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중권과 중앙일보, 중년 마초들의 위험한 '반성'
     
    본인들이 가슴사진 즐겼으면 본인들만 반성하라
      
    변희재, pyein2@hanmail.net      
     
    인터넷판 1월 31일자 조인스닷컴에는 '나꼼수 ‘비키니 사진’ 논란 사과하는 게 옳다…모든 남성들, 자기를 돌아보자‘라는 칼럼이 실렸다. 이 칼럼을 진중권이 한겨레신문의 논조와 비교하면서 트윗에서 유통시키고 있다. 이 칼럼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가슴 사진에서 고마움 직후에 불편함이 찾아온 것은 내가 남성이라는 ‘범(汎)가해자’군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여성학계에서도 여자 몸의 상품화, 소비 객체화에 대해 진작부터 고민과 논의가 많았다. ‘예쁜 여자 되기를 거부하는 것’과 ‘미모를 여성의 특권으로 여기는 것’이라는 상반된 대처방법이 제시됐지만 둘 다 가부장적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지금도 제3의 대안들이 활발히 모색되고 있다고 한다(이영아, 『예쁜 여자 만들기』).

    성매매금지법이 초래한 생계난에 항의하는 집창촌 여성들의 집단 시위에서 보듯이, 젠더(gender·성) 문제는 굵직한 주제가 이리저리 얽혀 있는 지뢰밭 영역이다. 마패 하나 달랑 꺼내 든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나꼼수가 혹시 신흥종교만 아니라면, 정중한 사과가 따라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사과는 나꼼수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 땅의 모든 남성이 공유하는 게 옳지 않을까 싶다“

    래디컬 페미니즘 겉멋으로 배운 진중권과 노재현

    진중권은 일찌감치 트윗에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남성 중에서 마초기질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많지 않다. 나를 포함하여 남성들은 나꼼수에 대한 비난보다는 자기 내면에 들어와 있는 우익 마초 근성을 반성하고, 나꼼수 멤버들과 더불어 여성들에게 함께 사과를 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노재현과 진중권은 일반적으로 나꼼수에 사과를 요구하는 맥락과 전혀 다르다. 이들은 남성 안의 ‘마초성’을 상정한 뒤, 나꼼수 가슴사진을 보고 즐긴 모든 남성에게 반성과 회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래디컬
    페미니즘을 겉멋으로 배운 50대 남성들이 주로 쓰는 논법이다.

    386세대 이상의 남성들은 여성에 대해 무언가 심각한 죄책감을 가졌던지, 혹은 가진 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의 70년대 혹은 80년대의 대학생활이 어땠는지 알 길이 없으나,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들어보면 여성동지들을 무지막지하게 학대하고 차별하고 희롱하고, 성적으로 착취했던 것 같다. 그 원죄의식을 2012년에도 모든 남성들에게 공유하자고 선동한다.

    그러나 나꼼수 가슴응원 사진을 접한 30대 이하의 일반적인 남성들을 상정해보자. 여론조사를 해볼 수야 없겠으나, 대개 ‘저런 머리가 텅빈 것들’, ‘가슴은 볼만 하네’, ‘나꼼수 잡놈들에게는 아까운 순수한 여성’ 이 정도 반응 아니었을까? 진중권과 노재현은 이 반응에 대해 남성들 전체에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이 논법만 보더라도 ‘저런 머리가 텅빈 것들’, ‘나꼼수 잡놈들에게는 아까운 순수한 여성’이란 반응을 보인 남성들은 사과할 이유가 없다. 필자의 입장은 후자였다. 진중권과 노재현은 위의 두 가지 반응을 보일 남성들은 애초에 머리 속에 없다. 이들이 젊었을 때 어떤 삶을 살았는지 몰라도, 가슴사진만 보면 방구석에서 숨어서 마초근성 드러내며 모두 즐겼을 거라는 선입관을 갖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본인들이 가슴사진 보고 그렇게 느꼈나보다.

    그러나 설사 가슴사진을 즐겼다 해도 전혀 반성해야 할 일이 아니다. 여성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가슴을 즐기라고 공개했다. 그걸 인터넷으로 보고 즐겼다. 이걸 왜 전체 남성이 사과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게 따지면 이들은 온갖 벗은 여성 갖다 걸어놓는 포털들을 어떻게 보고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진중권은 이제껏 포털의 심각성을 비판한 바가 없다. 특히 진중권은 오히려 포털이 정치적으로 이득이 된다 생각하는지, 사안마다 포털을 옹호해온 인물이다.

    “보아 가슴 커지고 있다”,“미스정 내 취향 아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진중권

    또한 진중권은 최근에는 종편3사에 저주를 퍼부으며 심지어는 종편3사가 “보아의 가슴이 커지고 있다”는 보도를 할 것이라며, 아무 이유 없이 보아의 가슴을 들먹이다 비판을 받고 삭제한 바도 있다. 그 이전에는 자신을 비판했던 20대 번역 전문가 정지민에 대해 “미스 정, 너는 내 취향 아니야”라는 명백한 성희롱을 인터넷에서 공개적으로 저지른 적도 잇다.

    아무리 봐도 진중권, 노재현 등 40대와 50대 이상의 낡은 지식인들은 여성만 보면 모두 성적으로 흥분해서 어쩌질 못하는 이상한 취향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종편 비판하면서 ‘보아 가슴’부터 말을 꺼낸다거나 자신을 비판한 여성을 ‘취향’ 거론하며 희롱한다거나 하는 태도가 그 방증이다.

    그렇게 현대사회의 여성만 보면 성적인 대상으로 인식하는 본인들 스스로의 태도가 부끄럽다보니, 이를 “전체 남성들이 회개하라” 이렇게 면피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진중권과 노재현의 사고는 히틀러식 전체주의와 인종주의와 유사

    이들의 사고가 위험한 것은, 이들이 사실상 전체주의와 인종주의 사고에 젖어있기 때문이다. 나찌는 인간의 내면의 추악한 면을 제거해 나간다는 명목으로 아리안족 우월주의를 기준으로 한 인간우생학을 확산시킨다.

    진중권이나 노재현식 사이비 페미니즘 사고가 바로 이러한 나찌식 사고와 유사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남성의 마초성이란 불확실한 개념을 머리에 넣고, 모든 남성이 회개해야 한다는 목사와 같은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대충 추측해보면 여성의 육체를 즐기는 남성의 감성 그 자체를 악의 축, 마초라 규정하는 듯하다.

    이런 인종적 사고가 연장이 되면 남성의 마초 근성을 자극한다는 여성 자체를 제거해야할 악으로 규정하게 된다. 대표적인 게 바로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주도한 집창촌 근절이다. 이 정책의 폐단은 사회적 약자인 매춘 여성들이 감당했다. 몇몇 대학 강단의 귀족 여성들이 “더러운 것들 없애 버려” 이 한 마디에 약자들의 삶이 휘청거렸던 것이다.

    나찌는 순결하지 않은 여성을 제거했다. 그러나 진중권이나 노재현이 이런 일을 벌일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래디컬 페미니즘은 나찌나, 혹은 부인과의 섹스만 인정하는 칸트주의와 달리, 이른바 ‘성해방’ 개념으로 난잡한 사생활을 예찬하기 때문이다. 이게 실천적으로는 더 문제가 된다.

    난잡한 사생활 옹호하는 래디컬 페미니즘, 마초 남성들의 놀이터

    칸트주의자들은 오직 결혼상대자와의 섹스만 인정하기 때문에 그 이외의 여성에 대한 성적 시선은 스스로 반성하고 성찰할 수 있다. 그러나 진중권류 등 사이비 페미니스트들은 성해방 개념으로 가부장제 사회를 부정하기 때문에 아무하고나 섹스를 해도 된다는 쪽이다.

    진중권류가 만들어내는 성적 구도는, 여성을 한번 즐기고 버리면 된다고 사고하는 남성들의 놀이터를 만들 가능성이 농후하다. 나의 대학시절에도 바로 이런 남녀구도를 노리고 자칭 페미니스트가 된 남성 마초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나중에 바람둥이란 이유 하나로 성폭력범으로 누명 쓰고 응징을 당하기도 했다.

    진중권이나 노재현에게 고언한다. 이른바 ‘내안의 마초’ 문제로 모든 남성들을 반성케 하려면, 칸트주의나 나찌주의, 정 안 되면 기독교주의라도 받아들여라. 그러면 들어줄 만은 하다.

    하지만 중년남성으로서 어설프게 래디컬 페미니즘 차용하여 ‘내 안의 마초’을 주장하진 말라. 앞서 말한 대로 이는 실천할 수도 없는 일이며, 도덕적으로도 정당하지 않은 일이다.

    90년대 이후 페미니즘이 급속도로 보급되면서 30대 이하의 남녀 간의 관계는 평등의 최대점까지 와있다고 본다. 젊은 세대는 자연스럽게 잘 지내고 있는데, 늙은 마초들이 튀어나와서 “회개하라 남성들아” 이런 주장을 하는 것, 추태에 가깝다. 현대여성을 오직 성적 대상으로 보는 자들이 아니라면, 저런 발상 자체가 나올 수가 없다.

    잡놈 김어준보다 시대에 뒤떨어진 중년 마초들이 훨씬 더 위험하다

    ‘생물학적 완성도를 즐겼다’는 잡놈 김어준보다, 사실은 진중권이나 노재현의 시각이 훨씬 더 위험하다. 김어준이야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지만, 진중권이나 노재현은 자기들 스스로 부끄럽다는 이유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언제든 폭력을 저지를 수 있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 가슴사진 보고 혼자 즐긴 게 부끄러우면 혼자 반성했으면 한다. 그 반성은 가슴사진 즐겼다는 것보다는 시대에 뒤떨어지고 있다는 논객의 자질에 대한 반성이면 더욱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