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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호치민 유해가 안치된 건물 ⓒ뉴데일리
    ▲ ▲ 호치민 유해가 안치된 건물 ⓒ뉴데일리
      

    베트남 수도 하노이는 자랑꺼리가 많은 곳이다. 

    관광객들은 특히
    <호치민>(1890.5.19.~1969.9.2,)이 얼마나 존경받는 지도자인지를 실감한다.
    하노이 중심지에 자리잡은 호치민 광장엔
    미국과 프랑스를 물리치고
    독립을 쟁취한 베트남의 영웅 <호치민> 무덤이 자리잡고 있다.

    광장 뒷편에 자리잡은 호치민 관저와 숙소는
    베트남 국민에게나 외국인에게나
    베트남 국민의 위대함을 보여주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호치민은 결혼도 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았으며, 전쟁때는 앞장서서 모범을 보였다.

    일본이 패망한 이후
    프랑스가 베트남을 다시 점령하려고 들어왔을 때도 싸워 이겼다.
    중국 공산주의 세력의 남하를 막기 위해 미국이 베트남에 들어왔을 때도 이겨냈다.

    호치민은 베트남은 물론이고,
    서방세계의 수많은 지식인들에게 열렬한 환영과 찬사를 받았다.
    그가 죽었을 때 개인 재산이라고는 2,000달러밖에 없었다든지,
    국민들이 어렵게 사는데
    프랑스 총독들이 사용하던 넓은 관저를 쓸 수 없다고 옮겼다든지,
    프랑스에서 제공한 푸조 승용차를 손대지 않아 아직도 전시되어 있다든지 하는
    수많은 일화는
    듣는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심어준다.

    살아있을 때 부터 엄청난 지지를 받은 지도자였기에,
    호치민은 자신이 죽은 다음에 신격화될 것을 우려했다.

    그래서 묘지에 묻지 말고 화장해서 베트남 영토에 뿌리라고 유언했다.
    그렇지만 그를 이어 지도층을 형성한 공산주의자들은
    유언을 무시하고 하노이 한 가운데 커다란 광장을 만들어 놓았다.

    그리고 커다란 무덤을 만들어 방부처리한 시신을 안치하고,
    베트남 주민들이 참배하러 오는 숭배의 제단을 만들었다.

    하지만, 호치민은 결정적인 한 가지 실수를 저질렀다.

    그가 파리에서 공산당에 가입하고
    구 소련에 갔을땐 레닌과도 만나고 했지만,
    그가 1945년 9월 2일 호치민광장에서 정부수립을 선포했을 때 
    [베트남 민주공화국]을 선포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있다.

    이때 발표한 선언문은 미국 독립선언서와 비슷한 인상을 풍긴다.

    하지만, 호치민은
    프랑스의 욕심과 중국의 압박
    그리고 베트남 내부에서의 경쟁 등에서 살아남아 
    베트남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소련의 지지를 얻으려 했다.

    결국 호치민은 얼마 안 있어
    [민주공화국]을 버리고
    [사회주의공화국]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이 일을 계기로
    소련의 영향력을 강하게 받는 참모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 들었으며 
    베트남은 공산주의가 지배하는 일당 독재체제로 굳어지고,
    미국과 무력대결을 벌이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 ▲ ▲ 기념관 안에 있는 호치민 동상 ⓒ뉴데일리
    ▲ ▲ 기념관 안에 있는 호치민 동상 ⓒ뉴데일리
     


    베트남과 대한민국은 몇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일본의 패망과 함께 독립을 쟁취한 점,
    미국과 소련에 의해서 남북으로 분단이 되었고,
    동족끼리 남북전쟁을 치룬 점도 비슷하다.

    관광객들이 넘치는 호치민 광장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생각이 났다.

    이승만 대통령은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독립을 이뤄냈을 뿐 아니라,
    공산주의 지뢰밭(죽음의 길)을 피해 안전한 [생명의 길]로 인도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그를 기념하는 번듯한 장소나 시설도 없다.

    <호치민>은 가장 중요한 지점에서 노선을 바꾸는 큰 실패를 저질렀다. 
    [민주공화국]으로 가려 했지만 주변상황이 여의치 않자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바꿨다.

    <호치민>은
    민주체제와 사회주의 체제의 차이점에 대한
    굳은 이해와 신념이 부족했던 것 같다.

    이승만 대통령은 독립을 하는 것 못지 않게,
    어떤 [이념]을 바탕을 선택해야 하는지 의지가 확고했다.

    <호치민>이 [이념]을 바꾼 것과는 달리,
    이승만 대통령이 [이념]에서 흔들리지 않은 것이
    오늘날 베트남과 대한민국의 차이를 가져왔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안다는 말이 있다.
    지금 대한민국과 베트남이 가진 역량과 
    국제사회에서의 위치 등의 [열매]를 보면
    과연 누가 더 미래를 내다보는 현명한 지도자였는지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