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와 미쓰비시중공업이 21일 가고시마(鹿兒島, 녹아도)현 다네가시마(種子島, 종자도) 우주센터에서 금성탐사위성 '아카츠키(새벽, PLANET-C)'와 우주 범선 '이카로스' 등을 실은 H-2A 로켓 발사에 성공했다.
     
     일본 언론보도에 따르면 '아카츠키'는 가로, 세로 약 1.4m의 박스 형태로, 무게는 500㎏에 달한다고 한다. 오는 12월 7일경 금성에 도착할 예정으로 이후 약 4년 동안 특수 카메라로 금성의 기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계획이다.
     
     '이카로스'는 태양광만 있으면 연료 없이 운항이 가능함을 입증하고, 태양 전지가 탑재된 돛을 이용, 가속과 감속 등 궤도 제어 실험도 할 예정이다. 일본은 이번 비행이 성공할 경우 오는 2013년쯤 달에 착륙선을 보내 달 표면의 물질을 가져올 계획이다.
     
     일본의 우주 기술은 현재 한국보다 35년쯤 앞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우주발사체 기술은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기술과 직결되어 있다. 일본은 현재 보유한 우주 발사체 기술만으로도 ICBM을 만들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일본은 이미 45톤 가량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으며,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핵폭탄을 제조, 미사일 탑재까지 할 수 있는 기술적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중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일본의 핵(核)무장이다. 중국은 과거 청일(靑日)전쟁에서 일본에 철저하게 깨졌던 아픈 기억이 있다. 물론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다. 
     때로는 일본이 두렵고, 일본이 부럽고,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일본이 자랑스럽다!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
     
     日本 '화혼양재(和魂洋才)'의 핵심은 漢字 사용
     
     韓日양국을 비교하면서 흔히들 빠지는 한 가지 착각이 있다. 그것은 바로 ‘朝鮮이 쇄국정책(鎖國政策)을 버리고 日本보다 먼저 개항(開港)을 했더라면 이후의 역사(歷史)는 크게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歷史에 假定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의 과거(過去)와 현재(現在)를 객관화(客觀化)하는 방법부터 배워야 한다. 아울러 일본과의 격차를 줄인 이승만의 건국(建國), 박정희의 근대화(近代化)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그리고 노예국가 北韓이 아니라 大韓民國에서 태어난 것에 감사해야 한다.
     
     개항(開港) 전 일본인들의 전반적인 의식수준(意識水準)은 조선과 비교해 이미 서양(西洋)문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일본의 국민소설가인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는 “막부(幕府) 시대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일본인들의 비율은 70%나 됐다. 당시 일본인들의 약 10%는 사무라이였는데 이들은 식자(識者)계급이었다. 농·상·공에 종사한 사람도 문자(文字)를 알았다”고 밝히고 있다.
     
     명치유신(明治維新) 이전 도쿠가와 막부(幕府)시대 사무라이들을 칼부림이나 하는 무식한 사람들로 일본을 잘못 보는 경우도 없다. 明治維新기의 일본인들은 양반이 다스리던 조선조 백성들보다도 문맹률이 훨씬 낮았다. 특히 지방 영주 등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남긴 글과 예술품들을 봐도 그 수준이 매우 높아 이들이 全人的 교양인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朝鮮이 신미양요(辛未洋擾)와 병인양요(丙寅洋擾)를 통해 척화비 세우기에 열을 올리기 훨씬 전인 1774년 네덜란드로부터 들여온 서양 의학서적을 사전과 통역 없이 장장 4년에 걸쳐 일본어로 번역해냈다.
     
     ‘해체신서’(解體新書)로 알려진 이 의학(醫學) 서적을 번역한 사람은 스키타 켄바쿠(杉田玄白 )란 인물로 그와 그의 동료들이 도전한 네덜란드 의학서적의 원제는 ‘Tafel Anatomy’였다. 解體新書가 번역되면서 일본의 의학기술은 급속하게 발전했으며, 난학(蘭學, 네덜란드 학문) 보급의 계기가 됐다.
     
     그러나 번역은 보통 어려운 작업이 아니었다. 겐바쿠가 이 의학서적을 번역하려고 했던 이유는 인체 해부가 그 계기였다고 한다. 손에 넣은 ‘타펠 아나토미아’의 해부도가 눈앞의 인체와 모두 일치했기 때문이다.
     
     겐바쿠 등은 서양 의학서적의 이 같은 정확성에 놀라 번역을 결심했다고 한다. 그러나 막상 번역을 시작하자 “노와 키가 없는 배를 대해로 끌고 나온 것처럼 망망대해에서 의지할 데 없이 기가 막히기까지 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그 어려운 의학서적을 어떻게 번역했을까? 당시 겐바쿠는 의사였기 때문에 책 사이에 끼여 있는 인체(人體)해부도를 보고 장기(臟器)의 명칭을 대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렇게 번역한 장기명(臟器名)을 모두 본문에 대응시키고 번역팀 내에서 네덜란드어를 가장 잘하는 마에노 료타쿠(前野良澤)가 알고 있는 모든 단어를 일본어로 번역시켰다.
     
     그러나 처음에는 “눈썹에는 눈 위에 난 털이다”라는 문장 하나도 풀지 못한 채 몇날 며칠을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기를 1년을 버티자 하루에 10줄 정도를 번역할 수 있게 됐고, 4년 동안 총 11회에 걸친 수정을 거쳐 1774년 마침내 ‘解體新書’를 간행했다.
     
     ‘解體新書’를 만들면서 일본어에 없는 새로운 단어도 많이 만들어졌는데, 거의 한자(漢字)로 조어됐으며 신경-연골-동맥 같은 것은 오늘날에 다른 한자문화권에 퍼져 쓰이고 있다.
     
     ‘쇄국’(鎖國)이란 단어는 1801년 시키키 다다오가 캠벨의 일본지(日本志)를 번역할 때 처음 사용한 것이 최초였다. 그러나 일본의 에도 막부는 동시대의 조선왕조와 달리 활발하게 국제교류를 추진하고 무역을 했다.
     
     네덜란드, 스페인, 포르투갈, 중국, 루큐(現 오키나와 섬)가 교역대상국이었다. 특히 일본이 수출한 동(銅)의 경우 유럽 경제에까지 영향을 주었고, 동전은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에서도 화폐로 유통됐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 등에서는 소화(昭和) 시대 초기까지 일본의 동(銅)이 사용됐다. 일본은 또 국제무역을 통해 국내에도 수많은 상품을 수입했다.
     
     예를 들어 에도의 유력 상인은 외제(外製) 향수를 바르고 산호 비녀를 꽂고 유리잔에 와인을 마셨다고 한다. 한편,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德吉川宗, 1716~1745년)의 시대에는 외국상품에 대한 수입제한(輸入制限)이 완화되어 漢字로 번역된 유럽서적을 비롯해 페르시아어, 베트남의 코끼리와 낙타 등 진기한 동물까지 유입됐다.
     
     요시무네는 또 스스로 천문학(天文學), 역학(曆學), 법학(法學)을 익혀 스스로 강우량을 조사해 홍수를 예상했으며, 서양식 승마를 배우고 부하에게 네덜란드어를 배우게 했다.
     
     일본의 현대화를 상징하는 키워드로 흔히 화혼양재(和魂洋才)를 내세운다. ‘일본의 정신’에다 ‘서양의 기술’을 합쳤다는 뜻이다. 일본인들의 이 같은 정신은 서양 학문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그대로 반영됐다. 일례로 ‘철학’(哲學)이란 단어는 일본인들이 서양서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만든 단어다. 계몽가 니시 아마네(西周)가 명치유신 초기 ‘백일신론’(百一新論)이란 저서에서 서양 개념인 ‘philosophy’를 ‘철학’으로 번역한 것이 처음이었다.
     
     ‘사회’(社會)도 마찬가지다. 신문기자 후쿠치 겐이치로(福地源一郞)가 1875년 마이니치(每日)신문에 사용하면서 서양 개념인 ‘society’에 해당하는 동양 한자권의 언어로 정착됐다. 물론 일본인들의 이 같은 조어(造語)능력의 원천은 漢字를 사용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반면 한국은 한글전용 이후 이에 따른 부작용에 나타나고 있다.
     
     일례로 한국교육개발원(KEDI) 자료에 따르면 OECD 사무국이 1994년부터 실시해온 성인인구의 문서해독 능력 측정도구를 우리 국민에게 적용한 결과, ‘의약품 복용량 설명서 같은 생활정보가 담긴 각종 문서에 매우 취약한 사람’ 비율이 전체의 38%(조사대상국 중 최하위)로 OECD 회원국 평균(22%) 수준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OECD 국가 문서해독 능력 비교'는 구직원서, 봉급명세서, 대중교통시간표, 지도 등 일상적인 문서를 이해해 이를 실생활에 적용하는 능력을 비교한 것이다. 각종 첨단정보가 일상화한 선진국에서는 글씨해독 여부만 보여주는 단순 문맹률보다 훨씬 더 실질적인 문맹률로 간주되고 있다.
     
     이와 함께 ‘2004 한국 교육·인적자원 지표’에 따르면, 선진사회(先進社會)의 복잡한 일상에 대처할 수 있는 최소한의 문서해독 수준 이상을 갖춘 사람은 21.9%, 전문적인 정보기술(IT) 등 첨단정보와 새로운 기술, 직업에 자유자재로 적응할 수 있는 고도의 문서해독 능력을 지닌 사람은 2.4%에 불과했다.
     
     고도의 문서해독 능력을 가진 인재의 비율은 노르웨이(29.4%), 덴마크(25.4%), 핀란드 캐나다 (이상 25.1%), 미국(19%)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수준이다.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인재들이 책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한국말의 70%가 漢字임에도 불구하고 漢字를 사용하지 않게 되자 모국어가 암호가 되어 버려 이해력이 크게 떨어진 결과다. 漢字가 들어간 책은 읽기가 어렵고 영어로 된 책이 오히려 읽기 편하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漢字를 모르면서 한글로 쓴 책을 읽고 있으니 읽기는 하나 漢字語의 뜻을 몰라서 개념을 파악 못하기 때문에 책을 읽어도 재미가 없다.
     
     인구 1억 3000만 명에 1% 미만의 문맹률을 가진 일본을 보면 漢字 사용이 문맹률을 높인다는 주장은 근거 없는 것이다. 일본은 初等學校 1학년부터 단계적으로 1945자를 모든 교과서에 섞어 교육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는 漢字 사용에 불편함이 없다.
     
     ‘漢字를 배우자 말자’, ‘괄호 안에 넣자’, ‘밖에 넣자’ 설왕설래(說往說來)하는 시간에 그냥 기본한자 1800자를 공부하는 것이 상책이다. 初等學校는 그만두고라도 중·고등학교 6년간 1년에 300자를 하루에 한 자씩만 공부하면 되지 않느냐는 말이 오히려 더 現實的이다.
     
     漢字를 우리 한글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인식(認識)을 하루빨리 바꾸어야 한다. 세종대왕(世宗大王)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가 漢字를 없애버리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줄기차게 한글-한자 혼용(混用) 운동을 벌이고 있는 ‘조갑제닷컴’이 진정한 진보(進步)다. 
     김필재 기자 (spooner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