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원순의 사람들(2) - 두 얼굴의 남자 유시민 
      
     "국기에 대한 맹세는 파시즘 잔재"
    金泌材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캠프 공동선대위원장으로 활동한 柳時敏(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1984년 9월17일~27일 기간 동안 서울대에서 잇달아 발생한 4건의 시민감금 폭행사건의 주동자이다. 柳대표는 당시 사건을 ‘서울대프락치사건’, ‘민주화운동경력’으로 위장해왔으나 실제로는 서울대에 출입한 외부인을 프락치로 몰아 감금 및 폭행을 4건이나 주도, 학교에서 除名(제명)당하고 實刑(실형)을 선고받은 사건이었다.

    당시 서울대 경제학과 3학년이던 柳대표 등은 서울대에 자료를 구하러 간 당시 방송통신대생 全基東(전기동) 씨와 鄭龍範(정용범) 씨 등 4명의 무고한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학도호국단 사무실에 감금했다. 이후 이들의 눈을 가린 뒤 양손을 뒤로 묶고 무릎을 꿇게 한 다음 집단구타를 했다. 당시 사건기록에 따르면 柳대표 등은 주전자로 全씨의 입과 코에 물을 붓고, 세면대 물통에 얼굴을 집어넣어 숨을 못 쉬게 하는 등 가혹행위를 했다.

    고문을 당한 피해자 鄭씨는 이튿날 오후 풀려났고, 전 씨는 정 씨가 풀려난 이후 계속 고문을 받던 중 실신, 앰뷸런스에 실려가 목숨을 건졌다. 그러나 全씨는 폭행 후유증으로 고시공부를 접어야만 했다. 또 다른 피해자인 鄭씨는 당시 충격으로 거의 폐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2003년 11월 피해자 全씨는 柳대표 등으로부터 “감금, 폭행, 고문을 당한 사건을 민주화운동경력으로 왜곡 표현해 인격권이 침해됐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全씨는 “柳의원(당시 열린당 국회의원)의 親누나인 유시춘 씨가 상임위원으로 있는 국가인권위가 공정한 처리를 해줄지 의문이지만 柳의원의 거짓속임수를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진정서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柳대표는 국회의원 당선 이후인 2003년 7월1일 ‘북한인권개선촉구결의안’채택에 반대하며 ‘북한인권침해에 대한 언급은 북핵(北核)문제의 평화적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었다. 2003년 4월29일에는 국회 본회의에 평상복 차림으로 첫 등원, 의원 선서를 하려다 품위문제로 선서가 연기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국기에 대한 맹세’를 파시즘과 日帝(일제) 잔재라며 “주권자로 하여금 공개적인 장소에서 국가 상징물 및 국가에 대해 충성을 맹세하게 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었다. 

    당시 사건으로 네티즌의 비난이 쇄도하자 “시골마을의 경로잔치와 마을의 부녀회에서까지 굳이 국민의 례를 하는 것은 국민의례가 남용되고 있다는 생각이며, 특히 저는 애국심 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지만, 이는 내면적 가치인데 국기 앞에서 충성을 공개 서약케 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 어긋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기에 대한 맹세는 박정희 정권이 남긴 국가주의 체제의 유물”이라고 말했다.

    김필재(金泌材) spooner1@hanmail.net

    [관련자료] 유시민 대표의 문제 발언 모음

    “北核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은 美강경파 때문”

    ▲ “북핵문제가 풀리지 않고 이는 것은 미국 내 강경파가 동북아에서 주도권을 유지하기 위해 가상의 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북한 체제가 갑자기 붕괴되는 것은 전쟁에 버금가는 비상사태가 될 것이며 이 같은 사태를 막기 위해서라도 대북 지원에 소요되는 비용을 더 써야 한다.”(2005년 5월12일, 대구 계명대 특강 「북한의 핵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 “억울하지만 말 못했던 것이 참 많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경제를 살렸다고 하는데 (朴  전 대통령이 시해된) 1979년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였고, 장기간의 독재가 대대적인 경제혼란으로 이어졌다. (2005년 7월16일,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회에서)

    ▲ “선동하는 보도를 내는 조선, 동아는 신문이 아니라 독극물이다.” (2005년 10월17일,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 회의)

    ▲ “농촌 노인들이 멧돼지의 공격으로 불안해하고 있는데, 이는 멧돼지들이 적정수를 넘어서면서 민가로 내려와 인간과 거주영역 싸움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되면 첫눈 내리는 날 공수부대를 동원해 멧돼지를 잡겠다.” (2007년 8월21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폭군”

    ▲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1년 만에 전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폭군으로 기억될 것이다…(중략) 이명박 정부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기 위해 국가를 가난하게 만드는 행위를 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박희태 대표가 그런 반(反)국가적 행위의 주역이다.” (2009년 10월14일, 경남 양산 민주당 송인배 후보 지지 긴급 기자회견에서)
     
    ▲ “넓게 연대하고 협력해 노무현 정신을 이어나가야 한다. 盧 전 대통령은 자기 시대의 과제를 직시했고 시대가 지워준 십자가를 맸다. 그것을 위해 노력하다가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자신의 존재가 짐이 된다고 생각해 스스로 목숨을 거뒀다.” (2009년 10월23일, 「노무현 시민학교」 강연에서)
     
    ▲ “만일 북한이 개입돼 비극이 일어났다면 군 지휘관과 현 정권이 책임져야 할 문제다. (정부가) 어뢰 공격으로 배가 동강 난 것 같다고 판단할 수 있는 사실적 근거를 못 주고 있다…(중략)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사실에 따라 대처하는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끝까지 국민을 속이고 협박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이것을 통제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2010년 5월17일,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서)
     
     “내가 그 위치에 있었더라도 對北 송금 했을 것”

    ▲ “대북 송금 사건은 남북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 유지라는 대의를 위한 사소한 절차적 실수였다. 박지원 원내 대표가 당시 산업은행을 움직여서 북한에 4억여 달러의 뒷돈을 준 일은 절차적 법률 위반으로 사소한 것이고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한반도 전쟁 위협을 제거하는 것은 큰 일이여서 작은 불법을 한 것 뿐…(중략) 내가 그 위치에 있었다 하더라도 그렇게 했을 것. (2010년 5월31일, 경기 수원 아주대에서 가진 국민참여당 선거유세)
     
    ※박지원은 대북 불법 송금을 주도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3년에 추징금 1억 원을 선고 받아 2006년 5월25일 법정 구속됐다. 그 후 8개월 뒤인 2007년 2월9일 특별사면 돼 형 집행이 정지됐으며, 2007년 12월31일 복권됐다.
     
    ▲ “국민참여당이 없었다면 민주노동당에 입당했을 것이다. 민노당과는 정치적 이념과 노선이 비슷하고 윤리적 책임도 공감하고 있다. 연대도 잘 될 것이다.” (2010년 10월14일, 전라북도를 방문해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