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하준의 조선일보 기고와 오연호의 중아일보 인터뷰

     성향에 관계없이 들을 만한 인물 인터뷰와 읽은 만한 칼럼을 게재하면 된다
    변희재 /미디어워치 발행인

     조선일보 신년 아침논단 필진에 좌파 성향의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이름이 실렸다. 물론 장 교수는 이전에도 꾸준히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해왔으니 그 연장선에서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장 교수가 처음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했을 때와 현재의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장 교수는 좌파 성향이라는 평가와 달리 박정희 대통령식 경제개발의 장점을 높이 샀고, 삼성·현대 등 대기업의 존재에도 역시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조선일보 입장에서나 장 교수 입장에서 충분히 논조의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장 교수의 이러한 시각에 대해 친노 논객 진중권은 KBS1 ‘TV 책을 말하다’에서 논쟁을 벌인 바 있다. 물론 경제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진씨가 일방적으로 몰리긴 했으나, 친노세력과 장 교수 간 경제에 대한 시각차는 분명히 드러났다. 이런 장 교수였기에 조선일보 기고에 대해 친노세력은 전혀 관심을 둘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장 교수가 최근 강력한 분배 정책을 주장하면서 전혀 다른 상황이 초래됐다. 프레시안 등은 연일 장 교수를 띄우며 그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2010년 최고의 책 3권 중 하나로 꼽았다.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 다른 친노 매체 역시 장하준 띄우기에 동참했다. 현재 민주당은 무상급식에 이어 무상의료 등 연일 혈세투입형 퍼주기 정책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이들의 기관지 역할을 하는 친노 매체들이 장하준을 띄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장 교수가 신년 벽두부터 조선일보 필진에 합류했으니 여기서부터는 친노세력의 안티조선 잣대가 적용돼야 했던 것이다. 특히 장 교수는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 초청으로 강연을 하는 등 메시지가 아닌 매체를 중심으로 편을 가르는 노무현식 안티조선 잣대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장하준의 조선일보 고정필진 합류, 친노 매체 침묵은 권력탈환 위한 정략

     그러나 이상하게도 오마이뉴스, 프레시안, 한겨레, 경향신문 등 친노 매체는 조용하다. 그 어떤 친노 매체도 장하준 교수의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활동에 대해 비판하지 않고 있다. 장 교수 행태를 짚은 유일한 기사는 정통 친노 매체인 라디오21의 ‘장하준 조선 기고, 벽두부터 네티즌 설왕설래’였다. 그러나 이 기사도 매체 자체의 시각으로 장 교수를 비판한 게 아니라 네티즌들의 찬반양론을 소개하는데 그쳤다.
    더 놀라운 점은 가장 교조적인 안티조선 잣대를 들이대는 방송귀족노조들 연합체 PD연합회의 PD저널 1월12일자 논설이 장 교수 의견을 인용하며 종합편성 채널을 비판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것은 무엇일까? 또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비단 이 질문이 장 교수가 책에서 다루는 경제학의 범주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종합편성채널 정책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한나라당, 방송통신위원회와 보수언론 등이 내세우고 있는 논리와 주장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귀족노조에서 종편 진출을 결사적으로 막고자 하는 대상은 당연히 조선일보다.
    이런 조선일보에 노무현식 안티조선 잣대를 정면으로 거스르며 고정 필진으로 입성한 장하준의 시각으로 종편을 비판한다? 노 정권 시절이었다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과연 귀족노조와 안티조선 세력은 자신들의 안티조선 원칙을 포기한 것일까?
    그렇다고 볼 수도 있고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애초 안티조선은 노 정권 탄생 후 각 매체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자는 강준만식 온건한 안티조선과 노 정권에 절대적으로 충성하겠다는 명계남식 권력형 안티조선 노선으로 분리됐다. 즉 명계남식 혹은 귀족노조식 안티조선은 명분과 원칙보다는 친노세력의 권력에 도움이 되는 일이면 무엇이라도 한다는 취지의 권력형 노선이었던 것이다.

    장 교수가 조선일보에 칼럼을 쓰는 것이 친노세력의 정권탈환에 도움이 되면 묵인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비판하는 것이다. 노 정권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달라진 건 장하준식 혈세투입형 퍼주기 정책이 조선일보에라도 실려 알려지는 것이 낫다는 전략이다.

    장 교수는 이러한 전략의 변화 흐름을 단적으로 보여준 상징물일 수도 있다. 물론 친노세력이 포퓰리즘 선동 능력까지 갖춘 장하준의 상품가치를 고려한 점도 있을 것이다. 총선과 대선에서 장하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데, 같은 편을 미리 흠집 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약 1년 전, 노회찬 전 진보신당 대표가 조선일보에 기고를 한 것도 아니고 90주년 기념행사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집단 난타를 당해 사과문까지 발표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격세지감이다. 장하준의 조선일보 기고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 2011년부터 노회찬 전 대표는 소신껏 조선일보 행사는 물론 인터뷰에 응해도 괜찮을 전망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오마이뉴스와 중앙일보의 밀월 관계

     1월9일자 중앙일보에는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 인터뷰가 실려 화제가 됐다. 오 대표는 “진보 언론도 팩트들을 진지하게 듣고 사실인지 아닌지 더 심층 취재해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 거론하겠다” 등 우파진영에서 비판한 내용을 일부 수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오 대표의 중앙일보 인터뷰에 대해서는 미디어스의 김완 기자가 다음과 같이 비판하기도 했다.
     
     “멀쩡히 봐주기 참 아찔한 관통이다. 중앙일보의 전격적인 오 대표 인터뷰는 졸지에 그간 숱하게 중앙일보를 비판해온 매체와 시민사회의 입장을 ‘이류 진보’로 규정되도록 만들었다. 여기까지는 오 대표의 책임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일류 진보’에 으쓱해진 것인지 오 대표 역시 중앙일보를 ‘생산적이고 양심적인 보수’로 에두른 장면은 아무리 생각해도 머쓱하다. 오마이뉴스의 독자 가운데 중앙일보에 이런 최고의 찬사가 바쳐지는 장면에 고개를 주억거릴 이는 별로 없을 것이다.”
     
     이미 오마이뉴스는 노무현 정권 시절부터 중앙일보와는 상대적으로 가까운 관계였다.
    오연호 대표는 중앙일보 홍석현 회장이 세계신문협회 총회 때 초청해 함께 가기도 했었다. 세계신문협회는 친노세력이 보수 신문사 사주들의 모임이라 비판해왔던 단체였다.
    이후 오마이뉴스는 홍석현 회장의 인터뷰를 실었다. 더욱 놀랍게도 인터뷰 기자는 과거 중앙일보를 조선일보보다 더 나쁜 신문이라 공격하며, 중앙일보는 조선일보와 다르게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 강준만 교수를 변절자라 비난했던 정운현 당시 오마이뉴스 편집장이었다. 이후 친노세력이 족벌신문 사주라 공격했던 홍석현 회장을 노 정권에서는 주미대사로 전격 임명한다. 이러한 관계로 볼 때, 오연호 대표의 중앙일보 인터뷰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노 정권 당시 족보에도 없던 명계남식 권력형 안티조선이 판을 치면서 언론계와 지식계는 정략이 난무하며 황폐화됐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강준만식 안티조선 정도가 아니라 아예 노선과 매체 간 벽을 허물어야 한다. 강 교수 역시 공개적으로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여전히 안티조선의 화신들처럼 주장하는 친노세력과 귀족방송노조들은 안티조선 방향을 내부적으로 정리라도 해보라는 것이다. 오직 권력만을 위해 자신들이 내세운 기준을 마음대로 바꿔대는 짓은 역겹기까지 하다.

     이제부터는 성향에 상관없이 들을 만한 사람의 인터뷰는 싣고, 읽을 만한 사람의 칼럼은 게재하는 상식적인 룰을 정해보자. 이 기준으로 평가하자면 중앙일보의 오연호 대표 인터뷰는 중앙일보 독자들 입장에서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는 인터뷰고, 조선일보의 장하준 교수 칼럼은 그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참고해볼 때 읽을 가치조차 없을 가능성이 99%다. 장 교수의 첫 칼럼이 실리면 조선일보 내부 기자들끼리 진지하게 스터디하며 토론해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오연호 대표 인터뷰를 진행한 김종혁 중앙SUNDAY 편집장은 좌우소통포럼에도 참여한 적이 있고, 들어볼 만한 메시지를 갖고 있는 좌파인사들에 대해 연구하는 등 노선의 벽을 허무는 작업을 꾸준히 해온 언론인이다. 한겨레, 오마이뉴스 등의 기자들은 왜 이런 작업을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가끔가다 오마이뉴스 등에 긍정적으로 소개되는 우파인사들은 우파진영 내에서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사이비들 투성이다. ‘집권플랜’ 발표와 같은 언론 정도를 넘어선 정치행위를 하기 전에 차분히 공부부터 시작하기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