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떼기·대리투표·이중투표 제기된 의혹 모두 사실로…싸늘한 유권자 시선이 와중에 내부 자리싸움, 당권파(민노) vs 비당권파(국참) 권력 싸움 예고칼자루 쥔 유시민, 이정희 꺽고 원내 입성? 대권 후보까지 채갈지도 몰라
  • ‘총체적 부실’로 결론지어진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문제가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진보’라는 깨끗한 이미지를 내세워 유권자를 현혹한 통합진보당이 박스떼기, 대리투표, 이중투표 등 21세기판 ‘체육관-막걸리-고무신 선거’를 치렀다는 점에서 쏟아지는 시선은 더욱 싸늘하다.

    “논문표절 의혹으로 국회의원 당선자에게 온갖 정치공세를 쏟아내던 당신들이 민주주의 기본원칙에 부정한 방법을 했다고 자인하면서 이정희 한사람만 책임을 진다? 처음부터 그랬지만 참 웃기는 정당입니다.” - 트위터 아이디 k3aaaa

  • ▲ 통합진보당 조준호 공동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의 부정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통합진보당 조준호 공동대표가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19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경선의 부정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의혹 모두 사실로…비례대표 경선 총체적 부실-부정선거

    4.11 총선 전부터 통합진보당에 제기됐던 ‘비례대표 경선 현장투표의 80~90%에 문제가 있다’는 의혹은 모두 사실이었다.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경선 부정의혹 진상조사위원회는 2일 “비례대표 후보 선거가 선거관리 능력 부실에 의한 총체적 부실-부정선거로 규정한다”고 밝혔다.

    조준호 진상조사위원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에서 “선거 결과의 신뢰성을 상실했다”는 말로 모든 의혹이 사실이었음을 자인했다.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우선 투표자 수와 투표함 속 용지 숫자가 맞지 않았다. 대리투표로 추정되는 동일인 필체도 드러났다. 관리자 직인조차 찍혀 있지 않은 투표용지도 발견됐다. 당원이 아닌 사람이 투표한 정황은 부지기수였다. 조 위원장은 “선거가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정도”라고 평가했다.

    온라인 투표의 경우 그 정도는 더 심했다. 동일한 아이피(IP)에서 집단적으로 투표가 이뤄진 정황에다 투표함을 여는 것과 같은 소스코드 프로그램 수정이 이뤄졌다. 소스코드를 건드릴 경우 투표자 수와 해당 후보의 기호를 바꿀 수도 있어 얼마든지 원하는 후보를 당선시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진상조사위 견해로는 비례대표 경선 관리를 적절하게 수행할 능력이 없는 업체와 수의계약으로 전산업무를 맡겼다. 해당 업체는 앞서 민주노동당 업무를 10년 넘게 담당해온 전산관리업체로 알려졌다. 소위 당권파들이 입맛대로 조작 가능한 가까운 업체를 선정해 고의로 원하는 후보에게 비례대표 순번을 줬다는 얘기가 된다.

    조 위원장은 “4월 17일부터 어제까지 조사 결과 이번 비례대표 선거가 정당성과 신뢰성을 잃었다고 판단하며 책임소재가 분명한 사안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 재발방지 대책 등 당 쇄신안도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 ▲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경선의 총체적 책임을 이정희 공동대표 한명에 몰고 있다는 지적에 직면했다. 사진은 이 공동대표가 서울 관악을 재경선 방침을 밝히며 기자들의 추가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경선의 총체적 책임을 이정희 공동대표 한명에 몰고 있다는 지적에 직면했다. 사진은 이 공동대표가 서울 관악을 재경선 방침을 밝히며 기자들의 추가질문에 답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 이 와중에 자리싸움, 정신 못 차린 무늬만 ‘진보’

    심각한 상황에도 통합진보당 당 지도부는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공식적으로는 “공당으로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다하고 국민적 눈높이에 맞는 수습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대표단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태 수습과 부정 선거에 대한 책임을 두고 서로 떠밀기에 바쁜 모습이다.

    진상조사위 발표를 하루 앞둔 지난 1일 밤 이정희·유시민·심상정 공동대표는 긴급회동을 갖고 사태 수습에 머리를 맞댔지만, 별다른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사태 수습은 이정희 공동대표만 사퇴하는 선에 마무리하고 문제가 된 비례대표 3명(윤금순·이석기·김재연)은 절대 사퇴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총 6명을 당선시킨 통합진보당은 여성몫인 1번(윤금순 전 민노당 최고위원)과, 남성몫인 2번(이석기 전 민중의 소리 이사)은 일반 경선을 통해, 3번(김재연 전 한국대학생연합 집행위원장)은 청년 비례 경선을 통해 선정했다. 바로 이들 셋이 경선 부정 의혹의 당사자일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순번 4∼6번은 영입 인사들이어서 이번 부정선거 의혹과 관련이 없다고 볼 수 있다.

    ‘뼈를 깎는 반성’을 해도 모자란 상황에서도 자리 욕심과 복잡하게 얽힌 당내 계파간 세력 싸움에만 정신이 팔렸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통합진보당 핵심 당직자는 이날 “이러다가 지난 번처럼 당이 또 쪼개질 수 있다”는 말까지 꺼냈다.

    가장 큰 난관은 싸늘한 여론을 ‘어떻게 극복하느냐’다. 통합진보당 수습대책이 알려지자 이미 여론조사 조작으로 4.11 총선에서 지역구 후보를 한번 사퇴했던 이정희 공동대표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봇물처럼 터지고 있다.

    통합진보당 홈페이지를 비롯해 인터넷 상에는 “부정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전원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트위터 아이디 Furtrtoooo는 “한번 사퇴했으면 됐지. 또 사퇴? 이정희 부관참시해서 자신들만 살려고...”라고 비꼬았다.

    당내 분위기도 “비례대표 당선자들이 국민 입장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이나 조처를 하지 않고 그대로 넘어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통합진보당 지도부는 사태가 심각하다고 인지하면서도 여전히 미련을 못 버리는 눈치다. 일단 전면 대응에 나서기보다 상황을 지켜보며 대응하겠다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가장 큰 책임자인 이정희 공동대표가 일단 사퇴를 하면서 사태를 무마했다가 오는 6월3일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다시 당 대표로 복귀하는 ‘꼼수’도 흘러나오고 있다.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을 가장 먼저 제기한 이청호 부산 금정구의원은 언론과의 통화에서 “사퇴만이 해결책이다. 반칙을 저질러놓고 남의 자리 도둑질했는데 당원들은 용납할 수 있어도 국민들이 봐주겠느냐”고 했다.

  • ▲ 통합진보당 이정희, 유시민 공동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당사에서 19대 국회의원선거 출구조사 발표를 보며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 통합진보당 이정희, 유시민 공동대표가 11일 오후 서울 동작구 대방동 당사에서 19대 국회의원선거 출구조사 발표를 보며 기뻐하고 있다. ⓒ 연합뉴스

    ◆ 기회 잡은 유시민, 칼자루 쥐고 평지풍파(平地風波)

    통합진보당 중에서도 이번 사태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쪽은 총선을 주도한 당권파(옛 민노당계열)다. 덕분에 국민참여당 계열인 유시민 공동대표의 입김이 거세졌다. 한 당직자는 “오랜만에 어깨에 힘을 주고 다닌다”고도 했다.

    하지만 통합진보당의 55%를 차지하고 있는 당권파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대선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비당권파의 공세에 밀리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다.

    이들의 책임공방은 두 가지 부분에서 나뉜다. 정치적 책임을 져야할 당 지도부의 범위와 비례대표 당선자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이 부분에서 양측은 모두 한가지 씩 약점을 지니고 있다.

    당권파 측은 당 지도부 전원 사퇴를 주장하며 유시민 공동대표의 연대 책임론을 부각시키고 있다. 반면 유시민 등 국민참여당 계열의 비당권파는 이정희 공동대표의 사퇴와 문제가 불거진 비례대표 당선자를 갈아치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권파는 지도부 전원 사퇴론을 통해 유시민 측의 ‘입’을 다물게 해 정치적 봉합을 꾀하겠다는 전략으로 보인다. “같이 죽을 수도 있다”는 엄포로 비례대표 의원 사퇴론을 함부로 제기하지 못하도록 한다는 계산인 셈이다. 또 이정희의 사퇴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로 다가온 이상 비례대표로 당선된 당권파 2번 이석기, 3번 김재연 마저 잃을 수는 없다는 절박함이다.

    하지만 사실상 칼자루를 쥔 유시민 측의 공세가 만만치는 않다. 일단은 중립을 선언한 심상정 공동대표를 비롯한 진보신당 탈당파들도 당권파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면 참여당 진영과 손을 잡고 당권파를 협공할 태세다.

  • ▲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로 유시민 공동대표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정희 공동대표의 사퇴와 비례대표 당선자 전면 교체로 12번 순번을 받은 유 공동대표가 원내로 입성가능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사진은 4.11 총선 야권연대 당시 한명숙 대표와 악수를 나누는 유 공동대표. ⓒ 연합뉴스
    ▲ 이번 통합진보당 사태로 유시민 공동대표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이정희 공동대표의 사퇴와 비례대표 당선자 전면 교체로 12번 순번을 받은 유 공동대표가 원내로 입성가능할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사진은 4.11 총선 야권연대 당시 한명숙 대표와 악수를 나누는 유 공동대표. ⓒ 연합뉴스

    √ 유시민, 원내 입성에 대권 후보 노릴지도…

    이번 총선에서 비례대표 12번으로 밀려 원내 입성에 실패한 유시민 공동대표 입장에서는 어떻게 보면 이번 부정선거 논란이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이정희 공동대표의 사퇴로 다시 당권을 노릴 수도 있는데다, 특히 당권파가 장악한 비례대표 1·2·3번 당선자들을 탈락시켜야 한다는 주장으로 원내 입성까지 가능할지 모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일반적으로 비례대표 1·2·3번이 사퇴하게 되면 후순위인 7·8·9번이 의원직을 승계받는 방안이 먼저 제기된다. 이럴 경우 9번 오옥만 후보가 당선이 되긴 하지만, 유시민 측 입장에서는 만족스럽지 않다고 판단할 공산이 크다.

    때문에 칼자루를 쥔 국민참여당 계열이 경선으로 선정된 모든 비례대표 후보를 탈락시키고 전략공천자들만으로 비례대표 6명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낼 가능성도 있다.

    영입인사인 4·5·6번을 비롯해 후순위 전략공천자는 12·14·18번이다. 유시민 공동대표는 12번이며 14번은 서기호 전 서울북부지법 판사, 18번은 삼천리 철도고문 강종헌이다.

    당 관계자는 “1·2·3번이 탈락된다면 7·8·9번도 어차피 부정이 있었던 그 선거에서 뽑힌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예상했다.

    이 관계자는 “만약 대중적 지지율이 높은 유시민 공동대표가 다시 한번 금배지를 달게 되면 대권 정국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할 공산이 크다”며 “총선 이후 민주통합당과의 거리감이 생긴 현 상황에서 영향력 있는 대권주자의 보유는 또다른 양상을 초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