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상돈, 4대강 사업 반대 '분신(焚身) 승려' 옹호 
     
      "베트남 정권에 반대했던 월남 승려들의 경우가 기억에 남는다" 주장
    金泌材    
      
    <1> 박근혜 의원이 한나라당 비대위원으로 영입한 이상돈 교수는 4대강 사업 반대를 주장하며 분신자살(焚身自殺)한 승려를 베트남 전쟁 당시 '소신공양'(燒身供養)을 했던 승려들에 비유하기도 했다.

    비구니(比丘尼) 문수(文殊)는 2010년 5월31일 경북 군위군 사직리 유천잠수교 제방에서 “이명박 정권은 4대강 사업을 즉각 중지-포기하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뒤, 온 몸에 휘발유를 뿌려 분신자살(焚身自殺)했다.

    당시 승려 文殊의 이른바 소신공양(燒身供養: 부처에게 공양하고자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 행위) 소식이 알려지자, 실천불교전국승가회 의장 퇴휴, 불교환경연대 집행위원장 현각 등의 인물들이 현장으로 급파되어 사건 경위에 대한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문제는 당시 사건에 대한 李교수의 해석이다. 그는 2010년 6월1일자 칼럼(제목: 문수 스님의 ‘소신 공양’ 소식을 접하며)에서 文殊 승려를 언급하며 “스님의 소신공양은 1960년대 초 베트남 정권에 반대했던 월남 승려들의 경우가 기억에 남는다”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베트남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중학생이었다. 당시 월남 스님들의 연속 분신은 세계적 뉴스였고, 그것은 충격 바로 그것이었다. 분신 사태가 일어나고 반정부 시위가 격화되자 고딘디엠 대통령의 동생인 실력자 고딘 누의 부인인 마담 누는 승려 분신을 '바베큐'라고 부르면서 악담을 했다. (고딘디엠은 독신이어서 제수인 미모의 마담 누가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했었다.) 마담 누는 “바베큐에 쓴 휘발유가 미제라서 완전한 국산이 아니다” “다른 승려가 분신을 하겠다면 자기가 휘발유를 공급하겠다”는 등 비상식적인 독설을 퍼부어서  상황을 악화시켰다. 이런 형제 집권자를 두고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미국은 월남 군부를 조종해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케네디 대통령이 직접 승인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승려 분신 사건이 결정적 계기였다. 이런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결국 실패했음은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참고로 승려 文殊는 1994년 조계종 개혁 당시 범종추(범승가종단개혁추진회)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다. 범종추는 1994년 3월23일 실천불교승가회, 동국대석림동문회, 선우도량 등 8개 승가단체가 결성한 소위 ‘불교계 진보(進步)단체의 집합체’로 알려져 왔다.

    범종추는 조계종단 개혁과 서의현 총무원장 퇴진운동을 벌여 1994년 4월 조계사 폭력사태를 계기로 일반신도와 조계종 원로들의 지지를 얻어 徐총무원장 퇴진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베트남, 소위 평화-민족-인도주의 위장세력의 선전-선동으로 패망

    <2> 베트남 전쟁당시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자유베트남)에 수많은 간첩을 파견, 동조자를 포섭하고 각 분야에 간첩을 침투시켜 혼란을 조성하는 등 정부가 힘을 집중시키기 못하도록 했다. 1975년 남베트남은 북베트남 정규군의 무력침공과 베트콩의 게릴라전에 패배한 것 이상으로 이들 100여개 이상의 左翼 단체의 선전전에 당했던 것이다.

    패망 당시 베트남에는 공산당원 9500명, 인민혁명당원 4만 명, 즉 전체 인구의 0.5% 정도가 사회의 밑뿌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5만 명의 월맹간첩들은 민족주의자, 평화주의자, 인도주의자로 위장한 채 시민·종교단체는 물론 대통령비서실장과 장관, 도지사 등 권력핵심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전쟁반대를 주장하며 1963년 6월 11일 분신자살(焚身自殺)한 승려 '틱쾅둑'(Thich Quang Duc) 이후 베트남에서는 종교인들의 분신자살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들이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미군의 전면철수 후 베트남패망으로 수많은 시민들이 죽어간 이후에나 확인됐다. 1967년 치러진 베트남 대통령 선거에서 차점으로 낙선된 야당지도자 쭝딘쥬도 대표적 간첩이었다. 그는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조상들이 얼마나 슬퍼하겠냐”면서 월맹에 대한 ‘포용정책’을 주동했다.

    간첩들이 가장 많이 침투했던 것은 시민·종교단체의 부패척결운동과 反美·反戰평화운동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선전선동을 통해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대해가면서, 국방과 안보를 강조하는 사람은 전쟁에 미친 또는 정신 나간 사람으로 취급받았다.

    반공을 외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애국인사, 언론인들이 다음날이면 시체로 발견됐고, 이들의 가족-친지들이 사회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그러나 이상돈 교수는 이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은 채, 자신의 칼럼 말미에 “정부는 아무 일도 없는 듯이 공사를 밀고 나갈 것이다. 앞으로 일어나 일들이 정말 걱정된다”고 했다.  

    승려의 自殺을 선거에 이용한 이정희, 한명숙, 정세균

    <3> 승려 文殊가 분신자살(焚身自殺)하자 민노당, 민주당, 국민참여당, 창조한국당 등 야(野) 4당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건 발생 다음 날인 2010년 6월1일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명박 정권을 표로 심판해야 한다면서 여론을 선동했다. 

    정세균 당시 민주당 대표는 서울광장에서 한명숙 당시 서울시장 후보와 함께 야(野) 4당 대표들과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어제 文殊스님이 소신공양을 하셨다. 국민 여러분, 시민 여러분 꼭 투표장에 나가달라. 정권 심판, 정책 변경하는 방법은 투표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명숙 당시 서울시장 후보는 “文殊스님의 분신을 보며 70년대 전태일 열사의 분신을 생각하게 되었다”면서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에 근로자나 노동자의 인권이나 환경의 발전이 계속됐다. 그리고 우리는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데 언론에서는 文殊스님의 소식이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 단신정도로만 이야기를 한다. 아무리 소리를 지르고 호소를 해도 공정하게 보도되지 않으면 우리는 발전할 수가 없다. 기자 여러분들, 목소리를 공정하게 내달라”고 했다. 

    민노당의 이정희 의원은 “文殊스님은 4대강 사업을 반대하다 돌아가셨다”면서 “MB 정부는 국민을 무시하는 오만한 정권이다. 국민이 심판해주지 않으면 4대강을 살릴 기회가 다시는 없다”고 주장했다.

    李의원은 이어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20~30대 젊은 세대들에게, 독재 정권에 맞서 싸워서 민주주의를 이뤄냈던 40대 동년배 여러분, 50~60대 어르신 여러분, 현재 우리 젊은이의 꿈과 희망이 사라지고, 어른들의 복지는 4대강 사업 때문에 사라지고 있다”고 했다.

    (주: 위 기사에서 4대강 사업을 반대하며 自殺한 文殊 승려가 간첩행위 등 反국가 활동 전력은 없었음을 밝힌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