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대통령이 바뀌면 자동적으로
    7천개 이상 자리가 바뀐다. 시비도 없다.


    우리도 미국의 ‘Plum Book’ 제도를 도입하면 안 되는가?


    李東馥    

    미국은 전 세계에서 미국식 대통령중심제 정부가 오랜 세월에 걸쳐 안정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다. 미국에서 대통령중심제 정부가 비단 성공적으로 착근(着根)했을 뿐 아니라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성공적으로 기능하고 있는 원인은 많은 세계 정치학자들의 끊임없는 연구 과제가 되어 왔다.

    미국에서 미국식 대통령중심제 정부가 성공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원인의 하나로 지적되고 있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 ‘Plum Book’이라고 통용되고 있는 인사제도다.

    미국에서는 매 4년 실시되는 대통령선거를 통하여 신임 대통령이 선출된 직후 상원(上院)과 하원(下院)이 번갈아가면서 “미합중국 정부 정책 및 정책지원 직위”('United States Government Policy and Supporting Positions')라는 제목의 책자를 새로이 발간한다. 이 책자의 통칭(通稱)이 ‘Plum Book’이다. 이 책자에는 7천개 이상 (9천개 이상이라는 주장도 있다) 미합중국 연방정부 행정부와 의회의 ‘정책’ 및 ‘정책지원’ 직위가 명시되어 있다.

    미국에서 이 직위들은 ‘의회의 인준’ 절차를 생략한 채 신임 대통령이 취임을 전후하여 지명하는 인사들로 메워진다. 전임 대통령 재임 중에 이 직위들을 채우고 있던 인사들은 전임 대통령 퇴임과 더불어 일제히 사직한다. 이들에게는 어떠한 제도상의 임기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미국에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7천 내지 9천개의 행정부와 의회 요직에 대한 인사이동이 단행되며 이 때 새로이 보직되는 인사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개별적으로 법적 결격사유가 없는 한 신임 대통령이 누구를 임명하든지 의회나 언론에서 결코 시비하지 아니 한다.

    미국에서 이 ‘Plum Book’ 제도가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1952년에 선출된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D. Eisenhower)의 공화당 행정부 때부터로 60년간 시행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이 제도의 논거는 간단명료하다.

    미국 국민이 대통령을 선출한 것은 주어진 4년의 임기 동안 선출된 대통령이 선거 기간 중 제시한 선거공약들을 충실하게 이행하라는 임무를 대통령에게 부여하는 것인 이상 문제의 선거공약을 이행하는 업무와 관련된 행정부와 입법부의 ‘정책’ 및 ‘정책지원’ 직위에는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는 인사가 보임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그 공과(功過)에 대해서는 4년의 임기 종료 후에 다음 번 선거를 통하여 심판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번 12.19 대선에서 당선된 박근혜(朴槿惠) 당선인이 당선인 대변인으로 윤창중(尹昶重) 전 <문화일보> 논설실장을 임명한 것을 놓고 야당인 민주통합당이 시비하는 것을 보고 필자는 새삼 미국의 ‘Plum Book’ 제도를 생각하게 된다.

    대통령 당선인이 민주통합당의 비위(脾胃)에 맞는 사람을 대변인의 자리에 앉히려면 그 인사는 당연히 대통령 당선인을 따르지 않거나 아니면 선거공약을 포함하여 그의 정책을 지지하지 아니 하는 인물이라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 당선인이 과연 그를 선출해 준 유권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국정운영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지 아니 할 수 없다.

    민주통합당이 이번 대선에서 높이 내걸었던 구호의 하나가 ‘정치쇄신’이었다. 그렇다면, 차제에, 미국의 ‘Plum Book’ 제도를 우리나라에서도 채택하는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하는 것이 그들이 거론했던 ‘정치쇄신’에 부합되는 것은 아닐까, 민주통합당에 질문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