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미국의 국방장관으로 7일 공식 지명된 척 헤이글 전 상원의원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보수주의자이지만 국제론자로서의 입지를 굳힌 그는 공화당 출신이면서도 줄곧 공화당의 정책에 반기를 들어왔다. 최근에는 민주당 출신인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철학을 같이하곤 한다.

    그런 그를 두고 '독립적인 공화당원', 혹은 '이단아'라고 공화당 인사들은 곁눈질하지만 솔직하면서도 뚜렷한 소신을 지켜온 원칙론자라는 찬사가 따라붙기도 한다.

    그가 살아온 이력도 특이하다.

    1946년 네브래스카에서 4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난 헤이글은 16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가족을 부양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디제이로 활동하던 23세 때인 1969년 동생과 함께 군에 입대해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부상당한 군인에게 수여하는 퍼플 하트 무공훈장을 2개나 받았다.

    제대한 뒤 네브래스카 주립대학(역사학)을 졸업하고는 1977년부터 공화당 존 맥콜리스터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참전용사 출신이지만 반전 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한 인터뷰에서 "베트남전 참전 당시 내가 살아남아 정책에 영향을 미칠 위치에 오른다면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기 위해 모든 일을 다 하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레이건 행정부 출범 뒤에는 연방보훈청 부청장에 임명됐지만 제대군인 연금 삭감 움직임에 반대해 1년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1981년부터 로비스트로 잠시 일한 뒤 휴대전화 회사를 창업해 큰 돈을 벌었으며, 1995년 진로를 바꿔 정치에 뛰어들었다.

    고향 네브래스카주로 돌아가 1996년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 공화당 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2002년 재선되었다.

    상원에서는 주로 외교 분야에서 활동했다. 특히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의 일원으로 규정해 강력히 압박할 때도 미국과 북한 관계 개선을 위한 직접 대화를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가 밀어붙인 이라크 전쟁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애초에는 이라크전 결의안에 찬성했지만 후세인 정권 붕괴 이후 이라크에 미군 추가파병 등에는 적극 반대했다. 베트남전 이후 가장 무모한 외교정책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이란에 대한 제재법에 반대하는 등 유화정책을 고수하고 있고, 반(反) 이스라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온 것은 유명하다.

    공화당 소속이면서 유일하게 국방비 감축을 주장했고, 쿠바에 대한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심지어 네브래스카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 대신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의 DNA'가 부족하다며 공화당 주류세력으로부터 소외당했다. 특히 '반 이스라엘 성향'은 워싱턴 정가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유대인의 정서적 반감을 유발시키고 있다. 그는 "유대인들의 로비가 워싱턴 정가를 위협하고 있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공화당은 그의 국방장관 임명에 매우 부정적이다.

    한때 공화당의 대선주자로 평가됐으나 2008년 상원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으며 2009년 초 임기 종료와 함께 물러나 민간분야에서 일했다. 워싱턴의 대표적인 싱크탱크인 '애틀랜타카운슬'의 회장으로 활동하거나 조지타운대 교수로 재직했다.

    그 과정에서 오바마 대통령을 위한 대통령 정보자문위원회 공동의장과 국방장관 정책위원회 위원도 맡았다.

    오바마 대통령과는 같이 상원의원을 하면서 친해졌으며 한때 오바마의 러닝메이트로 거론될 정도였다. 2008년 7월 오바마 후보 시절 이라크·아프간 순방에 동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