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순박한 두메산골 사람들이 사는 깊은 산중(山中) 마을에는, 내가 어렸을 때만해도 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풍습들이 소박하게 남아있었다.

    ◆ 사랑방과 안방으로 '말 간다'

    그 풍습 중에는 ‘말 간다’라는 것이 있었다.‘ 말 간다’라는 명사는“동네 사람들이 생활에 보탬이 되는 좋은 말, 재미나는 말, 새로운 소식을 전하는 말, 옛날 이야기, 기타 여러가지 말을 들으러 간다. 그리고 자기도 그러한 말을 하러간다”를 요약해서 ‘말’자(字)와 ‘간다’를 결합하여 ‘말 간다’가 된 것으로 여겨진다.

    저녁 식사 후, 성년 남자들이나 나이가 지긋한 아낙네들은 ‘말 간다’하며 자기 집을 나선다. 그래서 동네에서 좀 크다고 소문난 몇 집에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냈다. 남자들은 사랑방에, 아낙네들은 안방으로 모여들었다. 아낙네들이 사랑방으로 가는 일은 없었으나, 젊은 남자들이 안방으로 가는 일은 흔히 있었다.

    일가 친척으로 8촌이내 되는 젊은 남자들은 안방으로 가서 아낙네들이나 어린애들과 어울려 재미나는 이야기로 모인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경우가 흔했다. 사람들은 ‘말 간다’를 하룻밤에 한 군데만 가는 것이 아니라 두 세집 가는 경우도 있었다. 특히 새로운 뉴스를 들으면 이것을 다른 집들에게 전파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새색시들은 큰 시댁에나 작은 시댁에 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집으로 ‘말 간다’를 하지않는 것이 관례였다. '말 간다’로 모여든 사람들은, 산 넘어 어느 동네에서 누가 죽고, 누가 장가 시집 가고, 누구네 돼지가 늑대에 물려 가고, 누구네 암소가 송아리를 두 마리나 났다는 둥, 이웃 동네의 좋은 일과 궂은 일들을 서로 알려주었다. 또 옛날부터 구전돼 내려오는 동네 자랑거리인 동네 역사, 특히 할아버지와 아버지들이 경험한 삶의 지혜가 담긴 이야기, 우리나라의 역사 이야기, 때에 따라서는 중국의 삼국지, 초한 승부가 이야깃거리로 등장하기도 했다.

    기억력이 좋고 말재주가 있는 사람은 심청전, 춘향전 이야기, 또는 옛날에 동네에서 일어났던 재미있는 이야기의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싫증내지 않고 모두들 경청했다. 당시 산골마을의 집들은 태반이 초가삼간 오막살이였다. 이렇듯 초옥은 초라하기는 해도 순박한 마을 사람들에게는 오순도순 아늑한 보금자리였다. 초가집 지붕 위에도, 뒤뜰 장독 위에도, 울타리 위에도, 그리고 뜰이나 밭과 산에도 소리없이 흰 눈이 내리며 소복이 쌓이는 겨울 어느 날, 저녁식사를 끝낸 사람들은 ‘말 간다’를 나섰다.

    ◆ 호랑이를 때려잡은 형제

    사람들은 희고 고르게 쌓여있는 눈 위에 발자국을 푹푹 새기면서, 사랑방과 안방으로 ‘말 간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날밤, 어느 안방에서는 20대 후반의 젊은이가 호랑이를 화제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 ▲ 호랑이 ⓒ 연합뉴스
    ▲ 호랑이 ⓒ 연합뉴스

    1920 년대, 황해도 금천군 현내면(나중의 우봉면) 우봉리에 있는 대둔산(해발 760미터) 줄기에서 호랑이 두마리가 잡혔다. 한마리는 총으로 잡고 한마리는 덫으로 잡았다. 그런데 덫으로 잡을때 인명을 잃을뻔한 사고가 일어났었다. 쪼기창애라는 덫을 놓은 마을사람은 젊은 형제였다. 노루를 잡기 위해 노루가 잘 다니는 숲속 길목에 덫을 놓았던 것인데, 며칠있다가 혹시나 하는 생각에 덫 있는 곳으로 가보았더니 놀랍게도 큰 호랑이 한마리가 덫에 앞발이 걸려 용을 쓰고 있었다. 형제가 가지고 간 무기라고는 별로 길지도 않은 창 뿐이었다. 노루같으면 단숨에 찔러 죽일 수 있겠지만 호랑이라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형제는 상의 끝에 수박덩어리만한 큰 돌덩어리를 10여 개 주워 모아 호랑이를 창으로 찌르고, 돌덩어리로 머리를 쳐서 죽이기로 했다. 형이 창으로 찔렀으나 호랑이는 재빨리 창을 피했다. 이어 동생이 돌덩어리로 호랑이 머리를 쳤으나 역시 빗나갔다. 이때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나무에 묶은 덫의 쇠사슬 줄이 풀리면서 호랑이가 내달으며 형에게 달려들었다. 형은 돌아서서 도망치면서 얼떨결에 거추장스러운 창을 내버렸다. 호랑이는 형을 추격했다. 동생은 형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을까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돌덩어리 한개를 둘러메고 호랑이에게 다가갔다.

    정상적이라면 사람보다는 호랑이의 달리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하지만 호랑이 앞발 하나에 달려있는 덫과, 덫에 매달린 쇠사슬 줄이 쩔그럭 거리면서 호랑이의 속도에 제동을 걸었다. 그래서 호랑이와 사람의 달리는 속도가 엇비슷 했다. 정확히 말한다면 호랑이가 약간 빨랐다. 드디어 호랑이의 성한 앞발이 형의 궁둥이를 몇 번 벅벅 긁었다. 예리한 호랑이 발톱에 형의 바지는 여러갈래 찢어지고 위기에 몰렸다.

    동생은 형을 살리려고 계속 고함을 지르며 돌덩어리를 두손으로 쳐들고 전속력으로 호랑이의 뒤를 쫓아갔다. 호랑이는 뒤에서 들리는 함성이 미심쩍었는지 뒤로 머리를 홱 돌렸다. 순간 동생이 돌덩어리로 호랑이를 내리쳤다. 호랑이와 동생의 거리는 좀 떨어져 있었는데, 귀신도 감탄할 만큼 돌덩어리가 정확히 호랑이의 관자놀이에 명중했다. 호랑이는 쓰러지면서 의식을 잃었다. 동생이 돌덩어리를 집어 들어 다시 한번 호랑이의 관자놀이에 내려쳤다. 이렇게 몇 번 되풀이 하자 호랑이는 숨을 거두었다.

    동생은 호랑이가 죽었다고 큰소리를 외치며 형을 불렀으나 형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형이 도망치던 방향으로 한참 나아가니 형이 나무 위에 올라가서 나무를 꼭 껴안고 넋이나간 사람처럼 멍청하게 겁에 질려 있었다. 동생이 쳐다보며 호랑이 때려잡은 이야기를 했더니, 조금있다가 제정신이 드는듯 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형제는 호랑이를 팔아 거금을 손에 쥐었으나, 형의 심기는 불편했다. 그는 산에 가는것이 싫어졌다. 몇달 후, 그 형제는 딸린 가족들을 이끌고 먼곳으로 이사를 갔다.

    그런 호랑이 이야기를 들으면 아이들은 겁이 나서 밤에 뒷간 가기를 꺼렸다. 마을이 산속이라서 할아버지들이나 아버지가 호랑이를 만난 이야기는 꽤 많았다. 옛날에는 호환(虎患)이 매우 두려웠으나, 총이 세상에 나오고부터는 호랑이 숫자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요새는 호랑이의 위협이 별게 아니라고 이야기해도, 아이들은 호랑이 이야기는 무서우니 그만하고 다른 짐승이야기를 해달라고 어른들을 졸랐다. 여러 짐승 이야기가 다 재미있었으나 유독 꿩 이야기는 자주 화제에 올랐다.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꿩을 실제로 본 산증인은 그때까지 동네에 두 분이 생존해 계셨다. 모두 칠순에 접어든 방골 할아버지와 광대터 할아버지가 그들이었다.

     

  • ▲ 호랑이 ⓒ 연합뉴스

    <6.25와 베트남전 두 死線을 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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