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 도착증(民主倒錯症) 
      
     입은 민주, 손발은 독재, 가슴은 적화통일!
    최성재    
       
      현진건의 [B사감과 러브레터]에 나오는 B사감은 일종의 성도착증 환자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연애는 무슨 연애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냉큼 이리 내!”
      이렇게 압수한 연애편지는 모조리 B사감의 보물이 된다. 그녀의 보물은 1호에서 100호까지 모조리 압수한 연애편지다. 어느 이슥한 밤, 딱장대 노처녀 B사감은 호호 깔깔 편지를 대본 삼아 무대도 없고 관중도 없이 몰아지경의 연기를 한다. 그러다가 아뿔싸, 여학생들한테 들킨다. 연기를 너무 잘하는 바람에 관중이 생겼다고나 할까.
     
      동물도 사람처럼 성도착증을 보이는 수가 있다. 어릴 때부터 사람 손을 너무 타면, 애완동물이 주인을 자신의 성 파트너로 착각하는 수가 있다. 어떤 닭은 같은 종의 이성을 보아도 소 보듯 데면데면하지만, 주인이 손만 내맬면 그 위로 팔짝 뛰어오르며 자지러진다. 자신이 닭인지 사람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어떤 고양이는 주인의 다리에 요상하게 몸을 감치며 뱅글뱅글 돈다. 유사 성행위이다. 이처럼 자신이 고양이인지 사람인지 구별하지 못한다.
     
      본성이 왜곡되고 변질되어 결벽증과 버물어져서 엽기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도착증(倒錯症)이다. 그렇게 볼 때, 한국에는 민주도착증이 대유행이다. 민주를 입에 달고 살고 민주를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민주로 숨 쉬고 민주로 마시고 민주로 밥 먹고 민주로 잠자고 민주로 잠꼬대하고 마침내 민주로 벼락출세하고 어깨에 민주뽕을 넣어 거들먹거리지만, 독재라면 이를 갈고 혀를 깨물지만, 막상 민주와는 원수처럼 지내는 자들이 수두룩하다. 과정도 반민주, 결과도 반민주, 목적도 반민주, 수단도 반민주, 몽땅 반민주지만, 간판과 깃발에 민주라고 크게 써 붙이고 지나가는 사람 아무나 불러 모으고 머리끈과 어깨끈에 민주를 선명하게 새기고 인도와 차도 구별 없이 막무가내 싸돌아다니면, 민주투사로 민주열사로 국가지도자로 높이 떠받들어진다. 거기에 민주를 울부짖다가 실정법을 위반하여 심지어 빨갱이짓하다가 물증이 명명백백하여 큰집에 한 번 다녀오면, 화염병을 던지고 경찰을 패도 도대체 자유천국인지, 자유망국인지 대부분 훈방되지만 죄질이 아주 고약하여 콩밥 한 번 먹고 나오면, 고시에 수석 합격한 듯 높이 떠받들어진다. 법 위의 존재가 되고 헌법 위의 초인이 된다.
     
      권력 다툼 끝에 밀려난 자들이 분에 못 이겨 폭로하는 바람에 민주도착증 중환자들의 실상이 슬슬 드러나고 있다. 경기동부연합이나, 광주전남연합이니, 그 동안 소문으로만 떠돌던 자들의 실체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이들에게 한국은 아무리 잘해도, 아니 잘할수록 독재이지만, 북한은 아무리 못해도 아니 못할수록 ‘민주’이다. 여기서 작은따옴표를 쓴 이유는 이것을 그들이 입 밖으로는 안 내고 속으로만 웅얼거리고 묵비권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의 3.15부정선거는 저들에 비하면 애교가 넘친다. 박정희의 체육관선거도 저들에 비하면 참으로 정정당당하다. 독재자의 독재자 김일성의 철천지원수가 이승만과 박정희다. 반면에 저들은 김일성 3대를 무오류의 신으로 떠받든다. 민주와 독재도 상대적 개념인데, 그 스펙트럼에서 보면 이승만과 박정희는 김일성과 김정일에 비해 하늘처럼 높고 푸르다. 한국의 민도나 당시의 경제여건 그리고 6.25사변 등을 고려하면, 이승만과 박정희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의 링컨이나 2차대전 후의 드골 못지않은 민주주의자다. 그러나 저들 눈에는 소련군 꺼삐딴(대위) 김일성은 독립투사이고 민족해방자이지만, 이승만은 친일파에 매국노이고 박정희는 친일파에 군부독재자다.
     
      실은 최근에 드러난 자들은 조무래기이다. 6.15공동선언으로 대한민국의 헌법을 반통일, 반민족, 반민주 악법으로 내쳤을 뿐만 아니라 민주보상법과 특별사면의 오용과 남용으로 3권 분립의 민주원칙을 파괴하고 사법부의 판결을 뒤집은 민주도착증 환자들이 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실은 이들은 조무래기이다. 당명에 민주를 한사코 고수하는 독재통합당에는 민주도착증 환자들이 즐비하다. 이들도 수틀리면 국회에서 조폭 행세를 하긴 하지만, 나름대로 법을 지킨다. 겉보기에는 멀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애국가와 태극기를 내심 부끄러워하면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수치의 역사로 바꾸고, 수구꼴통의 역사로 바꾸고, 대신에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수치스럽고 저주스러운 북한의 현대사는 ‘영광’의 역사로(여기서 작은따옴표를 쓴 이유도 위에서 언급한 것과 동일, 다음 것도 마찬가지), ‘진보’의 역사로 바꾸었다. 민중의례에 가슴이 뛰고 임의 행진곡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실은 이들은 조무래기이다. 학계도 문화계도 언론계도 노동계도 민주도착증 환자들이 대세를 장악하고 있다. 겉은 멀쩡하지만 의식과 언행이 조선시대의 양반이나 일제시대의 1등 국민과 하등 달라진 게 없다. 그렇게 권위적일 수가 없고 그렇게 봉건적일 수가 없고 그렇게 독선적일 수가 없고 그렇게 위선적일 수가 없고 그렇게 탐욕스러울 수가 없고 그렇게 야비할 수가 없다. [조갑제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