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규형 칼럼] 한국 우파의 미래는?

한국 보수, 좌파 앞에서 기죽는 이유

강규형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 최종편집 2012.09.15 21:48:46

<한국선진화포럼-선진화포커스 제106호>
한국 보수, 좌파 앞에서 기죽는 이유

강 규 형




  한국의 보수, 또는 보수주의는 서양 보수의 전통적인 개념과는 차이가 난다. 한국의 보수는 영미처럼 오래된 전통과 가치는 부족하다. 격변적일 정도로 빠르고 심대한 변화를 경험한 한국사회에는 그야말로 ‘보수’(conserve)할 것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한국 보수의 뿌리를 찾자면 오히려 개방과 개혁을 추구한 개화파를 들 수 있다. 1870~1890년대 조선조 말 집권세력인 수구파에 맞서 문명개화(文明開化)와 부국강병(富國强兵)을 추구한 진보적 세력이 한국보수의 오늘날 이념과 합치된다 하겠다.

  이러한 사상은 개회세력의 막내 격인 이승만으로 이어진다. 즉, 근대화론과 부국강병론이 개화파와 한국 보수의 공통분모 중 하나라 할 것이다.

  한국 보수의 업적은 대한민국을 세우고, 지키고, 성장시켜 온 것이었다.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공산침략으로부터 지켜내고, 산업화-민주화를 달성한 대한민국 역사의 주체라는 정통성이 한국 보수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당성이 있음에도 한국의 보수는 취약한 상황이다. 자신의 정체성이 덜 확립돼 있으며 보수정당의 자기 확신도 적다. 시민사회 세력 또한 맹렬한 좌파 세력에 비하면 미약하다.

  그러면 한국의 진보는 어떠한가? 필자는 한국에서 ‘좌파’는 존재해도 진정한 진보는 없다고 판단한다. 진보라 함은 형식상으로나마 ‘진보’하는 생각과 행동을 취해야 하는데 한국의 좌파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퇴보’한다는 느낌을 강하게 준다.

  원래 진보의 주요 어젠다는 국제주의와 인권이다. 그러나 한국의 좌파는 한반도 한쪽에서의 인권은 부르짖으나 다른 한쪽의 경악할만한 인권상황에는 완전히 눈 감는다. 또한 과거 위정척사파의 쇄국정책을 방불케 하는 폐쇄성을 띈다.

  한국 좌파의 큰 기둥인 박현채의 민족경제론, 민중경제론, 그리고 그가 대필한 대중경제론, 더 나아가 변형윤 교수 중심의 학현학파의 논리도 이 범주에 속한다. 리영희 역시 마오(모택동) 체제를 찬양하며 이런 흐름에 편승했다.

  특히 서구의 진보가 공산주의와 결별을 하고 베른슈타인 수정주의에 입각한 사회민주주의 체제로 가면서 자유민주주의의 품에 안기고 의회민주주의를 표방할 때, 한국의 좌파는 철 지난 공산주의, 그것도 다양한 변종의 공산주의에 대한 호의를 가졌다.

  이것은 북한체제를 의식한 행동으로서, 한국 좌파의 담론투쟁에서 민족해방파(NL파), 그 중에서도 특히 주체사상파가 승리를 거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현상이다. 좌파 사상 중에 가장 낙후된 주체사상이 담론투쟁에서 승리한 것은 한국 좌파의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1960~1970년대의 ‘구세대 종북(從北)’이나 1980년대 중반 이후에 만들어진 386(486) 종북이나 다 이런 오류를 범했다.

  그러나 서두에 얘기했듯이 한국 보수 역시 취약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한국 보수는 철학적으로 지킬 것이 없는 존재들이다. 한국에는 왜 ‘헤리티지 재단’이나 ‘존 올린 재단’과 같은 훌륭한 보수주의 싱크탱크와 지원단체가 없으며, 왜 박정희 도서관이나 기념관의 건립이 기금부족으로 무산될 위기에 있는가?

  잠정적인 결론은 한국의 기득권, 자칭 보수의 많은 수가 ‘생각이 없는 얌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 인생을 신나게 사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그런 뜻 있는 재단이나 기구를 만들거나 지원할 의지와 철학이 없다는 것이다.

  철학. 이것을 갖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고뇌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젊어서도 그런 과정이 없었고 나이 들어서도 변신의 고통이 없었는데 지금 와서 없던 철학이 갑자기 생기겠는가? 그러다 보니 그들은 또래 세대의 일반적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급격히 변한 시대정신도 파악하지 못한다. 나라야 어떻게 되든 자신들의 안위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면서 현실에 안주하고 타협하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이는 것이 바로 그들의 초라한 자화상이다.

  사실 6·25 종전 이후 한국의 보수는 권력과 기득권의 보호 속에서 성장했다. 온실 속 화초가 저항력이 약하듯 한국의 보수는 자생력을 갖지 못했다. 그러기에 그들은 오랜 세월 메마른 광야에서 야성적으로 커온 좌파의 끈질긴 생명력 앞에서 무력했다. 한국에 태동하는 새로운 자생적 보수는 좌파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는데 그 구성원의 대다수가 1970~1980년대 좌파 세력에서 태동(胎動)했다는 사실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생각 없는 국민에게는 미래가 없다. 마찬가지로 생각 없는 보수에게도 미래가 없다. 치열한 자기 혁신을 통해 ‘진보하는’ 보수, 생각하는 보수, 야성을 가진 보수, 그리고 정열과 따뜻한 가슴을 가진 보수로 거듭나고 사회적 저변이 확대될 때에만 비로소 한국 우파에 미래가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기초를 만들고 번영을 이루게 해 온 두 개의 국가발전전략-자유민주주의와 세계시장체제의 적극 활용-을 잘 인식하고, 이것을 지킬 방법으로 투철한 직업윤리와 대중소통의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될 것이다.

  한국의 보수는 과거 영화(榮華)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긴 호흡을 갖지 못하고 정권 탈환 수준에만 관심이 머물러 있다. 혹은 자신의 가치관도 정립하지 못한 채 현실에만 안주하는 기회주의적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국의 좌파는 1980년대 이후 치열한 자세로 사회를 밑으로부터 변화시키는 문화·가치·사회운동에 성공했다. 이제 한국의 보수는 그 이상의 노력과 치열함으로 그들과 경쟁해야 한다. 그것은 정치투쟁과 같은 수준이라기보다는 누가 현실 문제를 더 잘 해결할 것인가를 놓고 벌어지는 실용적인 논쟁이고 밑으로부터의 문화경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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