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前대법관, '사돈' 전화 한통에 대법원장 후보 수락"무거운 짐 짊어지고 고난의 길 가겠다" 각오 밝혀
  • ▲ 양승태(63) 전 대법관(좌)과 김승규(67) 전 국가정보원장  ⓒ 연합뉴스
    ▲ 양승태(63) 전 대법관(좌)과 김승규(67) 전 국가정보원장 ⓒ 연합뉴스

    "저도 네 번 거절했다 다섯 번째 수락했습니다"

    김승규(67) 전 국가정보원장의 전화 한통이, '돌덩이' 같았던 양승태(63) 전 대법관의 마음을 움직였다.

    김 전 원장은 양 전 대법관과 사돈지간이다.

    지난 2005년 양 전 대법관의 둘째 딸과 김 전 원장의 셋째 아들이 결혼하면서 두 사람은 '두 지붕' 한 가족이 됐다.

    김 전 원장은 지난 달 차기 대법원장 후보 물망에 오른 양 전 대법관이 연락을 끊고 훌쩍 미국으로 떠나버리자 직접 전화를 걸어 설득에 나섰다.

    "관직이라는 게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반대로 하기 싫다고 해서 안 할 수도 없는 운명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국정원장 자리는 네 번이나 거절하다 다섯 번째 수락했던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나라가 부를 때 마음 문을 열고 받아들일 것"을 주문했다.

    사돈의 설득에 말문(?)이 막힌 양 전 대법관은 며칠 뒤 김 원장에게 "고맙다"고 전화를 걸며 후보자 지명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감당할 수 있는 자리인지 두려워"

    얼마 뒤 청와대로부터 전화를 받은 양 전 대법관은 17일 밤 귀국, 이튿날 신임 대법원장 후보로 지명됐다.

    양 전 대법관은 지난 18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소재 자택 앞에 모여든 취재진을 상대로 "저보다 훨씬 경륜이 많으신 분들이 계신데 송구스럽다"며 후보자로 지명된 첫 소감을 밝혔다.

    그는 "과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인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며 "어쨌든 지명이 됐으니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그는 "과연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인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밝히면서도 "후보자로 지명된 만큼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내비쳤다.

    19일 오전부터 시작된 첫 공식 일정에서도 '후보자'로서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졌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이용훈 대법원장과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을 잇달아 만난 양 후보자는 "고심 끝에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기로 했다"며 향후 자신에게 주어질 책무를 전심으로 완수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산행"

    지난 2월 대법관 옷을 벗은 양 전 대법관은 그길로 곧장 네팔의 히말라야로 떠났다.

    평소 법원산악회장을 지낼 정도로 '등산 애호가'로 알려진 양 전 대법관은 6년간의 대법관 임기를 마친 뒤, 각종 대형 법무법인의 러브콜을 뿌리치고 백년설이 뒤덮인 안나푸르나로 향했다.

    히말라야에서 내려온 뒤 지난 6월 초 다시 미국 로키산맥으로 떠난 양 전 대법관은 한달 후 청와대로부터 차기 대법원장 인사 검증을 위한 '자기검증 설문서'를 제출해 달라는 요청을 받자 돌연 연락을 끊고 잠적했다.

    그가 '잠행' 장소로 택한 곳은 세계 3대 트레일로 꼽히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요세미티 계곡의 존 뮤어 트레일(John Muir Trail).

    등산가가 꼭 걸어서만 가야하는 '존 뮤어 트레일'은 거리가 358km에 달하고 보급소가 단 한 군데 밖에 없어 '세상에서 가장 힘든 길'이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이와 관련 양 전 대법관을 잘 아는 한 법원 관계자는 "독실한 크리스천인 양 전 대법관이 마치 십자가를 지고 가는 마음으로 산길을 걸었을 것"이라며 "아마도 대법원장이라는 직책이 지닌 무게감과 책임감을 곱씹어 보는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고 밝히기도.

    김승규·양승태, 알고보니 '끈끈한' 사이?

    김승규(67) 전 국가정보원장과 양승태(63) 전 대법관은 서울 법대 2년 선후배 사이이자 사법시험 12회 동기다.

    사법연수원을 2년간 함께 다닌 이들은 80년대 중반 김 전 원장이 제주지검 차장검사를 지낼 당시 양 전 대법관이 제주지법 수석부장판사로 머물면서 더욱 돈독한 사이로 발전했다.

    특히 김 전 원장의 3남 수현씨와 양 전 대법관의 차녀 소임씨가 같은 교회를 다니다 연인 관계로 발전, 2005년 3월 화촉을 밝히면서 두 집안은 사돈지간으로까지 발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