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먹고도 마피아 두목처럼 김대중을 협박한 김정일 
      
    김일성 屍身 참배 강요하고, 인공기 올린 대학생 연행했다고 "그만 돌아가세요"
    趙甲濟   
     
  • ▲ 김정일은 돈 먹고도 김대중을 협박했다ⓒ
    ▲ 김정일은 돈 먹고도 김대중을 협박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2000년 6월13일 평양으로 가기 직전 對北송금 차질뿐 아니라 김일성 屍身(시신) 참배 문제로 북측의 압박을 받고 있었다. 김대중-김정일 회담을 성사시킨 남측의 主役(주역)인 박지원 당시 문광부 장관은 2008년 6월 서울대학교에서 한 강연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정상회담을 위한 방북 전에 마침내 문제가 터졌습니다. 북측에서는 금수산기념궁전(김일성 屍身 전시) 참배를 요구했고, 임동원 원장께서 특사로 평양을 다녀오는 등 노력을 했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평양에서는 KBS 등 사전 준비 팀을 추방하느니 야단이 났습니다.
      평양 방문 일자도 하루가 연기되었습니다. 특검에서도 밝혀졌지만 일자가 연기된 것은 송금 지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우리 언론이 항공사진을 이용해 순안공항에서 평양까지의 이동경로를 예측 보도한 것 등의 보안문제와 순안공항의 수리미비가 이유였습니다.
      평양에서는 "금수산기념궁전에 참배하지 않으면 정상회담을 할 수 없고, 올 필요도 없다"고 통보해 왔습니다. 저는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위기가 오면 더욱 강해지십니다. 저에게 꾸중 한마디 않으시고 6월13일 우리의 평양 착륙을 거부하겠다는 북측의 통보에도 불구하고 '출발하자'고 결정하셨습니다.
      서울공항에서 환송식이 열리고 공식 수행원들은 전용기 앞에서 대통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임 원장께서 황급히 서울공항 청사로 들어갔습니다. 대통령께서 도착하셨습니다. 임 원장의 미소가 보였습니다. 대통령께 뭐라고 귓속보고를 했습니다.
      다른 분들은 이 사실을 몰랐습니다. 임 원장께서 저에게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문제는 평양에 와서 논의하자는 북측의 통보를 받았다'고 알려줬습니다. 우선은 안심하고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모두들 흥분했지만 저는 제 정신이 아니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습니다. 저는 북한 상공에 있었지만 북한의 어떤 모습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
      
      박지원 의원의 설명은 그 2년 뒤에 나온 김대중 회고록의 기술과 다르다. 회고록은 북측이 방북을 하루만 연기한다고 통보하였다고 썼지, 송금 차질이나 김일성 시신 참배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박지원 씨 주장대로 북측이 ‘들어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면 이는 공갈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어쨌든 김대중 대통령은 평양에 갈 때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된 상태였을 것이다. 그는 국민들을 속이고 현대그룹을 앞세워 4억5000만 달러(물건까지 포함하면 5억 달러)를 김정일의 해외비자금 계좌로 보냈다는 부담감, 김일성 屍身(시신) 참배 요구에 따른 부담감을 안고 갔던 것이다. 김정일은 6월13일 오전 평양에 도착한 김대중 대통령을 자신의 승용차에 태우고 숙소인 백화원 초대소로 안내한 후 다시 이곳을 찾아 남측 대표단과 기자들이 보는 가운데 이렇게 말하였다.
     
      “인민들한테는 그저께(11일) 밤에 김 대통령의 코스를 대줬습니다. 대통령이 오시면 어떤 코스를 거쳐 백화원 초대소까지 (가는지를) 알려줬습니다. 준비관계를 금방 알려줬기 때문에, 외신들은 미처 우리가 준비를 못해서 (김 대통령을 하루 동안) 못 오게 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인민들은 대단히 반가워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와서 보고 알겠지만 부족한 게 뭐가 있습니까.”
      그 이틀 전 김대중 정부가 북측이 기술적 문제를 들어 訪北 연기를 요청하였다고 발표한 것을 뒤집는 발언이었다. 김정일은 이 발언으로 김대중 대통령에게 ‘왜 하루가 늦었는지 알지?’하는 심리적 압박을 넣으려고 한 것 같기도 하다. 김정일은 이렇게 덧붙였다.
      “자랑을 앞세우지 않고 섭섭지 않게 해드리겠습니다. 외국수반도 환영하는 데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도덕을 갖고 있습니다. 동방예의지국을 자랑하고파서 인민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김 대통령의 용감한 방북에 대해서 인민들이 용감하게 뛰쳐나왔습니다. 장관들도 김 대통령과 동참해 힘든, 두려운, 무서운 길을 오셨습니다. 하지만 공산주의자도 도덕이 있고 우리는 같은 조선 민족입니다.”
      두려운 길을 왔지만 안심하라고? 마피아 두목이 상대를 불러놓고 을러대고, 갖고 놓는 듯한 말투이다. 
      
      김정일의 협박
      
     다음날인 14일 오후 백화원 초대소에서 김대중-김정일 회담이 열렸다. 본격적인 회담이 시작되니 ‘갑자기 김 위원장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김대중 회고록’).
      김대중 회고록에 따르면 김정일은 이런 취지로 말하였다.
      “국정원이 김 대통령의 평양방문 사업을 주도하면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그룹과 亞太委(아태위)가 민간경제 차원에서 잘 하고 있어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국정원이 개입하고 임동원 원장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권이 달라졌고, 사람이 달라졌으니 한번 해보자고 한 것이다.”
      선심을 써서 만나주는 것이란 투의 이야기를 한 뒤 김정일은 ‘어젯밤 텔레비전을 보고 기분이 상한 게 있다’고 했다. 그는 ‘흥분한 빛이 역력하였다’(‘김대중 회고록’).
      “남조선 대학가에 인공기가 나부낀 데 대하여 국가보안법 위반이니 사법처리를 하겠다는 겁니다. 이건 뭐, 정상회담에 찬물을 끼얹겠다는 거 아닙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대단히 섭섭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제 공항에서 봤는데 남측 비행기가 태극기를 달고 왔고, 남측 수행원들이 모두 태극기 배지를 달고 있었지만 우리는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많이 생각해 봤어요. 어제 김영남 위원장과 회담하고 만찬 대접도 했으니 헤어지면 되겠다고 말이지요. 그런데 주위에서 만류해서 오늘 제가 나온 것입니다.”
      한 배석자에 따르면 김정일의 말은 김대중 회고록의 傳言(전언)보다 훨씬 직설적이었다. 그는 “이런 분위기에선 회담을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께서는 환대를 받으신 걸로 만족하시고 푹 쉬신 뒤에 돌아가시지요. 대통령께서도 만남 자체가 중요하다고 하셨잖습니까”라는 말까지 하였다는 것이다.
      김정일의 노골적인 협박은 마피아 세계에선 常例(상례)이겠으나 외교 관레상 있을 수 없는 폭언이다. 한국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김일성 대학에서 학생들이 태극기를 올려도 이를 벌주어선 안 된다는 이야기를 엄포조로 하는 것과 같다. 더구나 4억5000만 달러의 뇌물을 먹은 자가 年長者(연장자)에게 그런 말을 하였다! 김정일은 협박조의 이야기를 30분간 늘어놓았다. 이런 오만방자한 자세는 김대중의 기를 꺾어놓으려는 심리전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