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검찰, 국세청, 상원이 UBS 굴복시켰다
  • [趙甲濟의 심층취재]

    미국, 리히텐슈타인 등의 김정일 계좌 파악! 凍結할 듯

    (월간조선 2010년 8월호)

    리히텐슈타인의 LGT, 스위스의 UBS 은행, 미국에 고객정보 제공 시작

    미국 CIA와 국정원, 김정일 해외 비자금 합동조사 하기도

    鄭夢憲이 보낸 2500만 달러도 UBS 계좌에 입금



    북한 전문가들 사이에 일치된 견해가 하나 있다. ‘김정일(金正日)이 해외에 숨겨 놓은 비자금을 동결(凍結)하면 치명상(致命傷)을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엔 달러로 돌아가는 ‘궁정경제’와 원화로 돌아가는 ‘인민경제’가 있다. 북한의 금융기관(동북아 은행)과 보험회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탈북자 김광진(金光進)씨의 추산에 따르면 궁정경제를 움직이는 돈의 규모는 약 45억 달러이다. 북한 내 보유 20억, 해외 비자금 20억, 암시장 유통 5억 달러라는 것이다.
     
      한국과 미국 정보기관은 1990년대 말부터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을 약 40억 달러로 추산해 왔다. 이 돈은 정권유지 자금이다. 핵 및 미사일 개발, 북한의 핵심층 관리, 그리고 대남(對南)공작 등에 쓰인다. 특히 수만 명에 이르는 핵심층에 대한 김정일의 ‘선물(膳物)정치’는 이들을 김정일과 공동운명체로 묶어 놓는다. 김광진씨는 김정일로부터 벤츠, 양주, 외제 내복류, 현금, 가전(家電)제품 등을 선물로 받는 핵심 인물들을 이렇게 분류하였다.
     
      “비서국의 간부 이상, 내각의 부상(副相·차관) 이상, 중앙당 지도원 이상, 군의 연대장 및 연대정치위원 이상, 군(郡)과 도(道)의 선전-조직비서 등 수만 명이다. 이들은 특별공급소로부터 외제(外製) 물건을 배급받는다. 이들은 ‘이 체제에선 이렇게 살 수밖에 없다. 나나 가족을 위하여 현실에 순응하자’는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다. 김정일도 노골적으로 ‘차우셰스쿠를 보라. 세상이 바뀌면 그들이 가장 먼저 총부리를 겨누는 대상은 당신들이 될 것이다. 그러니 혁명의 칼날을 예리하게 세워라’고 한다.”
     
     
      최악의 頂上회담
     

  • ▲ 미국은 2005년 김정일의 돈세탁 창구인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제재했다.ⓒ
    ▲ 미국은 2005년 김정일의 돈세탁 창구인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제재했다.ⓒ
    미국은 2005년 김정일의 돈세탁 창구인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을 제재했다.
      2005년 가을부터 미국 정부는 마카오에 있는 방코델타아시아 은행(BDA)을 표적으로 삼아 대북(對北) 금융제재를 시작하였다. 북한정권이 돈 세탁, 위조달러 유통, 무기 판매 등에 애용하였던 이 작은 은행에서 묶인 북한 돈은 수천만 달러에 불과하였으나 국제 금융시장이 민감하게 반응, 대북거래를 끊었다. 당시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미국 측에 “왜 대북 금융제재를 할 때 사전 협의를 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했다고 한다. 미국 수사정보기관은 한국에 금융제재 계획을 통보해 주면, 이 정보가 북한 측에 넘어가 계좌가 폐쇄되기 전에 돈을 찾아가 버릴 가능성을 염려했다고 한다.
     
      <월간조선>(月刊朝鮮) 2006년 1월호 기사에서 필자는 이렇게 썼다.
     
      “서울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韓美) 정상(頂上)회담에서 노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에게 미국의 조치가 베이징(北京)에서 열리는 6자(者)회담에 장애가 된다면서 선처를 요청했다고 전한다. 부시 대통령은 ‘이것은 범죄행위에 관한 것이므로 6자회담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고 잘랐다는 것이다. 한참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부시 대통령은 노 대통령을 향해 ‘만약 북한이 한국의 지폐를 위조해서 유통시킨다면, 한국은 어떻게 하겠느냐’고 정색을 하고 물었다고 한다. 화가 난 표정이었다고 전한다.
     
      노 대통령은 정상회담 후 정동영(鄭東泳) 통일부 장관을 불러 자신의 노력을 설명하고 북한 측에 통보해 주도록 지시했다는 미확인 첩보도 나돌고 있다.”
     
      당시 주한 미국대사 알렉산더 버시바우 씨는 이 기사와 같은 맥락의 비화(示必話)를 공개한 적이 있다. 퇴임한 버시바우 대사는 2008년 12월 5일 워싱턴의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주최한 강연회에서 이런 요지의 이야기를 하였다.
     
      “2005년 11월 경주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 부시 대통령을 상대로 한 시간 넘게 논쟁을 벌였다. 노 전 대통령은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의 북한 계좌에 대한 미국의 동결조치에 대하여 크게 우려하여 부시 대통령과 심한 논쟁을 벌였는데, 역대 한미 정상회담 중 최악이었다.”
     
     
      김정일 비자금 凍結은 역사를 바꿀 것
     
      김정일은 2006년 초 중국을 방문,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만난 자리에서 ‘금융제재가 계속되면 북한은 무너질 것이다’는 요지의 말을 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2006년 10월 9일의 북한 핵실험은 금융제재의 포위망에서 벗어나려고 김정일이 던진 승부수였다.
     
      유엔 안보리는 그 직후 대북제재 결의안 1718호를 통과시켰다. 대북 금융제재를 더 강화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모든 회원국들은 각국의 법절차에 따라 북한의 핵, 대량살상무기, 탄도미사일 관련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자국(自國)내 자금과 기타 금융자산, 경제적 자원들을 결의안 채택일로부터 즉각 동결하며, 북한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이나 단체들도 자국 내의 자금이나 금융자산, 경제적 지원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조치한다.>
     
      그 뒤 부시 정부는 정책의 혼선을 일으킨다. 북한정권이 6자회담에 복귀, 2007년 2월 13일 핵 프로그램 폐기에 합의하자 방코델타아시아 은행에 동결된 북한자금을 해제, 김정일을 코너로 몰았던 대북 금융제재를 느슨하게 만들고 말았다.
     
      영국 런던의 <데일리 텔레그래프>지(紙)는 지난 봄, 한국 정보기관 직원의 말을 인용, 김정일이 스위스 은행에 약 40억 달러의 비자금을 숨겨 놓았다가 정부 당국에서 감시를 강화하자 룩셈부르크의 은행으로 옮겼다고 보도하였다.
     
     
      리히텐슈타인을 주목하라!
     
  • ▲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미(美)대통령에게 대북금융제재 완화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미(美)대통령에게 대북금융제재 완화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2005년 11월 경주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부시 미(美)대통령에게 대북금융제재 완화를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
      일본의 북한인권운동가 겐 가토 씨는 룩셈부르크 은행이 불법자금을 은닉하는 데 이용당하고 있다면서 만약 국제사회가 40억 달러를 동결한다면 역사를 바꿀 것이라고 논평했다. 룩셈부르크 정부 대변인은 “북한정권과 관련된 돈은 조사를 하게 되어 있는데, 문제는 돈 위엔 아무 것도 쓰여져 있지 않아 그런 돈인지 여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고 했다.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 워싱턴의 대북정책 전문가 그룹 사이에서는 “금명간 오바마 정부가 리히텐슈타인, 스위스, 룩셈부르크 등지에 묻어 놓은 김정일의 비자금 계좌를 구체적으로 확인, 이를 동결 조치할 것이다”는 전망(展望)이 나온다. 필자는 이 정보를 추적하던 중 한반도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놀라운 사건이 막후(幕後)에서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십억 달러로 추정되는 김정일의 비자금이 스위스, 룩셈부르크, 빈, 리히텐슈타인 은행에 숨겨져 있을 것이란 일반론은 별로 쓸모가 없다. 룩셈부르크 정부 대변인이 이야기했던 대로 김정일의 비자금 계좌는 가명(假名)으로 위장되어 있을 것이므로 어느 계좌가 김정일의 것이라고 특정(特定)하지 않는 한 동결할 수가 없다. 김정일의 리히텐슈타인 은행 비밀계좌를 동결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미국이 계좌 정보를 입수하였다는 뜻이다. 이런 내부 정보는 비자금을 관리하는 은행 안에서 나오지 않으면 안 된다. 스위스,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은 세계의 검은 돈을 유치, 안전하게 관리해 주고 돈을 버는 나라들이다. ‘탈세자들의 피난처’란 별명을 지닌 이들 나라는 고객(顧客)정보의 외부 공개를 엄격하게 통제하는 국내법을 갖고 있다.
     
      그런데 리히텐슈타인공국(公國)이 운영하는 국립 LGT 은행에서 결정적인 내부 폭로가 있었던 것이다. 폭로의 주인공은 하인리히 키버(Heinrich Kieber). 지금 세계의 탈세자들을 떨게 하고 있는 키버는 여러 정부의 보호 아래서 다른 이름을 쓰면서 숨어 살고 있다. 그의 육성(肉聲)증언은 한 번 있었다.
     
      2008년 7월 미(美) 상원의 조사 담당 상설 소위원회는 리히텐슈타인의 LGT 은행과 스위스의 UBS 은행이 미국인의 자금을 불법 은닉, 탈세를 도운 혐의로 조사를 하던 중 비밀장소에서 키버를 인터뷰하고 그 대화록을 공개하였다. LGT 은행이 세계의 독재자나 부자들의 불법 자금을 유치, 어떻게 관리하는지에 대한 그의 생생한 체험적 증언은 언론으로부터 ‘스파이 소설’을 방불케 하였다는 평을 들었다. 그의 증언록을 읽던 중 김정일을 지목하는 듯한 대목을 발견하였다.
     
     
      간첩공작 같은 자금세탁, 은닉 수법
     
      키버는 LGT 은행의 계열사인 LGT 신용기금이 내부 자료를 정리하는 일에 참여한 사람이었다. 2000년 가을부터 2년간 스무 명의 기술진과 함께 그 일을 하면서 그는 LGT 은행이 운영하는 ‘검은 돈’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었다. LGT가 하는 일은 탈세나 자금세탁용 법인(회사, 기금 등의 형태)을 많이 만들어 놓고 고객들을 유치하는 것이었다. 현금, 증권, 부동산 등을 맡아 운영해주는 데 리히텐슈타인 정부가 매기는 세금은 금액의 다과(多寡)에 관계없이 법인당 연간 1000스위스프랑이었다. LGT 기금은 2002년 현재 3500개의 법인을 관리하고 있었고 72억 스위스프랑(1스위스프랑은 1달러와 비슷)을 보유하였다. LGT 은행은 당시 약600억 스위스프랑의 예금잔고(殘高)를 갖고 있었다.
     
      키버는 고객관련 정보를 정독(精讀)해 가는 과정에서 탈세와 자금세탁의 수법을 알 수 있었다. 미국 고객의 경우 자금을 리히텐슈타인으로 옮겨오기 전에 캐나다와 같은 투명국가로 일단 송금하도록 한다. 캐나다는 미국 국세청에서 별로 의심하지 않는 나라이다. 캐나다로 옮긴 자금은 그 뒤 복잡한 경로를 통하여 리히텐슈타인으로 들어오는데 반드시 전(前) 단계로 스위스 은행을 거치도록 하였다.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은행은 탈세와 자금세탁의 공범(共犯)관계가 되어 송금이나 고객 서류를 조작하는 데 협조한다. 자금세탁용으로 이용된 법인은 2년 정도 쓰고는 청산해 버린다. LGT와 고객 사이의 접촉방식은 간첩공작 수준이었다.
     
      첫째, LGT는 고객들에게 자금을 맡긴 법인에 대하여는 그 누구에게도, 가족에게도 이야기하지 말 것을 신신당부한다. 인간관계는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후회할 짓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둘째, 절대로 자신의 전화기로 LGT에 전화를 걸어선 안 된다. 반드시 공중전화로 걸어야 한다. 미국이나 이탈리아 국세청은 리히텐슈타인으로 전화를 거는 사람들의 기록을 유지 관리한다.
     
      셋째, 고객은 긴급상황이 벌어졌을 때만 전화를 걸되 미리 지정해 놓은 상담원의 휴대전화로 건다. 이 전화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 등록된 것이다. 통화를 할 때는 암호명을 대야 하며 절대로 실명(實名)을 이야기해선 안 된다.
     
      넷째, LGT 그룹은 고객들에게 편지를 보낼 때 리히텐슈타인을 발신처로 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고객은 돈을 묻어 놓기만 할 뿐 자주 찾아 쓰지 않으므로 연간 1회 정도의 연락만 한다고 한다.
     
     
      ‘A head of a social government's department’
     
      키버는 LGT 같은 리히텐슈타인 은행들이 수많은 소규모 법인체를 만든 것은 ‘위험부담이 큰 자금’을 그곳으로 돌려놓기 위한 것이었다고 증언하였다. 그렇게 하면 탈세나 자금 세탁자가 폭로되어도 그 책임을 무명(無名)의 법인체 소행으로 한정시키고 모(母)기업은 빠져나갈 수 있다. LGT 은행은 예컨대 러시아 자금은 직접 받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법인(法人)으로 돌려놓는다는 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은 9·11 테러 직후 금융기관이 테러조직에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협정을 미국과 맺었으나 실천하지 않았다. LGT는 예금주에 대한 정보를 고의로 감추거나 아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키버는 2년간 자료를 정리하면서 느꼈던 문제점을 LGT 은행에 제기하였다고 한다.
     
      “고객 자료를 읽어 보니 부패, 독재자,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한 사업과 관련된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당신 일이나 열심히 하라’. 그래서 저는 내부 자료를 복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증언록에 의하면 미국 상원 조사관이 키버에게 이렇게 묻는다.
     
      “제재 회피라든지 부패와 관련한 말씀을 하셨는데,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키버는 이렇게 답하였다.
     
      “자료 하나는 어느 나라에 있는 일단의 공무원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LGT 은행이 LGT 신용기금에 이들을 소개하였습니다. 기금은 이 고객을 받아 주긴 했지만 이들에게 돈을 지급할 파나마 국적 회사를 담당할 직원을 지명하진 않았습니다. 그 뒤 알아보니 LGT 은행을 통하여 이들에게 돈이 나가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자료가 있었는데 이것은 제3세계 국가의 부패와 관련된 자금임을 강력하게 시사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사회주의 국가 기관의 장(長)이 500만 달러 이상의 돈을 (내용 삭제) 것인데, 이 막대한 돈의 출처에 대하여는 설명이 없었습니다.”
     
      미 상원이 공개한 자료에는 민감한 내용을 삭제한 곳이 있었다. 키버가 말한 ‘한 사회주의 국가 기관의 장’은 원문(原文)에 ‘A head of a social government's department’라고 되어 있다.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39호실을 영어로는 ‘No. 39 department’라고 표기한다. ‘한 사회주의 국가 기관의 장’이 정체불명의 자금원(資金源)으로부터 500만 달러 이상의 거금(巨金)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워싱턴에서 나오는 이야기, 즉 ‘리히텐슈타인 은행에서 김정일의 계좌를 확인하였다’는 말과 이 증언을 연관시켜 볼 이유가 많다.
     
     
      美 CIA와 국정원, 합동으로 김정일 비자금 조사
     
      위의 증언을 한 하인리히 키버는 2002년 LGT 신용기금을 그만둘 때 1만 페이지가 넘는 내부 자료를 CD에 복사하여 갖고 나왔다. 키버는 이때 횡령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있었다. 1996년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독일 기업인이 소유한 아파트를 살 때 지급한 25만 달러 수표가 나중에 부도 처리되었기 때문이었다. 2003년 1월 키버는 리히텐슈타인 공국의 수장(首長)이자 LGT 은행그룹의 소유자인 한스-아담 2세와 아들 알로이스에게 협박편지와 녹음테이프를 보냈다. 횡령사건 수사를 중단하지 않으면 갖고 나온 자료를 폭로하겠다고 경고하였다.
     
      이 경고는 무시되었고 키버는 3년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이때 리히텐슈타인 정부나 LGT 은행은 키버가 빼돌린 자료를 회수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2006년 1월 키버는 이메일로 독일의 대외(對外)정보기관 BND에 자료를 살 의향이 없느냐고 제의하였다. 자료의 샘플도 그 뒤에 보내 주었다. BND는 키버가 갖고 있던 4500여 명의 고객 정보 가운데 3분의 1 정도는 독일 사람들임을 알아내고는 500만 유로를 주고 자료를 샀다. 키버는 이와는 별도로 영국 정부기관에도 자료를 팔았다. 키버는 미국에도 자료를 판 것이 확실한데 판매가격은 알려지지 않았다. 호주, 프랑스, 캐나다 정부도 정보를 사 간 것으로 보인다. 이 정보를 근거로 하여 새로 거둘 수 있는 세금이 엄청나기 때문에 투자가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건이 알려진 것은 2008년 2월 14일 독일 검찰과 경찰이 공개수사에 나서면서부터이다. 독일 우편국의 클라우스 줌빈켈 사장이 LGT 은행을 이용, 100만 유로를 탈세한 사실이 밝혀지는 등 유럽과 미국과 호주의 부자들이 잇따라 법정에 서게 되었다.
     
      미국과 독일의 수사기관이 키버의 정보를 입수하고 1년간 묵힌 것은 정보를 확인하고 방증(傍證)자료를 찾기 위한 것이었다. 이 무렵, 즉 2007년에 미국 CIA와 국가정보원이 합동으로 김정일의 해외 비자금 계좌를 추적한 적이 있다. 왜 이런 조사가 이뤄지게 되었는지는 확인된 게 없으나 미국 CIA가 리히텐슈타인의 LGT 은행 및 스위스 UBS 은행을 통하여 얻은 김정일 관련 계좌 정보가 단서가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시 국정원 간부에 따르면 한미 합동조사는 끝까지 가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미국 측에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중단되었다고 한다. 그때까지 확인한 김정일 해외 비자금은 15억 달러 정도였다.
     
     
      스위스 UBS도 미국에 항복, 계좌정보 넘기기로
     
  • ▲ LGT은행의 소유자인 한스-아담 2세.ⓒ
    ▲ LGT은행의 소유자인 한스-아담 2세.ⓒ

    LGT은행의 소유자인 한스-아담 2세.
      미국 정부와 의회는 LGT 내부 정보를 입수, 조사하는 과정에 세계에서 가장 큰 은행 중의 하나인 스위스 UBS 은행의 탈세 및 자금세탁 혐의를 잡았다. 2008년에 미국 수사 당국은 UBS와 리히텐슈타인 은행에 근무하였던 빌켄펠드를 체포, 탈세혐의로 기소하였다. 그는 미국 수사 당국에 협조하였다. 미국 상원 소위원회의 보고서에 따르면 스위스의 UBS는 약 2만명의 미국인 계좌를 갖고 있는데 1000명만이 미국 국세청에 세무신고를 하였고 1만9000명은 탈세자이다. 이들이 UBS에 보유한 예금액은 약 180억 달러나 된다고 한다.
     
      미국 상원의 조사에 의하여 UBS의 불법(不法) 활동이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그들은 미국의 부자들 자금을 유치하기 위하여, ‘어떤 경우에도 비밀이 보장될 것이니 안심하라’고 말하면서 다녔다. 스위스 국내법이 은행정보를 외부에 누출시키면 형사처벌하게 되어 있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미국 검찰과 국세청, 그리고 상원의 압박을 견디지 못한 UBS는 작년 초 항복하였다. 미국 정부에 7억8000만 달러의 벌금을 물고 특급비밀인 미국인 고객 정보를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이 합의에 따라 미국은 UBS에 대한 형사처벌을 유예하기로 하였다. 스위스의 금융감독위원회가 이 합의를 승인하였다.
     
      스위스 은행이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외국 고객 정보를 넘기기로 한 결정은 역사적인 것이었다.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 은행의 존재 목적을 스스로 부정한 셈이기도 하였다. 그만큼 미국의 압박이 거셌다는 이야기이다.
     
      미국은 리히텐슈타인 정부도 압박, 2008년 12월 두 나라는 ‘세금정보 교환 협정’을 맺게 되었다. 리히텐슈타인 은행에 있는 미국인 계좌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금명간에 스위스,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은행에 숨겨 놓은 김정일의 비자금 계좌가 동결될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배경이다. 동결이 가능해진 것은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이 미국에 협력하게 된 때문일 것이다. 김정일의 비자금 계좌는 미국이 동결하는 것이 아니다. 해당 국가 정부가 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들 나라가 그런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도록 압박을 넣을 수 있는 수단을 갖게 된 것이다.
     
     
      스위스 은행을 좋아한 한국인들
     
    스위스 UBS은행은 미국정부의 압력에 굴복해 미국인 고객정보를 미국정부에 넘겼다.
      김정일의 비자금 동결을 합법화시킬 법적(法的) 조항은 많다. 마약, 위조지폐 등 국제범죄와 핵 및 미사일 개발에 쓰이는 자금임이 밝혀지면 동결할 수 있다. 특히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결의가 있다. 키버의 폭로로 스위스와 리히텐슈타인의 은행들은 더는 고객비밀보장 원칙을 지켜 갈 수 없게 되었다. 김정일은 이런 거대한 변화의 첫 번째 희생물이 될지 모른다.
     
      지금 떨고 있는 이들은 김정일뿐만은 아닐 것이다. 한국인들 가운데서도 스위스 은행을 이용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2003년 대북 불법송금 사건 수사 당시 현대상선의 김충식(金忠植) 사장이 1999년 12월에서 2000년 1월 사이 정몽헌(鄭夢憲) 회장의 지시를 받아 비자금 2500만 달러를 조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이 돈을 (김대중 정권 실세들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김영완(金榮浣)씨로부터 건네받은 스위스 UBS 은행 계좌로 송금했다. 현대증권 전 회장 이익치(李益治)씨는 검찰에서 “김영완씨가 권노갑(權魯甲)씨의 부탁을 받아 정몽헌 회장에게 3000만 달러 지원요청을 했고, 김영완씨로부터 스위스 은행 계좌를 전달받아 정 회장에게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김충식씨는 검찰에 “3000만 달러(나중에 2500만 달러로 확인) 송금영수증을 미국에 사는 지인(知人)에게 맡겨 두었다”고 하여 검찰은 그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일시적으로 해제했다. 김씨는 2003년 7월 31일 자신의 변호사와 함께 미국으로 출국했다. 김충식씨는 출국한 지 4일 뒤 정몽헌 회장이 투신자살하자 귀국하지 않고 미국에 머물다가 2004년 11월 1일 비밀리에 입국, 조사를 받고 12월 10일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검찰은 스위스 은행 송금 사건에 대하여는 수사결과를 발표하지 않았고 아무도 기소하지 않았다. UBS 계좌의 실소유자가 누구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월간조선>을 제외한 언론과 국회도 이 문제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다. 이 비밀계좌가 북한정권과 관련이 있다면 김정일 계좌 동결과정에서 그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남북한 정권이 공유한 비자금 루트
     
      2000년 6월의 평양회담을 매수한 대북송금 사건 수사에 의하여 김정일-김대중(金大中) 정권이 39호실 비자금 루트를 공유(共有)하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김대중 정부가 2000년 6월 9~12일 사이 현대그룹을 통해서 4억5000만 달러를 북한으로 보낼 때 현대상선이 조달한 2억 달러는 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에 개설된 ‘DAESUNG BANK-2’ 명의의 계좌로 송금되었다.
     
      김정일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당39호실 산하 대성총국의 마카오 지점인 조광무역상사 총지배인 박자병은 입금(入金)상황을 평양의 중앙당 서기실로 보고했다. 그 전화를 국정원에서 감청했다. 그때 북한 동북아은행에서 근무하였던 탈북자 김광진씨는 석사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노동당 조직지도부(부부장 장성택)에 1억 달러의 현금이 할당되었으며 이는 김정일의 6월 11일 ‘말씀’에 따라 당조직지도부 행정부문 소속 은행인 동북아시아은행에서 혁명자금으로 관리되었다. 혁명자금 이용에 대한 보고는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김정일에게 이루어졌으며 자금관리는 ‘611계좌’를 통하여 본인이 단독으로 맡아 하였다.”
     
      김씨는 “1억 달러가 Bank of China(중국은행) 마카오 지점에서 동북아은행으로 들어왔다. 그것을 받은 김정일 서기실에서 우리 은행에 송금해 줬다. 돈이 들어오는지를 굉장히 조바심을 내면서 자주 체크했다”고 기억하였다. 북한정권의 금융 시스템과 비자금 관리에 대하여 잘 아는 김(金)씨도 지금 워싱턴에 가서 북한관련 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스위스, 룩셈부르크, 리히텐슈타인 은행에 있는 김정일 비자금이 동결된다면 북한정권은 어렵게 된다. 북한 소행으로 드러난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난처한 입장에 처한 중국이 비자금 동결에 반대할 순 없다. 2005년 미국이 주도한 BDA 동결과 대북 금융제재 때도 중국은 협조적이었다. 3조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제1의 외환(外換)보유고를 갖고 있는 중국은 국제 금융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수천만 달러의 자금이 동결되었다고 비명을 질렀던 김정일은 수십억 달러의 비자금이 묶이게 되면 비상한 대응책을 내놓을 것이다. 이 비자금을 조성하는 데는 북한 인민들의 피, 땀, 눈물이 뿌려졌다. 인민들이 목숨을 걸고 잡은 물고기, 땀 흘려 캐낸 금, 모자라는 전기를 아껴 만든 마약과 무기들을 팔아 모은 돈을 김정일이 횡령한 것이다. 북한의 경제구조 안에서 돌아다녀야 할 수십억 달러의 돈이 해외의 계좌에 잠겨 있다는 것이 북한 경제난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도 한다. 김정일의 비자금 조성에 협조해 준 한국인들이 있다면 함께 단죄(斷罪)되어야 할 것이다.
     
     
      李明博의 食言
     
      작년 7월 폴란드를 방문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은 바르샤바 영빈관에서 유럽의 유력 뉴스전문채널 <유로뉴스>(Euro News)와 인터뷰를 갖고 “지난 10년간 막대한 돈을 (북한에) 지원했으나 그 돈이 북한 사회의 개방을 돕는 데 사용되지 않고 핵(核)무장하는 데 이용됐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보도된 정부 내부 자료에 따르면 한국 측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금강산·개성관광 대가(代價)와 개성공단 임금 등으로 29억222만 달러의 현금을 북한에 주었고, 쌀·비료·경공업 원자재 등 현물(現物)로 전달된 규모는 40억5728만 달러로 계산되었다. 식량 270만t과 비료 256만t 등을 유·무상으로 지원하는 데만 32억 달러를 썼다. 정부 소식통은 “그동안 북한은 장거리로켓을 개발하는 데 5억~6억 달러, 핵무기를 개발하는 데 8억~9억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남한에서 넘어간 현금이 핵무기나 장거리 미사일 등을 개발하는 데 쓰였을 수도 있다”고 했다(조선일보).
     
      이명박 대통령은 작년, 김대중-노무현 정권이 주적(主敵)에게 돈을 주어 핵무장과 미사일 개발을 도왔다는 인식을 가졌던 것이 확실하다. 그럼에도 관련자들을 상대로 법적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은 중대한 직무유기였다.
     
      노무현 정부는 그래도 김대중 정권의 대북 불법송금 사건을 수사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전 정권의 대북관련 불법행위를 알면서도 이들 세력이 두려워 국법(國法)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의심을 면하기 어렵다. 적의 핵개발을 돕는 행위는 집단살인 사건보다 더 공동체에 위험한 범죄이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고도 형사(刑事)가 수사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그런 형사를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 정부도 미국이 김정일의 비자금 계좌를 찾아내 동결하는 것과 호흡을 맞추어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룩셈부르크 은행에 숨어 있는 한국인의 돈을 찾아내려는 노력을 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