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공인(公人)의 허위 - 노태우와 윤이상

    강규형 (명지대 기록대학원 교수)

    2억 원을 ‘선의’로 줬다는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의 발언이 화제다. 곽 씨는 원치 않는 곳에서 ‘무상급식’을 받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했다. 인간은 결국 위선의 삶을 산다고 한다. 모든 인간은 하루에도 여러 번 거짓말을 한다고도 한다. “인생은 연극이다.” 페르소나(persona·인격)는 희랍어로 가면이란 뜻이다. 그러나 공인(公人)의 발언과 행동의 허위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최근 전혀 성격이 다른 두 공인의 허위가 눈에 띈다.

    노태우 회고록이 나왔다. 회고록을 써서 후세에 남기는 것은 좋은 관행이다. 더구나 이 책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공들여 준비한 티가 역력하다. 필자는 노태우 씨가 저평가된 전직 대통령이라 생각한다. 혹자는 그의 치적인 민주화의 진전과 북방정책이 단지 시대의 흐름에 떠밀려서 한 것이라 평가절하한다. 그러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정치지도자가 어디 한둘이었던가. 12·12 쿠데타와 5·17을 논외로 하고 대통령 시절만 본다면 그는 공적도 많은 대통령이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전직 대통령의 격에 맞지 않는 허언(虛言)이 책에 꽤 있다. ‘미운 놈 하나 조지기’도 균형을 잃은 서술이다. 자서전이란 원래 자기 관점에서만 유리하게 쓴다지만 너무 심한 부분이 많다. 수천억 원에 이르는 부정축재에 대한 서술은 낯 뜨겁기 짝이 없다. “통치자금”으로 모아둔 것을 후임자(김영삼)에게 전달하려다 기회를 놓쳐 그냥 가지고 나왔다는 변명은 어이를 상실케 한다. 차라리 퇴임 후 영향력 유지와 ‘다른’ 사적 용도로 쓰려 챙긴 것이라 솔직히 고백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공식적으론 “29만 원밖에” 없다는 전두환 씨도 실제론 막강한 자금력으로 영향력을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지 않나.

    전직 대통령 격에 안 맞는 虛言

    친동생, 조카에게 “맡겨둔” 비자금을 찾으려 벌이는 인척간 법정투쟁은 또 뭔가. 전직 대통령이 국민에게 절대 보여줘선 안 될 볼썽사나운 모습이다. 미국에 체류하던 노 씨 가족이 거액을 불법 분할예치 했다가 유죄 선고를 받고, 미국 당국의 가택수색에서 돈다발을 묶는 스위스은행 띠가 나온 것 등 더 민망한 예도 많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상 이쯤 해두자.

    고 윤이상 씨는 자칭 권력의 “피해자”였다. 그는 1963년 평양으로 비밀리에 불법 입북하는 등 북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 대가로 10년형을 받은 후 동백림 사건(1967년)이 조작이라 강변했다. 윤이상평화재단도 계속 그렇게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수사가 엄혹했던 것은 맞지만 조작이 아니라는 것은 뒤집을 수 없는 팩트다. 이 사건은 당국의 기획이 아니라 북한에 포섭됐던 임모 교수의 자수로 시작됐다. 그런데 윤 씨는 엉뚱하게 임 교수를 이중 스파이라고 근거 없이 매도하며 자신의 과오를 덮으려 했다.
     
    오길남 씨 가족송환운동으로 윤 씨는 다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오 씨는 윤 씨의 권고로 가족과 입북했고, 탈북 후에는 윤 씨로부터 재입북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협박에 사용한 것이 북한에 남겨둔 가족의 서신, 사진, 녹음테이프라 한다. 윤 씨가 전한 오 씨 부인의 서신엔 “(북한에) 돌아와도 괜찮을 것 같다”고 쓰여 있었고, 윤 씨는 부인의 뜻에 따르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반면에 윤 씨는 자신은 오히려 오 씨 가족 송환에 노력했으나 오 씨가 북한 체류 시 “차관급”이어서 불가능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오 씨가 가족사진을 보며 “히히덕”거리며 가족에 대해선 이미 잊었다고 말했다 강변했다. 두 사람의 상반된 주장 중 누구 말이 더 맞을까. 둘 중 하나는 분명 인간 이하다.

    그런데 북한에선 차관급을 대남방송요원이나 공작원으로 쓰나. 북한 체제의 비호를 받으며 김일성을 찬양하기 바빴던 윤 씨가 사진과 서신을 보여주며 재입북을 강요했을까 아니면 가족 송환을 위해 노력했을까. 상식적인 판단에 맡기자. 평생 “자유, 순수, 화합을 추구했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남의 자유를 속박하는 데 협조했다면 천벌을 받을 일이다. 공교롭게도 북한 수용소에 들어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오 씨 부인은 윤 씨와 같은 경남 통영 출신이다. 참고로 윤 씨 부부는 김일성을 만난 순간 “분단된 조국의 운명을 짊어지고 꿋꿋이 걸어 나가는 김 주석의 모습에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 더 심한 예도 많지만 역시 예술가에 대한 예의로 이 정도에서 그치겠다.

    대한민국 아닌 북한의 애국자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을 기리는 통영국제음악제는 계속돼야 한다. 대한민국은 열린 사회다. 그러나 “평화운동”이니 “민족에 대한 사랑과 화합, 화해의 세계를 추구했다”느니 하는 위선적인 문구는 삭제하자. 윤이상기념공원 기념관도 그냥 두자. 그러나 그가 “애국자”라는 허구도 역시 수정돼야 한다. 아쉽게도 그는 북한의 애국자였지 대한민국의 애국자는 아니었다. 공인의 허위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동아광장, 2011.9.2 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