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멋진 나라 대한민국  
      
     外向的 발산·자유의 길을 걸을 때 나라는 커지고 內向的 수렴·평등의 길을 걸을 때 쇠락한다.
    金成昱   
     
     대한민국 60년은 기적의 조건이 있었나?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나? 시계를 거꾸로 되돌려 보자.
     
     구한말 조선을 4차례나 방문해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이라는 책을 쓴 비숍(Isabellar Bird Bishop. 1831년 ~ 1904년) 여사는 1890년대 조선의 모습을 불결함·게으름·무기력·무관심·부패와 미신이 가득 찬 곳으로 묘사한다. 산 좋고, 물 좋고, 인심 좋은 옛날을 상상하지만 임진왜란·병자호란을 거친 조선, 나라가 망하기 전 대한제국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부산이 처참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나는 그것이 조선마을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점을 알았다. 좁고 더러운 거리에 진흙을 발라 창문도 없이 울타리를 세운 오두막집, 밀짚지붕, 그리고 깊은 처마, 마당으로부터 2피트 높이의 굴뚝이 솟아 있었고 가장 바깥에는 고체와 액체의 폐기물이 담겨 있는 불규칙한 개천이 있다. 더러운 개와 半裸(반라)이거나 全裸(전라)인 채 눈이 잘 보이지 않는 때 많은 어린애들이 두껍게 쌓인 먼지와 진흙 속에 뒹굴거나 햇볕을 바라보며 헐떡거리거나 눈을 끔벅거리기도 하며 심한 악취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서울의 냄새가 자장 지독하다고 생각했다. 대도시인 수도가 이토록 불결하다는 것을 도무지 믿을 수 없다.(···)비틀어진 小路(소로)의 대부분은 짐 실은 두 마리 소가 지나갈 수 없을 만큼 좁으며 한 사람이 짐을 실은 황소를 겨우 끌고 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이다. 그 길은 그나마 물구덩이와 초록색의 오수가 흐르는 하수도로 인해서 더욱 좁아진다. 하수도에는 각 가정에서 버린 고체와 액체의 오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들의 불결함과 악취 나는 하수도는 반나체 어린애들과 피부병이 오른 채 눈이 반쯤은 감긴 큰 개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다. 그들은 햇살에 눈을 껌뻑거리며 이 하수도에서 뒹굴고 있다.”
     
     더 나아갈 빛이 없는 사회는 썩는 법이다. 조선은 淸貧(청빈)의 그럴싸한 구호와 人倫(인륜)의 깃발만 있을 뿐 백성의 울부짖음과 눈물만 그득했다. 비숍여사는 “관아의 형벌 방법은 벼슬아치들이 죄인을 잔인하게 채찍질하고 죽도록 때리는 것이다. 죄인들의 괴로운 부르짖음은 영국 선교관과 인접한 방까지 들려온다. 부정부패가 만연하여 거의 모든 관아가 악의 소굴로 되고 있다.”며 조선의 관아를 ‘惡의 소굴’로 양반을 ‘면허받은 흡혈귀’로 불렀다.
     
     서양인 눈으로 본 19세기 말 한반도는 엇비슷하다. 부정부패와 미신, 활력을 잃은 사람들. 급기야 나라는 일제에 망하고 말았다. 치욕스런 일제강점기다.
     
     45년 일제의 강점이 끝난 뒤 남한의 조건은 자원·기술 모든 면에서 북한에 비해 나빴다. 일제의 만주침략 기지가 북한에 있었던 탓이다. 남북의 경제구조가 南農北工(남농북공), 南輕北重(남경북중)의 상호보완 형으로 형성돼 있었고 큰 공장 큰 기업은 북한에 많았다.
     
     1945년 통계에 의하면, 한반도에서 생산되는 철광석의 98%, 유연탄의 87%, 역청탄의 98%, 전력의 92%가 북한에서 생산됐다. 남북한 산업의 규모도 금속산업은 남한 9.9% : 북한 90.1%, 화학산업은 남한 18.2% : 북한 81.8%에 달했다.
     
     북한은 국민 1인당 철도의 길이, 발전량에서 일본보다 앞섰을 정도다. 그나마 한국에 있었던 인프라는 6·25사변을 겪으며 폐허가 돼 버렸다. 한강의 기적은 말 그대로 無에서 有를 만들어 낸 것이다.
     
     한국의 성취와 북한의 실패. 원인은 간단하다. 건국 당시 60여 년 전 선택한 시스템 차이가 성패를 갈랐다. 南의 선택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한미동맹. 北의 선택은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 그리고 반미주의. 서로 다른 길을 걷고 다른 결과를 얻었다.
     
     더욱 본질적 선택은 開放(개방)과 閉鎖(폐쇄)에 있었다. 개방을 통해 자유·인권·법치와 같은 보편적 가치를 받아들인 한국은 성공했고 폐쇄의 울타리 속으로 들어간 북한은 실패했다. 가장 강한 나라인 미국과 동맹한 혜택도 컸다. 안보에 들어갈 비용을 줄였고 경제에 집중할 ‘숨 쉴 틈(breathing space)’을 얻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外向的(외향적) 발산·자유의 길을 걸을 때 나라는 커지고 內向的(내향적) 수렴·평등의 길을 걸을 때 쇠락한다. 사람이건 동물이건 신명 나게 돌아다녀야 사는 법이다. 집안에서 식구끼리 싸움 나면 만사 불통이다. 家和萬事成(가화만사성)은 가정 뿐 아니라 국가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안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계급과 계급의 갈등을 자극한 사회는 고꾸라진다.
     
     지난 60년 한반도는 역사의 리트머스 시험지 같았다. 輸入代替(수입대체)가 아닌 輸出指向(수출지향), 內向的 수렴이 아닌 外向的 발산의 길을 걸었던 한국은 성장의 길을 걸었다. 반면 국가의 테두리 내에서 有産者(유산자)와 無産者(무산자), 친일파와 빨치산, 공동체 내 선을 그어 적대적 숙청의 길을 걸었던 북한은 안에서 썩어갔다. 북한은 우리 민족 핏속에 흐르는 인사이더(insider) 기질과 조선조 주자학, 20세기 공산주의가 만나서 태어난 극단의 극이다.
     
     대한민국의 잠재력은 지금도 유효하다. 60년 성공의 배경인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한미동맹의 시스템, 閉鎖(폐쇄)가 아닌 開放(개방)의 길을 걸을 때 남북한 통일도, 강대국 진입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민중주의와 민족주의, ‘복지’·‘분배’·‘평등’·‘상생’·‘균형’ 같은 말로 포장한 칸막이 저주에 빠져든다면 조선과 북한의 비극을 되풀이할지 모른다. 열린 사회·열린 이념이 아닌 구호와 깃발로 덮인 거짓의 시네마폴리티카다.
     
     안에서 싸우지 말고 밖으로 풀자.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한미동맹, 閉鎖(폐쇄)가 아닌 開放(개방)의 길에서 만나게 될 통일강국의 비전은 꿈이 아니다. 골드만삭스는 2050년 대한민국의 1인당GDP가 세계2위를 기록할 것이라 전망했다. 실제 통일 이후 한국은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에 앞서는 세계적 강국에 진입할 것이다.
     
     한국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국민 전체가 고등교육으로 무장한 人的資源(인적자원)의 힘이기도 하다. 한국은 훌륭한 사회간접자본을 갖추고 있고 세계경제규모 2위의 일본과 4위의 중국이라는 역동적 경제권과 함께 하고 있다. 이 나라는 절망하고 떠나기엔 너무나 멋진 나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