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년 전 이토 히로부미 사살한 안중근 장군은 ‘추도식’ 지원‘조국 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추도식은 “선거라서….”
  • ▲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역에서 사살한 안중근 장군의 그림.
    ▲ 이토 히로부미를 중국 하얼빈역에서 사살한 안중근 장군의 그림.

    1903년 10월 26일 오전 중국 하얼빈역. 기차에서 내리는 한 노인이 총에 맞았다. 죽은 노인은 한반도 침략의 핵심이었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였다. 그를 사살한 이는 대한민국 독립군의 안중근 중장이었다. 안중근 중장은 일찍이 ‘동양평화론’을 주장하며 한중일 삼국의 평화적 연대와 공동 발전 전략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던 분이다.

    1979년 10월 26일 오후 7시 무렵, 서울 종로구 궁정동에서 총성이 잇달아 들렸다. 18년 동안 ‘독재자’라 비난받으면서도 ‘전 국민이 거지처럼 살던 나라’를 공업국가로 만들어 한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중산층’을 만들어낸 박정희 대통령은 이렇게 세상을 떠났다.

    안중근 장군이 의거를 치른지 103년, 박정희 대통령이 서거한 지 33년이 지난 2012년 10월 26일 오전, 독립영웅과 국가적 영웅을 기리는 게 주 임무인 국가보훈처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 보훈처장 참석

    26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 안중근 의사 기념관에서는 ‘안중근 의사 의거 103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사)안중근의사숭모회(이사장 안응모)가 주관한 이날 기념식에는 박승춘 국가보훈처장을 비롯해 승병일 광복회 부회장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기념식에 이어 안중근 의사 유묵석비 제막식이 열렸다. 이 제막식을 위해 미국 텍사스에 거주 중인 안 의사의 외손녀도 초청했다.

    안 의사 유묵석비는 높이 4.3m, 너비 2.6m, 두께 1.1m의 화강암 재질로 멋지게 만들어졌다. 석비에는 ‘사람은 멀리생각하지 못하면 큰일을 이루기 어렵다(人無遠慮 難成大業)’고 적혀 있다.

    보훈처는 기념식에 이어 열리는 뮤지컬 공연도 지원했다.

    동작동 서울국립현충원 대통령 묘역: 보훈처는 어디?

  • ▲ 박정희 대통령 국장 당시의 행렬. 당시 집계로는 전국적으로 2천만 명 넘는 조문객이 추모했다고 한다.
    ▲ 박정희 대통령 국장 당시의 행렬. 당시 집계로는 전국적으로 2천만 명 넘는 조문객이 추모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각 서울 동작동 서울국립현충원 대통령 묘역. 박정희 대통령 내외의 묘소 앞에 일단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의 장녀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를 비롯해 박 대통령을 추모하는 사람들이다.

    보훈처는 이날 故박정희 대통령 33주기 추도식은 지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 마디로 보훈처 주요인사는 추도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추도식을 지원하지 않는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지금 시점이 대선을 앞두고 있어 불필요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 그런 것 같다. 자세한 사항은 지금 담당자가 없어 잘 모르겠다.”

    언론들 또한 故박 대통령을 추모하거나 그의 업적, 공과를 살피기보다는 이날 추도식에 참석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어떤 이야기를 할지에만 집중하고 있다.

    동양이 인정하는 영웅, 세계가 인정하는 영웅

    보훈처의 대답은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두 영웅에 대한 대접을 이리도 달리 할 수 있을까. 

    안중근 장군은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그래서 일제가 하얼빈역에서 장군을 잡았을 때도 “나는 전쟁 중인 적국의 장군이다. 제네바 협약에 따라 정당한 전쟁포로로 대접하라”고 일갈했다.

    안 장군이 주장한 ‘동양평화론’의 이론과 논리, 옥중에서 보여준 의연한 자세는 일본인 외의 동양인은 사람 취급도 안 하던 일제 관료들마저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다.

  • ▲ 젊은 세대들이 '산업화의 원조'라며 칭송하는 박정희 대통령. 이 합성사진은 젊은 세대가 더 좋아한다.
    ▲ 젊은 세대들이 '산업화의 원조'라며 칭송하는 박정희 대통령. 이 합성사진은 젊은 세대가 더 좋아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5.16혁명을 성사시킨 뒤 대통령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 집권 이후 다른 나라 정상들로부터 속된 말로 ‘거지 취급’을 받으며 ‘조국 근대화의 종잣돈’을 마련하기 위해 궂은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불과 20년도 안 돼 우리나라를 ‘근대화의 반석’에 올려놓고, 한민족 최초로 ‘보릿고개’를 없애고 서양문명이 수백 년에 걸쳐 겨우 만들어낸 ‘중산층 국민’을 1천만 명 이상 탄생시키자 전 세계가 그를 우러르기 시작했다.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前총리, 싱가포르의 이광요 前총리는 물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연방 대통령, 중국 공산당의 등소평, 후진타오 등도 그에게 찬사를 보냈다. 지금도 세계 수십 개 나라에서 박 대통령이 창안하고 추진한 새마을 운동과 산업발전 모델을 배우겠다고 찾아오고 있다.

    조국 근대화의 영웅 추모 때 박근혜는 잊어라!

    안 장군은 독립의 영웅이고, 박 대통령은 조국 산업화의 영웅이다. 두 분의 공과를 같은 선상에서 절대비교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분은 ‘영원한 영웅’이고 다른 분은 ‘정치적으로 평가해야 할 분’인 것은 ‘아니다’라고 감히 말한다. 박 대통령의 ‘직계비속’이 대선후보라는 게 국가적 영웅을 추도하는 걸 꺼리게 만들 이유가 되는가.  

    언제부턴가 보훈처가 독립영웅, 전쟁영웅, 우리 사회를 지키다 희생한 분들보다 ‘민주화 유공자’라는 이들에게 상당한 예산을 퍼붓는 것으로 알고 있다. 보훈처 내부는 조직이 ‘관료화’되어 부실금융기관과 거래를 하는 등 여러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는 제보도 들어온다.

    보훈처 직원들이 자신을 그저 ‘일반직 공무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만 두는 게 맞다. 차라리 그 자리를 임무를 수행하다 상처를 입은 전직군경들에게 넘기는 게 1961년 ‘군사원호청’으로 시작된 보훈처의 설립목적에도 부합할 것 같다.

    보훈처는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그 일을 위한 ‘소신’이 있기는 한 지 정말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