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남부지법, ‘화학적 거세법’ 따른 첫 판결테스토스테론 분비 방해, ‘전립선 암 치료제’ 등 사용 효과 검증되지 않아, 의료계 “약물만으론 한계”

  • 3일 서울남부지법이 10대 중반의 청소년들을 상습 성폭행한 범죄자에게 ‘성충동 약물치료(화학적 거세)’ 명령을 내리면서 ‘화학적 거세’의 절차와 방법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과거에도 화학적 거세는 있었다.

    지난해 5월 법무부 치료감호심의위원회는 교도소에 수감 중인 40대 아동성폭행범에게 ‘화학적 거세’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결정은 위원회 자체의 심사결과에 따른 판단으로, ‘성폭력범죄자의 성충동 약물치료에 관한 법률(화학적 거세법)’을 적용한 것이 아니었다.

    내용에도 차이가 있다.

    위원회의 결정에 의한 화학적 거세는 치료기간이 최대 3년이지만 ‘화학적 거세법’을 근거로 하면 기간은 15년까지 늘어날 수 있다.

    2010년 일어난 ‘조두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화학적 거세법의 첫 적용자가 된 표모(30)씨는 이날 법원의 판결에 따라 3년간 약물 및 심리치료를 받게 된다.


    # '남성호르몬 억제' 약물 3개월마다 반복 투여, 심리치료 병행

    법률에 따른 화학적 거세는 발기능력을 억제하는 호르몬 약물 치료와 심리치료로 나뉜다.

    관심을 끌고 있는 약물치료는 남성의 발기 및 성충동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의 체내 분비를 방해하는 ‘항남성호르몬제(성선자극호르몬길항제)’를 주사나 경구용 알약으로 투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표씨는 치료기간 동안 3개월 주기로 ‘항남성호르몬제’를 반복적으로 투여받는다.

    항남성호르몬제를 정기적으로 반복 투여 받으면 고환 내 남성호르몬의 분비가 사춘기 이전 수준까지 떨어져 성욕이 감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표적인 약물로는 전립선암 치료제인 ‘시프로테론 아세테이트(CPA cyproterone ace-tate)를 비롯해 아세트산 메드록시프로게스테론(MPA medroxyprogesterone acetate), 루크린(루프롤라이드) 등이 쓰인다.

    부작용으로는 남성호르몬 감소로 인한 골다공증, 심폐질환, 근위축등 등이 있다.


    # 1인당 연간 500만원 비용 들어, 화학적 거세법 효과 논란도 계속

    부작용말고도 문제는 있다.

    바로 비용과 화학적 거세법 자체의 효용성 논란이다.

    화학적 거세를 먼저 실시한 국가에서는 그 효과가 생각보다 신통치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현재 약물치료의 핵심은 테스토스테론 억제에 있다.

    뇌에서 분비하는 이 호르몬이 사람의 성욕과 관계가 있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테스토스테론이 성욕과 관계가 있다는 이론 자체에 의문을 표하는 의료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학문적으로 이 논리가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약물치료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약물에 중점을 둔 현재의 화학적 거세법으론 성충동을 억제할 수 없다는 반론이다.

    남성호르몬을 억제하는 약물치료가 성욕 억제효과를 나타낼 수는 있지만 일시적이다.
    약물만으로는 근본적인 치료가 어렵다.

    화학적 거세만 하면 성폭행이 사라질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오해.

        - 비뇨기과 전문의 A씨

    화학적 거세가 성도착증과 관계없는 사이코패스들에겐 효과가 없다는 점도 문제다.

    형사정책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전체 성범죄자 중 성도착증 증세를 보이는 비율은 60% 정도다.
    나머지 40%의 성범죄자는 성도착증과 관계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막대한 비용도 문제다. 

    화학적 거세 대상자는 3개월에 한 번씩 반복적으로 약물을 투여받으면서 6개월에 한 번씩 정기검진을 통해 치료 성과를 확인 받는다.

    약물치료기간이 끝난 뒤에도 보호관찰 심의위원회는 대상자의 상태를 다시 확인해, 추가 치료여부를 판단한다.
    여기서 치료가 더 필요하다는 판단이 나오면 검사는 화학적 거세명령을 다시 청구할 수 있다.

    그런데 비용이 만만찮다.
    화학적 거세에 드는 비용은 1인당 연간 500만원 가량이다.
    약물치료 180만원, 심리치료 270만원, 호르몬 수치검사 50만원 등이다.

    최장 15년 동안 치료를 받는 경우, 성범죄자 한 명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7,500만원 선이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법원의 화학적 거세 명령이 증가할 경우 비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우려를 기우라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

    현행 화학적거세법은 16세 미만의 아동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19세 이상의 사람을 대상자로 정하고 있으나, 오는 3월 19일부터는 피해자의 연령제한이 사라져 성도착증세가 있다고 인정받은 모든 성범죄자가 화학적 거세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화학적 거세를 위한 비용지출은 앞으로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범죄자에게 국가가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붓는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법무부, 성도착증 범죄자 재범 방지에 효과적 반박..미국 주(州) 자료 근거

    그러나 법무부의 판단은 다르다.
    화학적 거세가 성도착증세를 보이는 성범죄자들의 재범을 막는데 큰 기여를 할 것이란 반박이다.

    화학적 거세법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해외 사례를 들어 재반박에 나서고 있다.

    미국 오리건 주의 경우 2000년부터 2004년 사이 가석방된 성범죄자 55명에게 화학적 거세를 실시한 결과, 성범죄 재범률이 0%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법원의 결정으로 화학적 거세가 현실화되면서 이를 둘러싼 사회적 논란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