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같은 땅에서 피눈물 흘리는 2천300만 북한 형제들을 구해주세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의 아프리카, 국제보건, 인권소위가 20일 오후(현지시간) '북한 인권: 도전과 기회'를 주제로 개최한 청문회에 참석해 악명높은 북한 정치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한 김영순씨(74·여)는 증언을 마치며 '북한 동포'에 대한 지원을 간절하게 호소했다.

    이날 청문회는 '중국 민주화 촉진법'을 발의했던 크리스 스미스 하원 외교위원회 인권소위위원장이 주재했다. 탈북자 인권 문제에 관심이 높은 도널드 페인의원(민주) 등이 참석했고 다수의 탈북자들이 청문회장 내에서 수용소 실태를 고발하는 자료 등을 공개했다.

    북한 민주화위원회 여성회장이기도 한 김 씨는 단지 김정일의 사실상 첫 부인이었던 성혜림의 친구였다는 이유만으로 1969년 함경남도 요덕정치수용소에 끌려가 9년간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했다.

    성혜림과 고교와 대학을 같이 다닌 김 씨는 어느날 성혜림으로부터 '5호댁'으로 가야한다는 얘기를 직접들었다. 5호댁은 김정일이 거처하는 특별저택을 의미한다. 수용소에 끌려갈 때만해도 무슨 죄목인지 정말 몰랐다는 그녀는 수용소에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님을 알게됐다.

    그는 성혜림의 친구였거나 김정일과 성혜림의 관계를 알거나 발설한 사람들은 대부분 끌려와 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은 처형되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 씨와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된 죄목은 ▲김일성의 목에 혹이 있다고 말한 죄 ▲김일성 초상화를 훼손한 죄 ▲김정일의 사생활에 대해 말한 죄 ▲성혜림이 김정일의 숨겨진 여자라는 얘기를 한 죄 ▲김정남의 출생에 대해 언급한 죄 등이었다.

    1970년 8월1일부터 9월30일까지 김 씨는 312호실로 불린 보위부 안가로 불려가 그야말로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성혜림이 자신에게 한 말은 물론 성혜림과 관련된 내용을 아는 주변 인사들을 죄다 불어야했다. 결국 그해 10월1일 김 씨의 부모와 형제자매들까지 연좌제가 적용돼 모두 수용소에 수감됐다.

    수용소에서는 새벽 3시30분에 기상해 해가 질 때까지 강제노역을 해야 했다. 그리고는 밤늦게까지 `사상투쟁회의'에 또 시달렸다. 김 씨의 세아들과 딸, 부모는 수용소에서 굶주림으로 결국 세상을 떠났고 관이 없어 거적때기로 시체를 둘둘말아 밭고랑에 버릴 수 밖에 없었다. 김 씨는 1970년 7월 다른 정치수용소로 끌려간 남편의 생사여부를 모른다고 했다.

    한때 오빠가 북한 인민군 사단장 대리를 지내고 김일성의 총애를 받아 유복하게 살았던 김 씨의 가족 중에 남은 사람이라고는 자신과 다른 아들 하나 뿐이었다. 김씨는 2001년 2월1일 북한을 탈출해 2003년 11월 한국에 입국했다. 그녀는 '나는 성 혜림의 친구였다'는 책을 내기도 했다.

    김 씨는 눈물 속에 증언을 끝내면서 "제발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관심을 가져달라"면서 대북 식량지원의 필요성을 묻는 미 의원의 질문에 "김정일 정권을 고립시키고 붕괴시켜야 한다"며 반대입장을 피력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인 평안남도 북창군 봉창리 제18호 관리소에서 28년간 수용생활을 했던 김혜숙(50·여)씨는 "할아버지가 월남했다는 이유로 수감됐다"며 "10여년간 탄광에서 일하며 강냉이로 주린 배를 채웠다"고 증언했다.

    김 씨의 부모님도 모두 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세상을 떠났으며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은 처형을 당한 사람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고 전했다. 그녀도 "북한 땅을 인간답게 사는 나라로 만들어달라"고 호소했다.

    그녀는 특히 자신이 탈북해 중국에서 체류할 때 4차례나 인신매매를 당했다고 전하면서 중국 땅에서 자행되는 탈북자들에 대한 인권 유린실태를 고발했다.

    서울평화상 수상자이며 탈북자 지원의 천사로 불리기도 하는 미국 디펜스재단 슈전 솔티 여사도 이날 청문회에 함께했다. 그녀는 "북한의 정치 수용소는 소련의 악명높은 수용소 굴라그나 나치의 수용소보다 더 오래 존속되고 있다"면서 "중동에서 민주화 바람이 일고 있는데 북한 땅에서 핍박받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북한의 핵문제 뿐 아니라 인권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지속적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북한과의 모든 협상에서 인권문제를 의제로 삼고 ▲대북 식량지원에 있어서도 모니터링 문제가 확보되고 굶주리는 북한 주민에게 먼저 제공된다는 점을 확인해야 하며 ▲자유아시아방송(RFA) 등 북한 주민에게 외부세계의 소식을 전해주는 매체 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고 ▲중국 당국의 탈북자 탄압 중단 ▲탈북자 교회와 탈북자 단체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제의했다.

    현지 소식통은 "버락 오바마 정부 들어 탈북자들의 인권만을 소재로 청문회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