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로당 무장집단 역할에 일체 언급 없고, [무장봉기세력]이라 왜곡.
  • 천재교육 교과서,
    4·3사건을
    [통일정부수립 주장 무장봉기]라고
    미화(美化)


    남로당 무장집단의 역할에 대하여는 일체 언급이 없고,
    [무장봉기세력]이라 왜곡.


    趙甲濟    

  • 대한민국 정부가 공산무장집단을 '봉기세력'이라고 왜곡, 미화한 교과서를 채택한다면 북한공산정권을 主敵으로 보고 있는 국군장병들을 혼란에 빠트릴 것이다. 제주도민들과 제주도가 교육부에 항의해야 할 것이다. 

    지난 8월30일 교육부 검정을 통과한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2014년부터 사용) 현대사 부분에선 사실을 왜곡하고 헌법정신을 무시하고 좌익과 북한정권을 감싸는 기술과 편집이 많다. 309페이지 소제목 '정부 수립을 전후한 갈등'에서 제주 4·3사건은 이렇게 기술되어 있다.


    1947년 3·1절 기념 시위에서
    경찰의 발포로 사상자가 발생하자,
    제주도민들은 이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관리들까지 가담한 총파업을 일으켰다.
    미군정은
    육지에서 경찰과 우익 청년 단체를 파견하여
    이를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많은 주민이 가혹한 탄압을 받아
    미군정에 대한 반감이 높아졌다.
    이러한 가운데
    1948년 4월3일 제주도에서는
    남한만의 단독 선거 반대와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제주 4·3사건).
    무장 봉기 세력은
    각지의 경찰서와 서북 청년회 등 우익단체를 습격하였고,
    미군정은 경찰과 군대를 동원하여 무력 진압에 나섰다.
    이후 무장 봉기 세력과 토벌대 간의 유혈 충돌은
    극한 상황으로 치달아
    수만 명의 제주도민이 희생당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제주도 3개 선거구 중 2개의 선거구에서
    국회의원을 선출하지 못하였다.


      1. 천재교육은 남로당 공산주의자들이 무장폭동의 주동세력이었다는 확정된 사실을 애써 감추어주려고 그랬는지 남로당에 대한 언급을 생략하고, '무장 봉기가 일어났다'고만 적어 마치 제주도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으로 오해하도록 만들었다.
     
      2. 경찰서를 습격한 공산계열의 무장반란세력을 '무장봉기세력'이라고 미화하였다.
    이 교과서로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 사건이 공산주의자들과 관계 없이 일어난 정의로운 민중봉기이고 국군과 경찰이 이를 가혹하게 진압하였다고 생각할 것이다.
     
      3. '무장 봉기 세력과 토벌대 간의 유혈 충돌'이란 표현을 함으로써
    남로당 무장반란 세력을 '봉기세력'이라고 美化하고,
    국가가 동원한 군대와 경찰을 '토벌대'라고 비하하고 있다.
     
      4. 2003년 제주4·3사건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발간한 진상보고서도
    공산무장반란세력의 폭동과 학살을 명시하였다. 관계 대목을 소개한다.
     
      <■ 발발원인은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 우선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계기로 제주사회에 긴장 상황이 있었고, 그 이후 외지출신 도지사에 의한 편향적 행정 집행과 경찰·서청에 의한 검거선풍, 테러, 고문치사 사건 등이 있었다. 이런 긴장상황을 조직의 노출로 수세에 몰린 남로당 제주도당이 5·10 단독선거 반대투쟁에 접목시켜 지서 등을 습격한 것이 4·3 무장봉기의 시발이라고 할 수 있다.
     
      ■ 이 과정에서 남로당 중앙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었다는 자료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남로당 제주도당을 중심으로 한 무장대가 군·경을 비롯하여 선거관리요원과 경찰 가족 등 민간인을 살해한 점은 분명한 과오이다. 그리고 김달삼 등 무장대 지도부가 1948년 8월 해주대회에 참석, 인민민주주의정권 수립을 지지함으로써 유혈사태를 가속화시키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판단된다.
      
      ■ 무장대는 남로당 제주도당 군사부 산하 조직으로서, 정예부대인 유격대와 이를 보조하는 자위대, 특공대 등으로 편성되었다. 4월3일 동원된 인원은 350명으로 추정된다. 4·3사건 전기간에 걸쳐 무장세력은 500명 선을 넘지 않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무기는 4월3일 소총 30정으로부터 시작해 지서 습격과 경비대원 입산사건 등을 통해 보강되었다.>
     
      5. 좌파 인사들이 주도하였던, 좌파정권 시절의 4·3사건진상규명 보고서보다도
    천재교육 교과서는 더 좌편향되고, 더 심하게 사실을 왜곡하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공산무장집단을 '봉기세력'이라고 왜곡, 미화한 교과서를 채택한다면
    북한공산정권을 主敵으로 보고 있는 국군장병들을 혼란에 빠트릴 것이다.
    제주도민들과 제주도가 교육부에 항의해야 할 것이다.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