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의 달인’ 고건, 관선시장 경험 활용해 주민에게 ‘성큼’2002년 월드컵과 서울시 녹화사업, 탈탄소 경제의 기반
  • ▲ 제31대 서울시장 고 건 재임기간 1998.7.1~2002.6.30
    ▲ 제31대 서울시장 고 건 재임기간 1998.7.1~2002.6.30

    민선 1기가 부활한 지방자치를 위한 제도적인 변화가 시도된 시기라고 한다면 민선 2기는 변화된 제도를 가지고 시민에게 다가가는 행정 패러다임의 변화가 시작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 변화의 지휘봉은 행정의 달인이라 불리는 고건 서울시장이 들었다. 고 시장은 오랜 공직경험과 이전 관선 시장으로서의 원숙한 행정경험을 활용해 서울시민에게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부패로부터 자유로운 시정구현, OPEN시스템

    그동안 서울시 행정은 복마전이라 불리곤 했다. 폐쇄적인 민원처리방식은 시민들의 불만과 비위·비리로 이어졌다.

    고건 시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한 차원 높은 부패방지시책을 실행했다.

  • ▲ 제31대 서울시장 고 건 재임기간 1998.7.1~2002.6.30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시스템(OPEN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민원처리 전 과정과 중요한 의사결정 과정을 인터넷에 공개해 시민이 감시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부패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2001년까지 민원처리공개방에는 240만명 이상이 방문하는 실적을 올렸다.

    2001년 5월에는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과 고건 서울시장이 만나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시스템의 전 세계 확산을 위한 ‘공동협력성명’을 채택했다. 2001년 8월에 ‘반부패 국제심포지엄’을 성공적으로 개최하고, UN회원국에 보급하기 위해 6개 국어로 매뉴얼을 제작하는 등 서울시의 반부패․클린행정시책을 해외에 수출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한, 국제투명성기구(TI) 말레이시아본부는 ‘민원처리 온라인 공개시스템’을 비롯한 창의적인 반부패시책을 통해 서울시의 투명성과 청렴성을 확립한 업적을 인정했다. 이 업적으로 고 시장은 ‘2001 세계청렴인상’을 수상했고 2001년 8월 TIME지에 ‘깨끗한 정부를 만드는 비결’로 소개되기도 했다.

    2002월드컵 추진

    2002년 월드컵의 감동이 서려있는 상암월드컵구장, 서울광장을 서포트한 것도 고건 시장이었다.

    서울시는 당시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열리는 2002년 월드컵 성공적 개최를 위해 서울월드컵경기장 완공, 월드컵공원 조성 등 월드컵을 계기로 서울의 볼거리․먹을거리․살거리를 개발했다.

    또 숙박․교통․관광안내시스템을 개선해 서울을 관광․문화․쇼핑의 명소로 단장했고 서울의 전통문화를 재현, 한국의 미, 한국의 정체성을 세계로 알리는 기회로 삼았다.

  • ▲ 제31대 서울시장 고 건 재임기간 1998.7.1~2002.6.30

    서울월드컵 경기장은 한국적 조형미를 살린 아시아 최대 규모의 축구전용경기장(6만4천677석)으로 건설하고,  부가가치가 높은 다목적 시설로 2001년 11월 10일 개장했다.

    월드컵공원은 1978년부터 15년간 쓰레기 9천200만톤을 매립한 105만 평의 부지의 난지도에 조성됐다.

    6년에 걸친 안정화 사업과 1년 이상의 공원화 공사를 거쳐 2002년 5월 1일 개장했다.

    평화·하늘·노을·난지천·난지한강 공원 등 5개의 공원으로 이뤄져 있고, '환경월드컵'의 상징물로 습지와 꽃밭, 연못, 요트장, 흙길 마라톤 코스 등을 갖춘 5개 테마 생태공원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노을공원은 난지도 제1매립지에 들어선 공원으로 당초 매립지 안정화와 골프의 대중화를 촉진시키기 위해 골프장을 조성했지만, 반대 여론과 서울시의 가족공원화 계획 등으로 우여곡절 끝에 서울시는 2008년 2월 19일 골프장을 폐쇄하고 골프장 부지를 다시 공원화하는 진통을 겪었다.

    담배소비세-종토세 세목교환 추진

    대표적인 자치구의 세수였던 담배소비세를 시 세수인 종합토지세와 세목 교환을 적극적으로 시도한 시점도 바로 이 시기다.

    고 시장은 강남과 비 강남 지역의 환경에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자치구가 거두어 1년 예산으로 쓰게 되는 재산세 세입규모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으로 봤다. 소위 부자 구인 강남지역과 비 강남 지역 주민들의 재산 규모가 다르다보니 거두어들이는 재산세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를 위해 고 시장은 세목교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고 시장은 당시 “구청별로 차이가 큰 종토세를 시세로 전환하는 대신 지역별 편차가 적은 담배세를 구세로 바꾸는 세목교환은 심각한 구간의 재정불균형 해소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강남, 서초, 송파, 강동, 중구 등 땅값이 높은 소위 부자 동네 5개 구청장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결국 종토세-담배소비세 맞교환 문제는 서울시와 25개 자치구 사이의 이해관계가 상충함에 따라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보류되고 말았다.

    장묘문화 개선 및 장묘시설 확충

    고 시장은 기피시설인 화장장 건립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인물로도 유명하다.

    전통적인 매장관습의 장묘문화를 화장·납골중심 문화로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화장 유언 남기기 시민운동’과 장묘문화개혁 캠페인 등을 지원했다.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장묘시설의 확충이었다. 당시 벽제 시립 승화원(화장장)은 일일 처리능력을 훨씬 초과 운영 중인 상태. 시립 추모의 집(납골당)도 6개소 중 이미 5개소가 만장됐고, 나머지 1개소도 곧 만장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고 시장은 98년 11월 서울 추모공원 후보지 선정 작업에 착수해 2001년 서초구 일원동 76번지 일대를 최종 부지로 선정했지만, 예상했던 주민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표류했다.

    결국 서울시내에 세워지는 첫 화장시설인 원지동 추모공원은 2001년 부지를 선정했지만, 주민 반대와 법적 분쟁으로 표류하다가 2010년 2월에야 착공하게 됐다.

  • ▲ 장묘문화개선을 위한 시민토론회
    ▲ 장묘문화개선을 위한 시민토론회

    ‘님비’의 벽 넘어서다, 자원회수시설 공동이용

    장묘시설과 함께 대표적인 기피시설은 쓰레기 소각시설.

    서울시는 90년대 중반부터 평균가동률이 극히 낮은 자원회수시설에 대한 인근 자치구의 시설을 공동 이용하는 방식을 써왔다.

    문제는 시설주변 인근주민들의 반대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였다.

    실제로 1996년 양천구에 400톤 규모로 시설을 건축했지만 주민들의 반대로 타 자치구의 쓰레기는 받지 않았다. 1997년 건축된 노원구의 시설도 마찬가지였다.

    2002년에는 강남구의 자원회수시설을 1천800톤 규모로 지어 송파구, 강동구 쓰레기를 함께 소각하려 했으나 여전히 반대가 심해 강남구만 사용하고 시설규모도 900톤으로 축소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고 시장은 수차례에 걸친 주민대표와의 만남과 토론, 자원회수시설의 안전성을 입증하는 각종 데이터 제시 등 주민 설득에 나섰다.

    고 시장의 노력 덕분에 자원회수시설 이용 자치구가 2006년 4개구, 2009년에는 21개구로 확대되는 계기로 이어졌다.

  • ▲ 광명시 자원회수시설 공동이용 협약체결
    ▲ 광명시 자원회수시설 공동이용 협약체결

    푸른 서울 가꾸기 사업

    고 시장은 98년부터 ‘생명의 나무 천만그루심기’ 사업을 추진했다.

    이 결과로 서울시는 2001년 상반기 춘기식재기에 천만그루를 이미 돌파했다. 특히 생활환경 주변에 생명의 나무 965만 그루를 심은데 이어 2001년에는 키 큰 나무 위주로 441만 그루를 더 심었다.
     
    생명의 나무 심기는 공공기관과 학교를 녹화하여 시민녹지공간으로 제공하고(학교 62개소, 공공기관 담장녹화개방 39개소 등), 한강연한 63km에 수림대를 조성했다.

    또 공항로·철도연변을 녹화하고, 국·공유지 자투리땅에 ‘마을마당’ 100개소를 지정하여 조성하는 등 푸른 서울을 만드는 데 큰 영향을 줬다.

  • ▲ 생명의 나무 천만그루심기
    ▲ 생명의 나무 천만그루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