
    오타쿠에 관심을 두길 바라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도 스스로 노력해서
    ‘숀 파커’가 되도록 노력하길 바란다.

    여러분들이 상상할 수 없는 많은 정보와 전문성을 가진 오타쿠를 활용하길 바란다.
    문화융성이던, 창조경제던, 그냥 돈 많이 버는 것이던 방법은 거기에 있다.
    인터넷의 바다는 광대하고, 인터넷의 대륙은 얼마든지 펼쳐져 있다.
    ‘21세기 콜럼버스’는 나아갈 준비가 다 되어 있고,
    이제 누군가 배를 제공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 대상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당신!!!’이길 바란다.

    [편집=윤희성 기자 ndy@new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