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을파소‧황희‧이원익 같은
    ‘명재상’ 어디 없소?


     인사검증 두려워 국무총리 마다하는 썩은 지도층들
     
    오 윤 환


  • 연암(燕巖) 박지원은 ‘양반전’에서 ‘양반’을 이렇게 정의했다.

    "배고파도 참고,
    추위에 견디며,
    가난함을 입밖에 내지 않고,

    기침일랑 입을 가려 작게 하고,
    손에 돈을 쥐는 일이 없고,

    쌀값을 묻지 말아야하며,
    속상한 일이 있어도 아내를 꾸짓지 말며,

    화롯불에 손을 얹어 불을 쬐어서도 안된다."


    플라톤은 ‘행복론’을 통해 다음을 ‘행복’의 조건으로 꼽았다.

    하고 싶은 수준보다 조금 못다 쓰고 못다 입으며 못다 사는 정도의 재산,
    사람들이 칭찬하기에는 약간 모자라는 품성과 용모의 아내,
    자만하는 것의 절반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한사람한테 이기고 두사람한테 지는 정도의 체력,
    청중의 반수만이 손뼉을 치는 웅변력.


    다음은 조선조 선비 조신(曺伸)은 '자적론'이다.

    아! 나는 가는 곳마다 자적하네, 
    몸이 천하므로 작은 벼슬도 영광이요,
    집이 가난하므로 박봉이라도 원망않네,
    거처하는 것은 무릎만 들이면 되고,
    음식은 배만 부르면 좋고,

    시는 잘 지어 뭣하리 내 뜻이나 담으면 그만,
    글도 노곤하면 그만 읽고 자고 마니,
    이 것이 모두 나의 자적‘自適이로세. 


    박근혜 당선인이 박근혜 정부 첫 국무총리 인선과정에서 ‘30여명’의 대상을 검증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이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거나. 인사청문회를 꺼려 총리 지명에 손사레를 친 것으로 알려졌다.
    ‘일인 지하 만인 지상’인 영광의 ‘재상’ 자리도 마다해야할 만큼 이 나라의 ‘국무총리감’들이 온갖 하자와 흠결 투성이라는 말이다.

    박 당선인이 총리감을 찾다 찾다 김황식 현 총리의 유임까지 고려했었다는 기막힌 얘기까지 들린다.

    허긴 ‘법관으로 존경받아온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검증의 무대위에 올라서자마자 부동산 투기의혹과 두 아들 병역면제 등으로 낙마했을 정도니, 웬만해선 총리로 지명을 받아도 선듯 나서지 못하는 것도 이해가 간다.
    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는 거의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서민의 눈으로 자기를 잠시 돌아봤다면, 국무총리, 헌재소장 지명을 스스로 부끄러워했어야 할 도덕성이다.

    박 당선인의 인사검증 문항은 200개다.
    본인·배우자·자녀의 외국 국적, 위장 전입, 병역 면제 등이 포함됐고, 자식의 군부대 배치·보직과 관련해 청탁했는지’, `교통 법규를 1년 3회 이상 위반했는지’ 등도 있다.
    외제차 리스 여부, 신용카드 관련 항목, 부동산 다운계약서 작성 여부도 있고 `자녀를 특급 호텔에서 결혼시켰나’, `백화점·특급 호텔 VIP 회원인가’, `외제차 보유한 적 있나’ 등도 들어있다.
    ‘국록’을 먹는 공직자라면 당연히 ‘금기’로 삼아야할 것들이다.
     
    공직검증 문항 200개는 일반 서민들에게 `딴 세상’ 얘기다.
    혹시 먹고 살기 위해 과속으로, 아니면 불법주차로 딱지를 뗐는지는 몰라도, 비싼 외제차를 `리스’할 엄두도 못냈을 것이고 `빽’이 없으니 병역을 기피할 수도, 위장 전입, 다운계약서 작성을 할 형편도 아니다.

    그런데 국무총리를 할 법한 지도층들이 서민은 잘도 지키는 법규와 상식을 밥먹듯 위반한 끝에
    그 영광스런 총리직을 마다해야 하는 지경에 처했다.
    이 정도의 수신제가(修身齊家)도 못했다면 총리는커녕 5급, 7급 공무원조차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2010년 지명한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이런 저런 의혹으로 낙마하자 김명식 청와대 인사비서관은 아렇게 안타까워 했다.

    “흠 없는 사람 아무도 없잖아요.
    전쟁의 잿더미에서 압축 성장해 왔잖아요.
    정말 능력 있고 국가에 도움이 될 사람이 많았지만 병역 문제가 있다든지 강남에 집이 몇 채 있다든지로 쓰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그런 걸 다 빼고 나면 쓸 수 있는 인재풀이 너무 적다.” 

    듣기에 따라서는 웬만한 비리는 눈감아 주자는 것으로 들렸다.

    그렇지 않다.
    웬만한 비리를 눈감아주기 시작하면 공직 윤리가 무너지고, 그렇게 되면 반칙과 변칙이 합법과 정상, 상식을 누른다.
    그런 사회는 ‘도둑을 키우는 사회’로 전락하고 만다.

    인사가 아무리 힘들어도 깨끗한 사람, 양심적인 인물 찾기를 포기하면 안된다.
    “예수도 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비명은 인사실패에 대한 변명일 뿐이다.

    박 당선인은 조선조의 황희(黃喜) 정승, 인조반정 이후 정국을 안정시킨 오리(梧里) 이원익(李元翼) 대감, 고구려의 명재상 을파소(乙巴素)같은 재상을 찾는 데 게을리하면 안된다.

    국가투명성은 그 나라의 도덕-윤리수준이다.
    그런데 국제투명성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투명성은 세계 45번째다.
    아프리카의 보츠와나가 30위이니 그 보다도 15위나 뒤떨어지는 후진국이다.

    투명성을 흐린 주범은 생계형 서민사범이 아니라 축재형 지도층의 부정과 비리다.

    국무총리감이 없는 나라,
    돈 몇푼 더 벌겠다고 명예를 팔아먹은 골빈 지도층이 설치는 나라가 부끄럽다.

    소위 사회지도층들은 박지원의 <양반전>과 조신의 <자적론>,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읽고 또 읽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