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로의 '결정적 하루'  
     
     "이제 무바라크는 끝났다. 새로운 중동의 역사가 쓰여지고 있다."
    趙甲濟   
     
     나는 요사이 세계사적 사건이 만들어지는 현장을 지켜보는 흥분을 느낀다.
    오늘로 8일째 접어든 이집트의 민중봉기는 1979년의 이란혁명, 1989년의 東歐 공산권 붕괴처럼 세계 전체, 그리고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끼칠 사건이다. 한국인의 삶도 직, 간접적인 영향을 받을 것이다.

    이슬람과 石油로 상징되는 중동 지역의 戰略的 중요성은 중국의 팽창과 北核으로 상징되는 東北亞의 전략적 중요성과 함께 21세기 人類가 直視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중동 最古, 最大 국가인 이집트는 중동의 정치적, 외교적, 사상적, 문화적 지도 국가였다.
    이 나라가 불타고 있다. 나는 시위사태가 터지기 직전에 9일간 이집트를 여행하였다. 내가 카이로를 떠나오는 날 본격적인 시위가 시작되었다. 이집트 체험에서 얻은 현장감각을 바탕으로, CNN과 BBC의 현장중계를 지켜 보고, 카이로에 사는 교민과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진행중인 대사건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려 한다.
     
     釜馬사태, 10.26 사건, 12.12 사건, 광주사태, 6.29 선언 등을 취재한 경험이 이집트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스라엘을 취재한 경험도 쓸모가 있다. 나는 1995년 11월 라빈 총리가 암살되기 하루 전 그를 인터뷰한 적이 있고 20여 일 간 이스라엘의 군대와 정치를 취재하였다.
     
     오늘 최대규모의 평화적 시위가 카이로 해방광장에서 있었다. 1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모여 질서 있게, 즐겁게 “무바라크 물러나라”를 외쳤다. 취재기자들은 이 광장의 분위기를 ‘카니발’이라고 표현하였다. 현지에서 여행업을 하고 있는 李鍾熙씨는 “30년간 억눌렸던 언론자유를 행사하는 이들의 표정이 밝고 축제 분위기이다”고 했다.

    이집트는 철도, 은행, 학교, 인터넷이 기능정지되고, 主수입원인 관광이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경제적으론 기절한 형편인데, 사람들은 열정과 희망에 사로잡힌 상태이다. 어제 이집트 군대는 평화적 시위는 국민들의 권리이므로 군대가 발포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이집트 군대는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무바라크와 시민 사이에서 심판 역할을 하고 있는 모양새이다. 군대가 시민들의 무바라크 퇴진 요구를 합법적인 권리라고 선언한 것은, 시민들을 사실상 勝者로 만든 셈이다.
     
     오늘을 이집트 역사의 ‘결정적인 날’이라면서 ‘백만 시위’를 보도하는 언론과 논평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는 “무바라크는 끝났다”는 것이었다. 이종희씨는 “시민들이 무바라크의 인형을 만들어 교수형을 시키는 퍼포먼스를 했다”면서 “열흘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장면이 현실이 되었다”고 감탄하였다. 이슬람이나 아랍사람들에게 교수형은 가장 치욕적인 사형법이다. 독재자는 국민들 마음속에 공포심을 심을 수 없으면 끝장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지난 8일간의 시위를 통하여 머리와 가슴속의 독재자를 죽인 것이다. 
      
     오늘의 대시위와 때를 맞추어 소규모 시위가 계속되던 요르단의 國王도 총리를 해임하고 정치개혁을 약속하였다. 튀니지에서 출발한 中東의 激變이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前後와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작금에 中東을 뒤흔드는 시위의 성격은 상투적인, 反美나 反이스라엘 성향이 아니라 反독재-反부패-反빈곤, 즉 민주화 운동이란 점에서 中東 역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이젠 무바라크가 물러날 것이냐가 쟁점이 아니라 무바라크가 물러나는 것으로 사태가 해결되겠는가이다. 무바라크가 임명한 부통령과 총리, 장관이 무바라크 없이 사태수습을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하여는 부정적인 견해가 강하다. 무바라크 통치와 직접 관련이 없는 40~50대 장교들이 주도권을 잡고 反정부 세력과 대화를 하면서 민주화 개혁을 하는 게 현실적이란 분석도 나온다. 모든 문제를 투표장에서 결정지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재자의 치명적 한계는 권력을 놓는 즉시, 도망 가거나, 감옥에 가거나, 피살된다는 점이다. 그 현명한 李光耀도 권력을 아들에게 물러주었다. 모든 독재자의 고민은 평화로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가이다. 한국도 전, 현직 대통령들이 客死, 피살, 투옥, 자살을 기록하였다. 모든 권력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毒이 묻어 있다. 민주국가에선 그 毒이 치명적이진 않다.
     
     이번 카이로 시위는 지도자나 主動조직이 없다는 특징이 있다. 자연발생적이란 점에서 순수하게 보인다.
     
     그러나 밤이 되면 추악한 모습이 드러난다. 경찰이 숨어버린 카이로에선 폭도들과 범죄자들이 밤을 틈타 살인, 강도, 약탈을 일삼는다. 이종희씨는 “일몰을 알리는 기도소리가 들리면 불안해진다”고 했다. 주택가에선 이때부터 주민들이 조직한 自警團이 활동한다. 애완견을 데리고 나와 수상한 자동차를 수색하고, 죽창이나 부엌칼을 들고 순찰을 하면서 재산과 가족을 보호하려는 활동이 시작된다. 밤만 되면 총성이 울린다. 이종희씨는 “어제밤 우리 집 부근에서 두 명이 죽었다”고 했다. 밤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수 없다는 것이다.
     
     외국 언론은 어제, 오늘 이집트 사람들의 시위 방식을 칭찬한다. 파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시위를 하다가도 경건한 기도를 올리고, 쓰레기까지 치운다는 것이다. 勝者의 여유인가? 뉴욕타임스의 니콜라스 크리스토프 기자는 해방광장에서 만난 이집트 사람들이 "이번 민주화 시위는 튀니지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이다. 왜 미국은 우리의 민주화 요구를 지지하지 않는가"라고 따졌다면서 "이집트가 미국에 민주주의를 가르쳐주고 있다"고 했다.
     
     한 이스라엘 외교관은 텔레비전 인터뷰에서 "이집트 사태는 군중이 주도하고 있다. 무슬림 형제단과 알자지라 방송이 선동한다. 무바라크를 대신할 지도력이 만들어질지 의심스럽다. 이집트는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할 수준이 되지 못한다"고 경고하였다. 지금 이집트 사람들이 느끼는 희열은 언젠가는 실망이나 배신감으로 바뀔 것이다. 그것조차도 역사를 진전시키는 실망과 배신감이 될 것이다.
     
     카이로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다. 2300만 인구에 수백 만 대의 자동차가 車線도 신호등도 없는 도로를 메운다. 그럼에도 범죄율이 매우 낮다.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에서 소매치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이슬람이 강한 나라의 공통점이지만 이집트처럼 가난한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오늘 해방광장에서 있었던 시위에 이런 좋은 점이 부각된 모양이다.
     
     요사이 이집트의 날씨는 한국의 늦가을 같다. 데모 하기 매우 좋은 날씨이다. 섭씨 50도까지 오르는 여름이었다면 이런 시위는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카이로의 연평균 강우량은 40밀리에 불과하다. 이런 기후가 피라미드를 거의 原型대로 보존시켰다고 한다. 비가 오지 않는 이집트의 겨울날씨가 시위대를 돕고 있다. 이집트는 나일강이 준 선물이라고 한다. 이번 시위는 하늘이 준 선물인가?
     
     *일본에 이런 속담이 있다.
     <세상을 바꾸는 이들은 젊은이, 바보, 외부에서 온 사람이다>
     
     1960년 4.19 학생혁명은 10대, 20대가, 그 1년 뒤 5.16 군사혁명은 30, 40대가 주도하였다. 김정일 정권을 무너뜨릴 세력도 이 연령층에서 나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