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북한 인권 문제에 국제적 관심을 높이는 활동을 벌이는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44)가 북한인권법 제정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에게 보내는 공개편지를 본지에 보내왔다. 하태경 대표는 이정희 민노당 대표의 서울대 운동권 1년 선배로, 대학 졸업 후 좌파 통일운동을 벌이다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의 실태를 알고 나서 북한 인권 운동에 뛰어들었다. 

    ▼하태경 대표는
    / 서울대 물리학과 86학번으로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전대협 간부를 지냈고, 1989년과 1991년 두 차례 투옥됐다. 1993년 석방된 이후 문익환 목사가 주도하던 재야 단체 '통일맞이'에 들어가 활동했다. 1999년 중국 길림대에 유학, 2004년 국제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SK텔레콤 경영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으로 일했다. 2005년 미국 의회와 EU의 지원을 받아 대북(對北) 민간 라디오 방송인 '열린북한방송'을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 ▲ 하태경 '열린 북한방송' 대표와 이정희 민노당 대표.
    ▲ 하태경 '열린 북한방송' 대표와 이정희 민노당 대표.

    민노당 이정희 대표에게 보내는 공개편지

     이렇게 오랜만에 편지를 쓰자니 참 쑥스럽군요. 제가 목포교도소 감옥에서 이대표 편지를 받고 또 거기에 답장한 뒤 처음인 것 같네요. 이렇게 편지를 쓰게 된 직접적 이유는 민노당을 대표하는 이정희 의원이 북한인권법 통과를 결사반대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인권법 통과는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해 제가 혼신의 힘을 다해 추진해왔던 의제였거든요. 한동안은 이대표와 과거 사적으로 알던 관계였기에 공개 편지를 쓰는 걸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

     제가 이대표를 마지막으로 본 것도 무척 오래되었죠? 90년대 초반인 것 같아요. 확실히 기억나는 건 제가 90년대 초반 정치범으로 목포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한번 면회온 적이 있지요.

     그 이후로 한번은 만난 것 같아요. 93년 제가 목포교도소에서 석방된 뒤 서울대학교 교정에서 이대표를 만난 기억이 나요. 그 때 이대표가 나한테 감옥에서 나왔으니 앞으로 뭐할 거냐고 물어봤어요. 그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어요. 통일 문제에 계속 매진하겠다구요. 통일문제를 잘 해결하려면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과의 관계를 잘 풀어야 하기 때문에 일정 기간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한 다음 통일문제를 다루는 외교 활동을 하겠다고요.

     그리고 나서 저는 문익환 목사님과 통일맞이라는 단체를 설립해서 활동했습니다. 전대협 활동하면서 북한에 파견했던 박성희, 성용승씨 한국 귀환 활동도 했습니다. 90년대 말 탈북자들을 돕기 위해 중국 생활도 3년하고 대북라디오방송 펀딩을 하기 위해 미국 생활도 2년 했습니다. 어쨌든 이대표에게 한 약속대로 통일문제를 다루는 외교활동을 주로 하게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통일 문제를 보는 제 시각이 점점 변해갔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80년대 제가 처음에 가지고 있던 북한에 대한 견해와는 거의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인권과 민주화가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고 통일보다는 북한 주민의 인권이 더 절박한 문제라는 결론이었습니다.

     이런 생각의 변화 때문에 저는 80년대 함께 학생운동했던 그리고 지금 민노당에도 남아있는 많은 동지들과는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제가 북한 인권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 90년대 후반이었으니 10여년 이상 다른 길을 걷게되었네요.

    이정희 대표는 다르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제가 지금 가는 길이 역사적 진보의 길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제가 북한인권 관련 NGO를 만들어 전업 활동가가 되는 길을 가지 않았겠죠.

    2008년부터인가요? 이정희라는 반가운 이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더군요. 사실은 그전에도 가끔 이대표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변호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잘 살겠구나, 걱정 안해도 되겠구나” 했습니다.

    그런데 이대표 이름이 민노당 의원과 대표로서 언론에 자꾸 등장한 뒤부터는 오히려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민노당에 여전히 많은 저의 옛동지들이 있기 때문에 저도 민노당의 본질을 조금은 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흔희 회자되는 말로 민노당은 여전히 “종북성”을 떨쳐 버리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혹시나 당차고 똑똑한 이정희 의원이 대표가 되면 민노당이 종북성을 극복하려나 기대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이대표와 민노당은 천안함, 연평도 사건에 대해서 북한을 공격하기 보다는 대한민국을 더 공격하는 모습을 보이더군요. 북한의 3대 세습 문제에 대해 경향신문까지 민노당을 비판하는 가운데 이대표는 여전히 민노당의 “침묵” 입장을 옹호하더군요. 그리고 북한 주민의 인권을 개선하자는 북한인권법에 대해서도 적극 반대하고 있죠.

    북한인권 문제나 국가지도자의 세습 문제에 대한 입장 표명은 그 사람이 과연 민주주의자인지 아닌지 판가름하는 핵심 잣대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민노당의 반대 또는 침묵은 민노당이 여전히 종북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입니다.

     물론 이대표는 나와 입장이 다르겠지만 나는 민노당과 이대표의 미래 운명에 대해 심대히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편지를 쓰는 것입니다. 사적으로 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보다는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이대표에게 더 크게 다가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괜찮다면 논쟁을 더 확대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학생 시절에 논쟁이라면 이력이 날 정도로 익숙해지지 않았습니까?

     이대표, 민노당과 같은 종북파는 일제시대 친일파보다 더 처참한 역사적 운명에 처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현재의 북한이 과거 일제는 물론이고 20세기 존재한 그 어느 사회주의 정권보다 더 더 심한 인권 유린을 자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정일 정권은 핵무기, 미사일을 만들고 자기 사치를 일삼느라 수많은 북한 주민을 굶여 죽였습니다. 90년대 후반 북한에서 발생한 아사자는 최소 수십만에서 최대 300만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대량 아사는 일제시대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 정권을 일제보다 더 악독한 놈이라 비난하고 있습니다.

     또 김정일은 독일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같은 곳을 6개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여섯 곳의 수용소에는 20만명 정도가 수감되어 있습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폐지된 연좌제가 이곳에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수용소에 들어가면 할아버지와 아들을 포함 전 가족이 함께 수용소에 끌려갑니다. 고문, 강제노동, 영양실조 등이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이런 수용소는 일제시대에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필적할 대상이라곤 캄보디아의 폴포트와 나찌 정도 밖에 없습니다.

    우려스러운 곳은 이런 김정일 정권의 범죄와 반인륜성, 포악성에 대해 민노당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민노당의 일부 인사들은 80년대 주사파 활동 때처럼 김정일 정권과 협력해 대한민국을 음해하는 활동들을 해왔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소위 2006년 “일심회” 사건입니다. 일심회 사건에서는 민노당의 핵심 상근 간부가 연루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민노당이 일심회와 연관되어 있는 일을 우연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민노당원들 중에는 80년대와 90년대 주사파 핵심 활동을 했던 사람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직 한번도 자신들의 주사파 활동에 대해 진지하고 공개적으로 반성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정희 대표가 북한과 직접 연계되어 있다는 식의 음해를 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 민노당의 대북 노선을 보면 민노당이 과거 주사파의 그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증거를 여전히 발견합니다. 북한의 3대 세습에 침묵하는 것은 물론이고 80년대 반전반핵을 외치던 사람들이 북한의 핵무기를 반대하지 않고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해 북한을 비판하지 않는 것도 또 다른 이유입니다.

     민노당이 주사파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면 북한을 비판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데 민노당에게 북한 정권은 여전히 성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정희 대표가 민노당의 지도자 역할을 맡게되었다는 것 자체는 적어도 이 대표가 민노당의 과거 주사파 그림자와 최소한 타협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역사 속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밖에 없는 인류 보편의 가치입니다. 이 가치는 북한이라고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한국에도 민주주의가 승리하면서 과거 군사독재정권의 몇몇 사람들이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김정일 정권은 한국의 박정희, 전두환 정권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의 독재와 인권 유린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반인륜적 독재 정권은 필연적으로 붕괴되거나 새로운 세력에 의해 교체될 수 밖에 없습니다. 최근 아랍에서도 민주주의는 역사의 필연임이 여실히 입증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독재정권이 붕괴되어 역사적 심판대에 오를 때 민노당은 어떻게 될까요?
    민노당이 현재의 종북노선과 완전한 결별 선언을 하지 않는 이상 민노당은 과거 친일파처럼 역사의 정의의 심판대에 오를 것입니다. 북한과 직접 연결되어 활동했던 사람들은 법적 심판대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종북파들은 법적 심판대에 오르지는 않더라도 역사의 심판대에는 올라갈 수 밖에 없습니다. 마치 독일과 유럽에서 나찌를 숭배하거나 두둔했던 사람들이나 한반도에서 일본의 군국주의와 협력했던 사람들처럼 말입니다.

     종북파는 친나찌나 친일파보다 더 가혹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김정일은 나찌와 일제와 달리 동족을 박해하고 학살했기 때문입니다.

     저한테는 그런 민노당의 말로가 너무나 선명히 보입니다. 그래서 더더욱 이대표가 민노당을 이끌고 있다는 사실이 마음이 아프고 우려되는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습니다. 저는 이대표가 그 정도로 이성적 분별력이 결여되고 판단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북한의 현실과 민노당이 여전히 종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십시오. 그리고 깊이 성찰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정희 대표와 민노당이 역사 속 승리의 길을 가고 있는지 말입니다.

    물론 이대표는 지금 내가 하는 이야기에 대해 전혀 감응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제 말이 옳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유한하지만 인간이 가졌던 정신은 역사와 함께 무한한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는 과거 역사를 공부하고 미래 역사에 내가 어떻게 기록될지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이 대표와 나는 80년대 한 때 같은 목표를 향해 같은 길을 갔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서로 완전히 다른 목표를 향해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어떻게 보면 불편하고 어색할지도 모르는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단순한 정치적 공격이라고 치부하지는 말아 주십시오. 이 편지에는 한 인간으로서, 그리고 과거 이정희의 선배이자 동지였던 사람으로서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후배이자 동지였던 이정희를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음을 느껴 주십시오.

     과거 학생 때였다면 서로에 대한 불만이나 이견을 소주 한잔하면서 다 털어놓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도 기성세대가 되었습니다. 내가 나 한사람이 아니라 어떤 정당이나 단체의 대표로서 공인으로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때문에 이렇게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비판하는 것이 사회의 공인으로서 마땅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언젠가는 80년대 캠퍼스 시절 때처럼 녹두거리에서 소주 한잔 기울이며 치열하지만 서로를 마음으로 위해주는 그런 술자리를 한번 가지고 싶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