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보수, 이제는 바뀌어야 산다  
      
    보수는 이념 게임을 하고, 좌익은 문화 게임을 한 결과 논리보다 쉬운 감성의 자극에 당한다.

    장진성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왜 젊은층이 박원순씨에게 표를 몰아주었는가? 안철수 바람? 기성정치권에 대한 반발? 현 정부가 싫어서? 아니다. 절대 아니다. 단지 그 이유들 때문이라면 그렇듯 몰표라는 집체적 양상을 보일 수 없다.

     큰 댐의 붕괴도 작은 구멍에서 시작된다. 나는 그 작은 구멍이 지극히 따분한 사회적 문제들을 ‘개인의 관심’안으로 끌어들이고 조직화 했던 좌익들의 이념콘서트였다고 본다. 즉 보수는 이념게임을 하고, 좌익은 문화게임을 한 결과 논리보다 쉬운 감성의 자극에 당했다고 본다.

     최근 젊은이들의 대화에서 자주 거론되는 것이 “나는 꼼수이다.”라는 인터넷 방송이다. 진보의 대부라는 진중권씨조차 막말방송이라고 비판할 만큼 정상적 인간이라면 방송 진행자들의 거리낌 없는 상스러운 대화, 그 자체에서 혐오감을 느꼈을 그런 방송이다.

     그러나 내용과 상관없이 대중을 포섭하기 위한 그 형식의 수준에 있어서는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선 자동으로 업데이트를 알려주는 인터넷라디오, 인터넷동영상 클립 서비스를 통해 SNS권력을 선점한 점, 기성언론이 외면하거나 숨기는 문제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송으로 특화하여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 점,

     실내 방송의 제한을 넘어 청취자들과 직접 만나 교감하는 콘서트 형식의 전국순회방송, 초청 강사의 강연과 가수들의 음악을 적절히 배합하여 이념주입의 따분함을 극복한 점, 여기에 확인되지 않은 유언비어 수준의 정보들까지 기성사실로 인식될 수 있도록 민주당 정봉주의원이 직접 팟케스트로 가세한 점은 대중을 현혹하기에 충분했다.

     결국 그동안 600만명이 청취한 “나는 꼼수다”는 미국 유력지인 뉴욕타임스(NYT)의 해외판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이 1면 톱기사로 소개했듯 한국 젊은이들의 현실에 대한 분노를 반영하는 방송으로 거듭났다. 장담컨대 박원순씨에게 표를 몰아준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아마도 “나꼼수” 청취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좌익들의 목적은 경멸하지만 방법에는 항상 경탄한다.
    시위도 촛불시위, 이념설교도 강연콘서트, 폭력도 희망버스에 실을 줄 아는 그들의 대중 선동 능력은 혀를 찰 정도이다. 어디 그 뿐인가? 좌파들은 인권, 기부, 평등, 환경문제의 트랜드를 주도하며 그 속에 좌익이념을 융화시켜 전파하고 있다.

     나는 언젠가 “보수이념을 문화화 해야 한다.”라는 칼럼을 썼었다.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보수이념을 주입하고 설파할 수 있는 논리와 형식들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보수이념을 경험의 가치로만 주장하지 말고 미래가치로 꾸준히 디자인해야 한다. 아무리 최고의 엔진이라도 외형이 구식이면 그 자동차도 구식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보수진영에는 왜 그런 이념의 디자이너들이 없을까?
    한국인 특유의 순발력과 창의성이 좌익에는 넘쳐나는데 왜 보수는 고리타분하기만 할까? 그것은 보수 환경의 제약 때문이다. 자기들의 가치관과 아집에 함몰 된 보수 특유의 권위주의가 다양성을 억제해서이다. 그것을 고집하는 자체가 기득권이라는 것을 모른다는데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래서 좌파는 젊은이들을 동반자, 미래로 과찬하는 반면 보수는 젊은이들을 교양세대로 저평가 하고 있다. 의식을 나누지 않는데 어떻게 신념도 나눌 수 있겠는가. 그렇듯 관심의 방법을 모르니 접근의 방법도 모르는 보수여서 진실은 서서히 드러나기 마련이라고 늘 위안을 가지는 게 최선의 방법일 뿐이다.

     무엇보다도 젊은 우파들이 용기 내어 일어서도 그 귀한 행동을 평가하고 격려해 줄 보수정당이 없는 현실이 가장 큰 비극이다. 좌파정당과 중도정당 밖에 없는 현 한국의 정치 생태계에서 어떻게 보수명맥이 이어질 것이며 생존조차 할 수 있겠는가. 지금과 같은 보수, 지금과 같은 한나라당이라면 2012년 대선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음악으로 비유한다면 오늘날 한국의 보수는 순수한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클래식이고, 좌익은 온갖 디지털 조명으로 무대를 장식하는 록, 힙합과 같은 현대음악이다. 고전적 깊이와 역사를 보여주는 클래식음악의 보존적 가치는 인정되지만 지금 당장 젊은이들을 흡수하는데는 현대음악이 독보적이다.
    클래식과 전자악기가 함께 연주하는 편곡의 기술, 이것이 바로 보수의 과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