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 권력에 대한 진지한 성찰없이 부화뇌동각 매체-포털뉴스팀에 포진...정치적 선동에만 몰두
  • 지난 6.2 지자체 선거에서 여권은 30대에서 무려 35%의 표차로 야권에 밀렸다. 20대에서 20%, 40대에서 15% 밀린 것과 비교해도, 큰 차이이다. 그러나 당시 언론에서는 이러한 30대의 선거 역할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무관심했다. 대다수의 언론은 20대의 역할만 집중 조명했다. 언론계 전체적으로 30대의 정치의식이나 현실에 대해 은폐하자는 암묵적 합의가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뒤 1년이 지난 이번 10.26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역시 30대의 76%가 박원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었다. 20대는 69%, 40대는 67%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스윙보터 역할을 했다며 40대의 표심만을 집중 부각시키고 있다.

     지금의 30대가 20대였던 시절인 2002년 대선에서, 이들은 노무현 정권의 기반인 386세대와 똑같은 수준으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지만, 아무도 이에 주목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386세대만 화제에 올랐던 것이다.

     왜 30대는 전 세대 중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야권을 지원하면서도, 아무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을까? 지난 6.2 지방선거 이후에도 미디어워치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지만, 그 후 1년이 지나도록 같은 행태가 반복되고 있다.

     30대 고용률 최악, 결혼률, 출산률 저하의 주범

     다른 이유를 떠나서 30대 스스로 30대의 처참한 현실을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현재 30대는 50대보다도 취업률이 떨어지고 있다. 주로 55세 이후 은퇴를 한다는 점에서, 이는 매우 이례적이고 심각한 현상이다. 특히 최근 두 달 동안 30대는 전 세대 중에서 유일하게 취업률이 감소했다. 통계적으로만 봐도, 30대의 삶은 매우 불안정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미래에 결정적인 장애물로 지적되고 있는 결혼률과 출산률 저하와 이혼률 증가의 주범도 30대이다. 삶이 불안정하니,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방송사에서는 골드미스라는 거창한 이름을 지어 화려한 30대 싱글족을 띄우고 있으나, 이는 참혹한 현실을 감추기 위한 하나의 포장일 뿐이다. 30대 여성의 삶은 남성에 비해 더 처참하다.

     지난 지자체 선거 직전 친노좌파 매체에서는 주로 대학등록금과 취업 문제를 소재로 20대의 비참한 삶을 지속적으로 다루어왔다. 이로 인해 선거 직전에 100여개의 친노좌파 20대 정치단체는 투표독려 운동을 하며 선거에 참여하였다.

     이를 감안한다면, 최소한 친노좌파 매체에서 집중적으로 30대의 비참한 현실을 기획하여 이를 정치적 선전도구로 활용할 법도 한데, 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 왜 그럴까? 매체의 의도를 분석하기 전에 실제로 30대의 삶에 대한 기획을 했을 때, 어떤 효과가 발생할지부터 추측해볼 필요가 있다.

     30대는 역대 최악의 고용률 저하에 시달리면서, 취업과 학업 모두를 포기한 니트족이 가장 많은 세대이기도 하다. 각종 통계에서 100만명이 일찌감치 넘어선 상황이다. 이것은 이명박 정부 때 시작된 일이 아니다. 지금의 30대 첫 세대들이 사회에 진출할 90년대 후반부터 누적된 문제이다. 원인 분석을 시작하는 순간 이명박 정부의 책임이 덜어지는 것이다. 바로 윗세대인 386세대의 취업률과 비교해보면, 세대 간의 불화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30대들의 사회적인 역할을 살펴보면 현실은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현 국회에서 30대 정치인은 한나라당의 김진재 의원의 아들 김세연 의원 단 한 명이다. 그러나 김세연 의원이 30대를 대표한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386세대가 30대 시절, 김민석, 임종석 등등의 정치인들이 국회를 누볐던 것과 비교할 수도 없는 미약한 활동이다.
     문화계에서는 공지영, 박찬욱, 봉준호 등등이 모두 30대부터 문단과 영화판을 휩쓸었다. 학계는 현재까지 활약하는 대표적인 386세대 학자들 모두가 30대부터 한국사회의 담론을 주도했다. 서울대 법대 조국 교수와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는 ‘진보집권플랜’을 통해 나이 50이 넘어서도 여전히 주도권을 놓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자기 담론을 생산할 능력이 없는 30대 친노좌파 논객들

     반면에 30대의 경우 문화계와 학계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 없다. 억지로 찾으라면 개그맨 김제동이다. 그러나 김제동의 경우 독자적인 담론을 생산하는 인물이 아니다. 윗 세대가 만들어낸 권력형 갈등구조에 편승하여, 이를 확대 재생산하는 역할에 머물러있다. 이는 30대 논객이라는 고재열, 김용민 등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 담론을 생산을 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 이른바 기생형 논객으로 연명하고 있는 셈이다. 하다 못해 생산적인 대안이라고는 한줄도 찾아볼 수 없는 글쓰기를 하는 진중권의 30대 시절과 비교하기도 어려운 수준이다.

     반면 우파진영에서는 김성욱, 정해윤 등이 통일과 세대경제 등에서 독자적인 담론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청년창업과 문화 관련한 각종 전문단체들의 축적된 성과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문화 헤게모니 전체가 좌파로 넘어간 상황에서, 이들의 활동이 주목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좌우 양 진영 모두 30대를 대표할 만한 지성이나 리더들이 386세대와 비교하여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인 셈이다. 과연 이것은 30대라는 세대 전체의 능력 부족 때문일까?

     이런 식으로 30대의 현실을 하나하나 따지고 들어가면, 이명박 정부의 실정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무언가 깊은 진실을 엿볼 수 있다. 30대는 정권의 부침과 관계없이 늘 소외되고 왜곡되었으며, 특정 정치세력에 이용당하고, 전 세대에 가장 표쏠림이 심한 투표행태를 보이면서도, 항상 정치적으로 무시당해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이 명확하게 드러나기 시작했을 때, 30대의 몰표를 바탕으로 선거에서 승리하고 있는 야권진영이 의외로 손해를 볼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는 상대적이다. 어차피 한나라당은 30대에서 표를 받는 것을 포기했으니 잃어버릴 것도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정치적 의도 때문에 30대들의 삶이 은폐되고 있을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는 것 같다. 30대의 삶을 다룰 수 있는 기관은 언론이다. 현재 언론에서 30대는 방송과 신문 모두 실무를 책임지는 세대이다. 신문에서는 가장 기사를 많이 작성할 수밖에 없는 세대이고, 방송에서는 30대 여성 작가가 방송제작의 실무를 장악하고 있다.

     30대의 현실을 다루라면 바로 이러한 30대 언론인들 스스로 해야한다. 이들이 이런 작업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해 지자체 선거 직후 KBS 심야토론에서는 30대의 현실을 주제로 잡았다. 그때 시사IN의 고재열 기자는 “30대는 민주화 이후의 물질적 축복을 받은 세대이고, 파리지앵과 뉴요커의 삶을 살아가는 세대”라며, 자화자찬했다. 현실을 생생히 탐구해야할 기자직을 가진 30대가 30대의 참혹한 현실을 180도 왜곡하여 선동했던 것이다.

     고재열은 30대의 평균적 의식을 갖고 있는 기자일 뿐이다. 중요한 점은 30대 언론인 스스로 현실을 드러내며, 본질을 짚어서, 30대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나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다. 30대 전체로 볼 때는 30대 언론인들은 매우 파렴치한 직무유기를 범하고 있는 셈이다.

     30대 언론인들, 각 매체와 포털 뉴스팀에 포진하여 정치적 선동

     그렇다며 차라리 가만히 있으면 다행이련만, 이들은 각 매체와 포털 뉴스팀에 포진되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치적 선동에 개입하고 있다. 그것도 당당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니라, 뒤에 숨어서 총질하는 방식이다. 스스로 주장을 하지 못하고, 386세대 논자의 말을 인용하며, 다른 진영 인물의 말을 뒤틀어 왜곡하는 수법 말이다. 그러다보니 전체 언론사에서 자기만의 메시지를 가지고 대중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정론직필형 언론인이 배출되지 않는 유일한 세대이기도 하다.

     30대 언론인들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차분히 성찰해보면, 자신들이 30대 전체의 삶에 막대한 해악을 끼치고 있는지 알고 있으리라 믿는다. 특정 정치세력의 나팔수 역할하며 세대의 이익을 팔아먹는 몇몇 기자들부터 말이다

     친일세력은 사악한 사람들이 아니라 일본 중심의 동북아 질서가 영원히 지속될 거라는 정치적 오판을 내린 인물들이다. 지금의 30대 언론인들 역시 386세대의 권력구조가 영원할 거라는 착각 속에 자신들의 세대 이익에 반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조만간 386 권력 구조가 해체되었을 때, 친일청산과 똑같은 방식으로 최소한 30대 언론인들을 대상으로 반 세대적 언론 활동에 부역한 인물들에 대한 심판을 내려야 할 때가 올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