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정부 최고의 '의제설정자'박지성처럼 마당 넓게 쓴다초대형 이슈 생산...환호 대신 파문
  •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51). 그를 보면 야구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타석에 들어서 3루 코치를 쳐다 본다. 사인은 치고 달리기 작전(hit and run). 3루쪽 빠지는 안타. 노련한 타자는 한치의 어긋남이 없이 작전을 수행하고 1루로 여유 있게 달린다.

    곽승준, 대한민국 '어젠다 메이커'

    그는 대한민국의 ‘어젠다 메이커’다. 굵직굵직한 어젠다를 대한민국 사회에 툭 던져놓는다. 시도 때도 없다. 큰 파문을 일으키기까지 한다. 일어난 파문이 호숫가에 닿기 전, 그는 멀찌감치 다른 곳에 가 있다. 그곳에서 또 뭔가를 구상 중이다.

    그는 축구로 치면 포지션이 정해져 있지 않은 멀티 플레이어다. 포백 수비라인의 중앙에 서 있더니 어느 틈에 측면 미드필더로 올라가 있다. 순간 위치를 바꾸더니 왼쪽 윙어로서 전방에 볼을 배급해준다. 공격수와 스위치 끝에 유효 슈팅까지 날린다.

  • 영국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유나이티드의 박지성 선수가 게임을 뛰고 나면 으레 나오는 기사가 있다. 그가 경기장을 누빈 곳곳을 표시하는 것이다. 골키퍼 자리 빼놓고는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곽 위원장이 그렇다. 시쳇말로 오지랖이 무척 넓다. 정책개발이나 어젠다로 대한민국 사회에 던지는 이슈가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다. 터뜨리는 건마다 초대형이다.

    과거를 더듬어 보자. 지난해 사교육 대책으로 ‘오후 10시 학원수업 제한’을 들고 나왔다. 당연히 사교육시장이 발칵 뒤집힐 수밖에. 학원가가 들고 일어날 즈음, 그는 공을 교육과학기술부로 떠넘기고 또 다른 이슈를 찾아 떠났다.

    아니나 다를까. 교원평가제 도입이 터져 나왔다. 이걸 역점 사업으로 밀고 가려나 했더니 외국어고 입시를 포함한 교육개혁 문제를 또 들고 나온다. 그걸로 끝일 리 없다. 서민대책으로 이동통신료 인하를 이슈로 제기하더니 국방개혁까지 걸고 넘어졌다. 가장 최근에는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를 주장했다. 누가 고양이목에 방울을 달까 싶을 때 과감히 이슈를 끌고 가며 영남권 의원들과 한 판 벌였다.

    마치 박지성 선수의 발끝 같다. 대신 박지성 선수와 확연히 다른 점이 있다. 박지성 선수의 발끝에 환호와 칭찬이 따른다면 그의 족적에는 파문이 인다. 그것도 만만치 않은 파장이다. 상당한 수준의 격한 반론도 끌고 온다.

    발길 곳곳 격론과 파장 불러와

    그런 그가 지난 26일 대형 이슈를 또 들고 왔다. 국민연금 등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 건이다. 거대 권력이 된 대기업을 견제할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빼든 칼이다. 자본주의 원칙에 입각해서도 그리 해야 된다는 것이다.

    주장에도 거침이 없다.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기업들 이름이 그의 입에서 줄줄이 쏟아져 나왔다. 신한은행, 삼성전자, POSCO, KT 등등. 골대를 향해 슛을 쏘는 스트라이커마냥 발길질에 머뭇거림이 없다. 삼성전자를 들먹인 게 그 예다.

    그는 "국민연금의 삼성전자 지분이 삼성생명(4월 현재 7.45%)에 이어 두 번째(5.00%)”라고 잘라 말했다. 이건희 회장 지분(3.38%) 보다도 많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국민연금이 기존 사업 아이템에 안주하려는 경영진들에 대한 견제와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해왔는지 매우 의문시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연금의 삼성전자 지분, 이건희 회장보다 많다

    대한민국 공직자 치고 누가 삼성전자를 향해 ‘감히’ 이런 말을 했을까 싶다. 또 할 수 있을까 싶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삼성전자를 걸고 넘어졌다.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시대가 예견되는데도 기존 휴대폰 시장에 안주하다가 아이폰 쇼크에 당황해야 했다"는 말까지 던졌다. 대한민국 공직 사회 관례로 볼 때 놀라운 발언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재벌그룹이 어떤 위치에 있는가. 여러 말 차치하고 삼성, 현대, LG그룹만 보자. 이들 그룹의 외연을 방계 그룹으로까지, 즉 범 삼성가, 범 현대가 등으로 넓혀 보자. 삼성-신세계- CJ-한솔,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현대산업개발-KCC-현대상선, LG-GS-LS그룹 등등. 대한민국 경제계의 과반이 이들 범 그룹계에 속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경제계에 그가 집채만한 돌멩이를 하나 던져 놓은 셈이다. 당연히 파문 또한 클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가 재벌 구조를 정 조준했다는 해석부터 ‘연금 사회주의’라는 가시 돋힌 힐난도 나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의 반발은 거세다. 전경련은 26일 성명을 내고 "정치논리에 의한 경영권 간섭은 기업가치 저하로 연결될 수 있다"고 반발했다. 대한상의는 "현재 139개 기업(지분 5%이상)에 투자하고 있는 국민연금이 기업 사정을 잘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개입할 때 기업가치가 훼손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경총도 같은 논조다.

    청와대는 어떤 생각일까. 청와대 김희정 대변인은 26일 “청와대와 사전 논의된 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곽 위원장이 평소 학자로서의 소신을 밝힌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현직 미래기획위원장이 언제 학자로 둔갑했을까.

    "난 대통령이 지시하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다"

    지난 3월 곽 위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래기획위가 다루는 현안들은 100% 이 대통령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은 “대통령이 지시하는 것 외에는 할 수가 없다”는 말도 덧붙였다. 미래기획위가 다루는 현안들이 전부 이 대통령의 생각과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다.

    자, 그러면 이번 ‘주사위’도 이 대통령과 교감 아래 던졌다는 말로 해석해도 될 듯 싶다. 연기금 주주권 행사도 사전에 이 대통령과의 교감, 더 나아가서는 지시를 받고 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 그는 주사위를 던졌다. 그는 구르다 멈춘 주사위 숫자를 확인도 않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서는 한국 사회를 움직일 다른 어젠다를 찾기 위해 ‘연기금 주사위판’을 바로 떠날 지도 모른다. 어젠다 메이커로서 보여온 이제껏 사례가 그런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공직자로서의 그의 운명은 길게 잡아도 1년10개월여 남았다. 이 대통령의 남은 임기와 같다. 그는 학자로, 학교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슬쩍 기다려진다. 그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 안에 또 무슨 초대형 이슈를 들고 나와 한국 사회를 들쑤셔 놓을 지 기다려진다.


    곽 위원장은 누구?

    대구 출신으로 한성고와 고려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미국 벤더빌트대학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마치고 모교인 고려대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교편을 잡았다.

    이 대통령과의 인연은 2002년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후보로 나설 때 선거 캠프에 합류하면서 맺었다. 이어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인 ‘개국공신’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 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 인수위원으로 일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으로 새 정부의 밑그림을 그리다 ‘촛불시위’ 여파로 4개월 만에 낙마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신임을 증명하듯 야인(野人) 6개월 만에 미래기획위원장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