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범은 사람이 아닌 ‘짐승’이다”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 觀覽記 / 탈북자들의 ‘수의사에게 진료받고 펜치로 이빨을 뽑으며 하루 16시간 강제 노동에 동원되는’ 비참한 수용소 생활 증언.
    趙成豪(조갑제닷컴)   
     
     2월8일 한동대학교 북한인권학회 세이지(SAGE)가 주최하는 북한 정치범수용소 전시회 ‘그곳에는 사랑이 없다’를 관람하기 위해 서울 인사동 가나아트스페이스를 찾았다. 50여평의 전시장은 관람객들과 취재차 나온 기자들로 북적였다.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는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되는 사람들과 그 가족 3代를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 수용하여 강제노동을 통해 처벌하는 곳이다. 북한에서는 ‘0호 관리소’, ‘완전통제구역’이라 불린다. 수용소라는 것을 감추기 위해 ‘~부대’라는 표지판을 붙여 놓기도 한다. 2009년 10월 정부가 한나라당 윤상현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14호 개천, 15호 요덕, 16호 화성, 18호 북창, 22호 회령, 25호 수성 수용소가 국가보위부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약 15만4000명이 수용돼 있다고 한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관람객들의 소감을 적은 메모들이었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적으로 “같은 동족들이 겪는 참혹한 현실이 너무 슬프고 가슴 아프다”는 것이었다. “기독교 학생으로서 북한 선교를 꿈꿀 용기와 담력이 없어 죄송하다”는 식의 自嘲(자조)적인 문구도 있었다.
     
     전시장 오른편에는 수용소 생활을 그린 펜화 17점이 걸려있다. 북한 정치범 수용소 ‘완전통제구역(한 번 들어가면 영원히 나올 수 없는 구역)’ 경비대원으로 근무하다 탈북한 안명철 씨의 그림이 눈에 띄었다. 수용소 수감자들이 쥐를 잡아먹는 장면을 스케치한 그림이다. 전시를 기획한 하임숙(한동대 산업정보 디자인학부 4학년·북한인권학회장)씨는 “수용소 내의 유일한 영양공급원은 쥐를 먹는 것이다. 탈출했다 잡혀오면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게 된다”고 말했다.
     
     전시장 왼편에는 수용소를 탈출한 사람들의 증언이 동영상으로 상영되고 있었다. 김정일의 前妻(전처) 성혜림의 친구라는 이유로 요덕수용소에 끌려갔던 김영순 씨와 1992년 요덕수용소를 탈출한 강철환 씨의 증언이 담긴 동영상이었다. 50~60代 중년의 관람객들이 영상물 시청에 큰 관심을 보였다.
     
     정면에 위치한 계단 위로 빨강·보라·노란색으로 덧입혀진 강렬한 색상의 포스터들이 눈에 띈다. ‘I AM BEAST’라는 포스터는 김정일의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썼다. 이 포스터에는 “정치범들은 누구나 사람이라는 인간 딱지를 떼고 ‘나는 짐승’이라는 생각을 세뇌 당한다. 이것이 정치범 수용소를 설치한 김일성·김정일의 근본의도”라고 적혀있다. 한 중년의 관람객은 포스터 앞에서 “(김정일은)인간이 아니다”라며 분노를 표했다.
     
     전시장에는 ‘규원·혜원 양 구명운동’의 기부금 모금도 이뤄지고 있었다. 규원·혜원 양은 오길남 박사의 두 딸로 현재 부인 신숙자 씨와 함께 요덕 수용소에 갇혀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오길남 박사는 1985년 독일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유학 도중 윤이상과 송두율의 권유로 가족들과 월북했다. 그러나 북한은 그를 경제학자로서가 아닌 지령을 받고 유학생을 포섭하는 공작조로 이용했다. 부인 신 씨는 그런 오 박사를 원망했다고 한다. 1986년 11월 평양을 떠날 기회를 얻은 오 박사는 공작원들의 눈을 피해 탈출에 성공했다. 북한에 남겨진 부인과 두 딸은 수용소로 끌려갔고 오 씨는 가족들의 송환을 윤이상에게 부탁했지만 윤 씨는 가족들의 편지만 전해주며 ‘다시 월북하라’는 식의 협박을 했다고 한다.
     
     오후 네 시에는 요덕 수용소에 3년간 갇혀있었던 탈북자 정광일 씨의 증언이 기자회견 형식으로 열렸다. 정 씨는 조선평양무역회사에 근무하던 중 남한 인사와 접촉했다는 이유로 2000년부터 2002년까지 요덕 수용소에 수용됐었다. 그는 “지하 감방에 있었던 10개월은 고문의 연속이었다”며 당시의 상황을 증언했다.
     
     “‘비둘기 고문’이란 것은 사람을 매달아 놓고 불을 지피는 것입니다. 일주일간의 연이은 고문으로 인해 대소변은 바지에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간첩이 맞다’고 시인해 버렸습니다. 보위부원들은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들한테 ‘너희들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루에 16시간 강제 노동을 시킵니다.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저녁 여덟 시까지 죽도록 일만 시킵니다.”
     
     정 씨는 옥수수에 얽힌 일화와 수용소 내 의료 실태도 소개했다.
     
     “강제 노동을 제대로 안하면 밥을 안줍니다. 너무 배가고파 옥수수를 훔쳐 먹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실을 안 보위부원들이 하루는 인분을 묻힌 옥수수를 저희에게 주더군요. 그런데 다들 그 옥수수를 미친 듯이 먹었습니다. 나중에 설사병이 돌아 수십 명의 사람들이 사망했습니다. 수용소 내에는 의사도 수의사만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하더군요. 살을 꿰멜 때는 옷감을 다룰 때 쓰는 바늘을 사용하며 이빨을 뽑을 땐 펜치를 이용합니다.”
     
     정광일 씨는 “수용소 내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도 보위부원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좋아한다. 죽어서도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증언했다.
     
     전시회장을 나서면서 출입구 쪽 벽면에 새겨진 여러 문구(레터링)를 읽어보았다. 198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엘리 비젤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중립은 억압자를 도울 뿐 억압당하는 자를 돕지 않는다. 침묵은 고문자를 도울 뿐 고문당하는 사람을 돕지 않는다.”
     중립과 침묵이 약자에게 도움이 될 수 없다는 그의 말은 관람객들이 남긴 메모에서 주로 보았던 ‘불쌍하다’, ‘마음 아프다’는 식의 추상적인 감정 표출과 비교됐다.
     
     하임숙 씨는 “정치범 수용소에 대해 잘 아시는 분들은 ‘레터링만으로도 큰 볼거리였고 깊은 감동이 있었다’고 말씀 하셨다. 사람들이 레터링을 봤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림과 공감을 얻어내고 싶다”고 전했다.
     
     전시를 기획한 한 스태프는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이 붉히며 전시에 몰두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실상을 알릴 생각”이라고 밝혔다. (조갑제닷컴)
     
     
     - 장 소: 가나아트스페이스 1층 (서울 종로구 관훈동 119 / 02-734-1333)
     - 전 시 기 간: 2010. 2. 2 (수) ~ 2010. 2. 14 (월)
     - 관 람 시 간: 오전 10시 ~ 오후 7시
     - 관 람 료: 무료
     
     
     < 질의응답 일정 >
     
     2월5일: 로버트 박(자유와 생명 2009 대표)
     2월6일: 정성산(뮤지컬 요덕스토리 감독)
     2월7일: 김성욱(리버티헤럴드 기자)
     2월8일: 정광일(15호 요덕수용소 출신)
     2월9일: 김혜숙(18호 북창수용소 출신)
     2월10일: 강철환(15호 요덕수용소 출신)
     2월11일: 이지혜(미국변호사)
     2월12일: 김태진(15호 요덕수용소 출신)
     2월13일: 김영순(15호 요덕수용소 출신)
     2월14일: 정베드로(목사, 북한인권연합사무총장)
     
     
      < 전시장 스케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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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펜화그림
     

  •   각 펜화그림에 대한 설명들이다.
     
     

  •  전시회를 의미하는 레터링
     
     

  •  강철환 씨가 지은 '수용소의 노래' 머리말
     

  •   수용소에 수감된 오길남 박사의 부인 신숙자씨와 혜원·규원 양의 모습
     
     

  •  혜원·규원 양 구명을 위한 모금함
     
     

  •  기자회견을 준비 중인 탈북자 정광일 씨 (왼편은 전시를 기획한 하임숙 씨)
     
     

  •  관람객들의 관람 소감이 담긴 메모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