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이 너무 아팠다. 가슴이 상처에 소금 뿌린듯 쓰라렸다.
    그래서 떠났다. 남해안 신의도의 천일염전에서 시작해 이곳저곳을 떠돌았다. 우리 땅과 강, 그리고 산을 만났다. 그러기를 100일.
    우연히 발길 닿은 경북 안동에서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을 찾았다.
    주저앉아 퇴계 선생의 종손과 토종매화를 화제로 얘기하던 중 ‘박비향’을 만났다.
    박비향(撲鼻香)! 코를 찌르는 향기를 말한다.
    당나라 고승 황벽 선사의 시 한 수를 듣게 된 것이다. 시는 이렇다.

    ‘뼈를 깎는 추위를 만나지 않았던들(不是一番寒徹骨/불시일번한철골)
    매화가 지극한 향기를 어찌 얻을 수 있으리오(爭得梅花撲鼻香/쟁득매화박비향)’.

    “문득 깨달음이 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럴 때 불교 선방에서는 ‘한 소식 했다’고 표현한다. 맞다. ‘한 소식’을 한 것이다.
    어처구니없이 장관 자리에서 물러나 몇 달, 얼마나 많은 회한과 미움이 그의 가슴에 자리했을까? 이제 훌훌 털고 다시 달릴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었다는 것, 이것은 분명 깨우침이고 ‘한 소식’이 분명하다.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밝은 표정이었다. “‘깨달음’을 얻어 평온하다”고 말했다.
    사실 원해서 가서 앉은 장관 자리도 아니었다. 대선을 40여일 정도 앞둔 2007년 11월 4일 안국포럼에 불려가 우리 농업의 문제점을 설명한 것이 이명박 대통령과의 첫 만남이었다.
    평소 소신대로 얘기했다.
    ‘낚시바늘 나눠주는 농업정책은 글러먹었다’고 비판하고 ‘낚시를 가르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고 설명했다. ‘농업이 사양산업이 아니라 농업이 엄청난 부가가치를 지닌 산업이라는 인식과 창조정신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장관 자신이 성공한 농업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설명은 힘이 있었다. 설득력이 있었다.
    브리핑에 공감한 이 대통령이 그에게 장관을 제의했을 때 정 전 장관은 극구 사양했다. ‘뒤에서 열심히 돕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고집도 만만치 않았고, 결국 장관 자리를 받아들였다.

  • ▲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 뉴데일리
    ▲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 ⓒ 뉴데일리

    정말 열심히 일했다. 2008년 3월 말 광물이던 소금을 식품으로 분류한 것도 그였다. 그 일은 천일염 세계화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이 내정자 신분으로 참석한 모임에서 돌출발언을 했다.
    “소금이 광물입니까, 식품입니까?”
    모두들 놀라서 쳐다봤다.
    “소금이 식품이 돼야만 전통 음식문화가 살아납니다.”
    그는 고추장이나 된장, 간장, 김치 등 한국 대표 식품을 살려내 한식 세계화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이 모든 음식의 기초인 천일염을 살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일염 시장이 연간 1000억원대. 이를 고급화해 10배만 비싸게 팔아도 몇 년 안에 1조원 시장이 된다는 논리였다. 그래서 골프장이 된 염전, 한때 1만 4000㏊에 달했지만 겨우 1000㏊만 남은 세계가 부러워하던 염전을 살려내고 농업도 살리자는 주장이었다.
    대통령이 이 설득을 받아들였다. 농림수산부는 농림수산식품부가 됐고 1톤에 500원 남짓하던 광물로서의 소금 원석은 식품으로 3만원이 되는 신분이 수직상승했다.   

    “관료 출신이 아니니까 기틀을 완전히 뒤집어 바꿀 수 있었습니다.”
    당시 내각에서 최연소 장관이던 정 전 장관은 신명나게 일했다.
    소며 돼지, 닭, 쌀, 김치의 원산지 표시도 우리 농-축산인을 위해 그가 만들어낸 큰 작품 중 하나이다.
    그러던 그에게 전혀 생각도 못한 시련이 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온 나라가 촛불로 들끓던 지난 2008년 6월 그는 쇠고기 협상의 책임자였다. 당시 그는 국민과 소통하려고 노력을 했다. 그러나 불신의 장벽을 넘지는 못했다.
    동네북이 됐다. 국회의원들은 “당신이 수입상이냐”고 조롱했다. “당장 가서 사표 쓰라”는 의원도 있었다. 게다가 MBC PD수첩을 그를 ‘매국노’로 만들었다.
    시위가 절정이던 6월 10일 광화문으로 달려갔다. 주무 장관으로서 진실을 알리겠다는 용기였다. 하지만 그의 얘기는 들어주지도 않고 물병이 날아왔다. 시위대는 그에게 ‘매국노’라고  야유했다. 끝내 시위대의 위력에 떠밀리고 물러서고 말았다.
    부인은 따가운 주위의 시선 때문에 교사직을 그만두려고 했고 어린 딸의 얼굴에 선명하게 눈물자국이 남아있었다.
    그해 8월 6일 그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장관직을 떠났다. 그리고 순례 100일 만에 새로운 길을 찾았다.

    “그동안 전국을 돌며 120회 강연을 했습니다.”
    채 1년도 안 되는 시간동안 120회라. 거의 매주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강연을 했다는 얘기다. 내용은 ‘농촌 살리기’이다. 창조하는 농업, 빚지지 않고 돈 버는 농업을 하자는 얘기다. 그 자신이 버려지는 고구마를 개량하고 손질하고 포장해 네 배 이상 가격을 올린 농민 출신이다. 구황작물인 고구마를 다이어트 식품으로 바꾼 마술사다. 그런 그에게 누군가 말했단다. “무수리를 장희빈으로 만들었다”라고.
    그 같은 창조정신과 노하우를 가는 곳 마다 전하고 설득했다. 
    지난 해 9월에는 이명박 대통령과의 만남부터 장관 취임, 행정개혁, 그리고 쇠고기협상의 내막과 퇴임에 이르기까지의 기록을 담은 ‘박비향’이란 책을 내기도 했다. 책에는 농업인으로서의 그의 비전과 희망의 향기도 담겨 있다.

    전국 순회강연을 마무리하고 맞는 새해.
    정 전 장관은 친환경 농산물과 발효식품에서 또 다른 블루오션 창출을 준비하고 있다.
    발효식품진흥원을 만들어 전통의 된장이며 간장의 참맛을 잇고 개발한다는 포부다. 그 발효식품으로 한식의 세계화도 이끌어낼 계획이다. 아울러 공직자 아닌 농민의 한 사람으로 돈 버는 농어업, 살 맛 나는 농어촌을 만들기 위한 농업의 밀물시대를 열겠다는 생각이다.

    분노와 아픔 다 내려놓았다고 했다. 화합과 소통의 전도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PD수첩에 대한 고소는요?”
    이달 20일에 PD수첩의 명예훼손에 대한 재판부의 판결이 나온다.
    “올바른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 전 장관은 “PD수첩 제작진을 위해서라도, 방송의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서라도 고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문제가 있는데도 자율정화가 안 되는 방송국 역시 문제라고 했다. 어처구니 없이 ‘매국노’로 매도당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명예회복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올해도 농민들에게 희망의 향기를 전해주고 싶다고 했다. 부정과 불신, 패배에 찌든 ‘썰물의 시대’를 넘어 긍정과 창조, 신뢰와 희망의 ‘밀물의 시대’를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다.
    혹 관직에 미련이 있지는 않을까? 아니라고 했다. 자신은 농사꾼이라며 웃었다.
    글쎄,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데 세상이 이 양반 그냥 놔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