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선진화포럼 /선진화포커스 제130호>
    “국민소득 3만달러 못 가는 건 시민의식 부족 때문”

    <주간조선 제2249호 ECONOMY 인터뷰>

    손 병 두  / 한국선진화포럼 회장 
     


  •   지난해 12월 재단법인 한국선진화포럼 회장으로 선임된 손병두(72) 회장은 “도덕 재무장 운동을 벌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국선진화포럼은 2005년 남덕우 전 총리가 발족한 비영리 민간포럼. 손병두 회장은 지난 3월 13일 포럼 산하에 ‘시민의식특별위원회’(위원장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를 만들었다. 시민의식 선진화 등을 담당하는 기구로 박효종 서울대 윤리교육학 교수 등 30명의 사회원로들로 구성돼 있다. 한동안 ‘경제민주화’에 밀려나 있던 ‘선진화’ 논의를 시민의식 선진화부터 다시 재점화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그가 주창하는 ‘도덕 재무장’은 최근 ‘별장스캔들’ 등으로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지난 3월 21일 서울 용산구 동자동 게이트웨이타워에 있는 사무실에서 손병두 회장을 만났다. 이곳은 삼성꿈장학재단 이사장실이고, 손 회장은 숙명여대 이사장이기도 하다. 손병두 회장은 “시민의식 운동에 팔을 걷고 나선 것은 고(故) 김수환 추기경의 유언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김수환 추기경은 2009년 2월 선종하기 두 달 전쯤 서강대 총장으로 있던 그에게 조카사위인 김호권 카이스트 교수를 보내 말을 전했다. 한국 사회가 선진화가 안 된 까닭을 나름대로 걱정해 구두로 전한 사실상 마지막 유언이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우리 민족이 매우 선한 심성인데 도덕 윤리 면에서 크게 성숙하지 못하고 법질서가 없다. 세계에서 제일 높은 IQ를 가진 국민인데, 지적으로 세계에 기여도가 너무 낮다. 이웃과 더불어 잘 살아가야 하는 아름다운 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못함을 크게 아쉽게 생각한다.”(2008년 12월 19일) 이 내용은 차동엽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수)가 쓴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위즈앤비즈)이란 책에서도 소개됐다. 천주교 신자인 손병두 회장은 김수환 추기경에게 조언을 종종 구해왔다. 서강대 총장으로 있다가 2009년 KBS 이사장으로 옮길 때도 거취를 고민하는 그를 김수환 추기경이 끌어줬다고 한다.

      “학교는 벽 있는 교실이고, 방송은 벽 없는 교실이다. 국영방송 이사장으로 가면 국민들을 더 잘 교육시킬 수 있다”는 것이 김수환 추기경이 그에게 던진 말이었다. 그는 서강대 총장으로 있을 때도 4년간 월급을 한 푼도 받지 않고 봉직했다. 손 회장은 “한국이 지난 2007년 국민소득 2만달러를 돌파한 이래 수년째 소득 3만달러대 선진국에 진입을 못하고 있는 것은 시민의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살률, 이혼율, 낙태율, 출산율, 부패지수, 행복지수 중 어느 하나 괜찮은 것이 있냐”고 꼬집었다.

      반면 일본과 싱가포르 같은 경우는 국민소득 2만달러에 진입한 지 5~6년 만에 소득 3만~4만달러대의 선진국으로 진입했다. “선진화는 사회적 자본의 축적 없이는 절대 안 된다. 선진국이 되려면 시민의식과 같은 소프트파워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 중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준법정신이다. ‘국회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덕수궁 앞 쌍용차 농성장’과 같은 예를 들었다. “불법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워싱턴D.C. 시장마저 수갑이 채워진 채 경찰에 연행되는, 법질서 집행이 엄격한 미국 같은 데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란 것이 그의 말이다.

      “남을 배려하는 문화가 부족하다”는 것도 그가 지적하는 부분이다. 그는 “재채기를 할 때 우리는 손으로 입을 가리지만, 미국 아이들은 옷소매로 입을 가리고 할 것을 철저히 교육받는다”며, “이는 감기가 남에게 손으로 옮겨질 것을 배려한 것”이라고 했다. 이 같은 시민의식 교육을 초·중·고는 물론 유아원, 유치원 단계부터 해야 배려와 같은 사회적 자본이 축적되고 비로소 한국이 선진국 반열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정직’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너는 거짓말쟁이’라는 욕이 가장 수치스러운 욕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거짓말쟁이’란 말을 일상에서도 흔히 쓰지 않느냐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심지어 “집에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 부모들이 ‘아빠 없다고 해’라며 아이들에게 거짓말을 하게끔 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지 않냐”는 것이다. 그는 “요즘 얘기되는 ‘정실자본주의’ ‘카지노자본주의’와는 달리 원래 자본주의는 도덕 과 윤리에 기반해 꽃피웠다”고 말했다. 일례로 아담 스미스가 원래 도덕교사였다는 점을 들었다. “기업들도 도덕적·윤리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면 욕을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경련 부회장을 지낸 그의 말이다. 이에 손 회장은 ‘도산 안창호’(1878~1938)선생을 역할모델로 삼아 시민의식 고양과 함께 도덕과 윤리 고양 운동을 벌일 생각이다.

      그에 따르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 미국 캘리포니아 등지로 건너가 농장에서 일한 한반도 이민 1세대들은 초창기 흑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도산 안창호 선생은 이민 1세대를 대상으로 시민의식 등을 강연해 전혀 다른 사람들로 바꿔 놓았다고 한다. 이에 미국의 농장주들은 “당신들의 지도자가 누구냐”며 안창호 선생을 수소문해 찾았고, 안창호 선생에게 백지수표까지 흔쾌히 건네면서 그가 미국에서 동포들을 교육하는 데 많은 지원을 했다고 한다. 이후 미국에서 한국 이민 1세대들은 ‘부지런하면서도 시민의식이 있는 사람들’이란 평판을 서서히 얻게 됐다.

      미국 현지에는 지금도 안창호 선생을 기리는 기념관이 남아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30명으로 구성된 시민의식특별위원회 위원들이 언론 칼럼과 인터뷰 등을 통해 시민의식을 재정립하는 데 나설 예정”이라고 했다. 이 밖에 9개 대학생단체 회원과 사회 원로들이 함께 참여하는 월례 토론회 등을 통해 시민의식을 강화하고 군내 정훈교육 강화도 건의할 방침이다. 손병두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당선 직후 만난 자리에서도 도덕 교육 등 사회적 자본 축적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면서 “아무리 법을 정교하게 만들어도 시민의식이 바뀌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