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쇼몽'은 운명적인 우여곡절을 겪은 영화입니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스크립터였던 노가미 데루요 여사는 영화 '라쇼몽'을 두고 '불운의 작품'이었다고 말한다.

    1951년 이 작품으로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고, 스티븐 스필버그와 조지 루카스, 마틴 스코시스를 비롯한 전 세계 수많은 영화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구로사와 감독. '라쇼몽'을 통해 처음으로 그와 함께 작업 했던 노가미 여사, 그녀가 이 작품에 '불운'이라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가미 여사에게 직접 그 이유를 들어봤다.

     

  • ▲ 지난 1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탄생 100주년 특별전'에서 노가미 데루요 여사가 영화 '라쇼몽'의 뒷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뉴데일리
    ▲ 지난 1일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탄생 100주년 특별전'에서 노가미 데루요 여사가 영화 '라쇼몽'의 뒷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 뉴데일리

    지난 1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DMC에 위치한 시네마테크KOFA에서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탄생 100주년 특별전'의 개막식이 열렸다. 이날, 개막작으로는 구로사와 감독을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올려 둔 그의 작품 '라쇼몽'이 선정돼 상영식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가 마련됐다.

    특히, 이날 공개된 '라쇼몽' 영상은 2년 전 미국 아카데미에서 복원된 필름. 오리지널 필름은 이미 분실된 상태로 일본 필름센터가 보관중이던 마스터포지를 고생 끝에 이어 붙여 만들어낸 영상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날 행사에는 노가미 여사를 비롯해 일본의 명배우 나카다이 다츠야가 참석해 함께 구로사와 감독과 그의 작품을 추억했다. 노가미 여사는 1951년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대작 '라쇼몽'이 1950년 일본 개봉 당시 '난해하다'는 이유로 관객들과 평단으로부터 싸늘한 평가를 받았던 사연을 털어놨다.

     

    ◆ "당장 필름 꺼내!" 개봉 전날까지 이어진 악재

    영화 '라쇼몽'이 제작된 것은 1950년. 당시에는 영화가 촬영이 끝나기 전에 이미 개봉일이 정해져 있어, 작품이 완성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무조건 상영을 해야만 하는 구조에 놓여져 있었다. '라쇼몽'의 개봉 날짜는 1950년 8월 25일 오후 5시였다.

     

  •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 뉴데일리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라쇼몽' ⓒ 뉴데일리

    하지만, 대부분의 촬영이 야외에서 이뤄졌고,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이틀전인 23일까지도 아직 영화는 완성되지 않은 상태였다. 편집실에서 한창 작업이 진행 중이던 그날, 갑자기 편집실 옆방에서 화재가 나서 방 전체가 몽땅 타버리는 사건이 일어났다. 만일, 편집실에까지 불길이 전이되면 필름이 손실돼 세상에 '라쇼몽'이 태어나지 못할 상황. 구로사와 감독은 연기 속에서 "당장 필름을 꺼내!"라며 절규했다.

    그러나, 불운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개봉 전날인 24일 또 다시 더빙을 진행중이던 영사실에서 작은 불이 난 것이다. 그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무조건 25일 개봉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었기에, 스탭들은 다시 하루 밤을 꼬박 세워 가까스로 녹음을 마쳤다.

    당시의 모든 녹음은 후시녹음으로 진행됐었다. 그렇기에, 스크린에 영상을 상영하면서, 옆에서 약간의 경계를 만들어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면 배우가 그 앞에서 대사를 하는 등 모든 것이 동시녹음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완성 후 살펴보니 화재가 일어났을 당시 대사 한 마디를 분실했던 것이었다. 모든 작업을 마치고 도쿄로 돌아갔던 다조마루 역의 배우 미후네 도시로를 다시 불러 "이런 불 같은 여자는 본 적 없어"라는 한 마디를 녹음케 해 영화를 겨우 완성케 했다.

    노가미 여사는 "결국 완성된 것을 하루 꼬박 밤을 샌 상태에서 비몽사몽으로 봤었기 때문에 어떻게 완성됐나 기억도 나지 않았다"라며 "다만, 다행히도 25일 모든 제작을 마치고 도쿄로 프린트 운반을 해 정상 개봉했고, 26일부터 본격적으로 전국 개봉에 들어갔다. 그러나 평은 썩 좋지 못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 ▲ 노가미 데루요 여사(좌)가
    ▲ 노가미 데루요 여사(좌)가 "'라쇼몽' 개봉 당시 아직 태어나지 않았었죠?"라고 묻자, 일본 배우 나카다이 다츠야(우)가 "당시 고등학생 이었습니다"라며 웃으며 대답하고 있다. ⓒ 뉴데일리

    ◆ 아무도 몰랐던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

    이러한 불쌍한 운명에 '라쇼몽'은 세상에 태어났다. 그러나, '라쇼몽'이 세상에 인정받기 까지는 1년이라는 세월이 걸려야만 했다.

    1950년대 전후의 혼란으로부터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한 일본에서 기적적으로 완성된 '라쇼몽'은 제작회사도, 감독도 모르는 사이에 이탈리아 배급회사의 호의로 베니스 영화제에 출품돼 51년도 그랑프리인 황금사자상을 수상한다. 하지만, 관계자가 현장에 없었던 관계로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일본인이 대신 트로피를 받았다.

    당시 구로사와 감독은 '라쇼몽' 다음 쇼치쿠에서 만든 도스토예프스키 원작의 '백치'가 개봉되자마자 악평이 분분했고 흥행 성적도 최악인 상황에 있었다. 다음으로 예정된 영화도 취소당해 '당분간 일이 없을 것 같구나'라고 생각하고는 근처 강에 낚시하러 갔다가 고기도 잡히지 않아 의기소침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부인이 나와서는 그에게 "축하해요!"라고 했다. "뭐가?"라고 그가 되묻자, 부인은 "그랑프리예요!"라고 말했다. 구로사와 감독은 도무지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당시 제작사인 다이에이 사장조차도 "그랑프 리라는게 뭐야?"라고 물었다는 것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다.

     

    ◆ 구로사와 아키라의 '힘의 영화'

    이후 구로사와 감독은 다시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되찾고 부활하게 된다. 또한, 이것이 일본영화의 문을 세계에 열어 준 계기가 된다. 노가미 여사는 "'영화의 힘'은 구로사와 아키라도 같다"고 말한다. 패전 직후 자신감도 희망도 잃어버리고 있던 당시 일본인에게 '희망'이라는 힘을 준 것이기 때문이다.

  •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 자료사진
    ▲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 ⓒ 자료사진

    비와 바람, 그리고 안개의 감독. 20세기 영화사의 위대한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는 감독이 영화의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었던 마지막 시간을 살았던 감독이다. 응집력 강한 서사 구조와 매력적인 인물 묘사, 리듬감 있는 편집과 시각적인 화려함으로 가득한 그의 영화는 한마디로 '힘의 영화'였다.

    남성적인 목소리에 담긴 장대한 서사와 실존주의적인 휴머니즘이라는 보편적인 세계를 통해 그는 국경과 시대를 초월한 강한 호소력을 발휘하며 '20세기 영화의 셰익스피어'로 불리기도 했다.

    한편, 노가미 여사는 다시금 '라쇼몽'을 상영하게 된 것에 대한 감격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그녀는 "여러분과 함께 '라쇼몽'을 보고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고 기쁘다"라며 "여기 나오신 배우분들 모두 돌아가셨다. 그리운 마음으로 끝 장면 봤는데, 살아 있는건 주연 여배우와 쿄 마치코와 마지막에 등장해 힘차게 울었던 아기 뿐일 것 같다"며 감동을 전했다.

    6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구로사와 감독의 영화 '라쇼몽'은 진정 불운의 작품인가 다시금 묻고싶다. 수많은 역경을 거쳐, 결국 진정한 평가를 얻어낸 '라쇼몽'은 어쩌면 진짜 '행운의 작품'이었던 것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