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새끼처럼 말새끼처럼 만주벌판을 달리며 독립군 토벌한 박정희…” 이게 소위 “친일 인명사진‘을 만든 출판기념회 현장의 구호였다. 아항…, 알겠구먼. 친일 인명사진 만든 작자들의 목표는 바로 그거였군. 대한민국 건국 노선, 대한민국 산업화 노선, 대한민국 정통성의 맥(脈)을 통째로 쓰레기통에 쳐박자는 것-바로 그거였다.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인가? 공산주의, 좌파 민족주의, 오리엔탈 데스포티슴(oriental despotism : 동방적 폭정)을 거부하고 세계 해양세력의 근대화, 산업화, 지구화, 민주주의, 자유주의, 개인의 중요성, 민주헌정(憲政)주의에 합류한 나라였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건국노선을 선택한 이승만 김성수 신익희 조병옥 장면은 일제의 선진적, 근대적 국가 경영의 노하우를 어깨 넘어로 배운 기능인들을 신생  대한민국의 기술관료(technocrat)로 고용 했다. 이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일제 때 동경대학, 경성대학에서 공부한 지식 엘리트를 빼면, 일제 때 경성전기, 발전소, 사법부, 행정부, 방직공장, 수리조합, 은행, 경찰, 세무서, 세관, 학교, 문화예술 전문가들...을 몽땅 빼면 신생 대한민국을 대체 누가 어떻게 경영할 수 있었겠는가?

    경술국치(國恥) 이후 조선은 망하고 없었다. 나라 자체가 없어졌다. 조선왕조의 황제라는 작자도, 그 잘난 조선선비라는 작자들도 없었다. 이 황무지에서 조선 엘리트와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했던가? 엘리트는 일본제국의 근대적인 교육 과정에 들어가 세계의 문물을 배우면서, 동시에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비애를 느꼈을 것이다. 반면에 대중은 일제의 근대적인 제도를 통해 수리조합원으로, 무엇으로, 먹고 살며 신분상승을 꾀했을 것이다.

    나라의 보호막을 상실한 엘리트와 대중들이 과거의 조선왕조보다 발전된 일본 국가의 지배 노하우에 대해 체념적으로 순응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조선은 망했다. 일본은 막강하다‘는 암담하고도 절망적인 체념. 식민지 엘리트와 백성으로서의 극심한 자존심의 훼손과 콤플렉스를 느끼면서.

    학교는 가고 싶은데 모든 학교는 일본적 제도에 묶인 학교들 뿐이다. 그럴 때, 우리는 학교에 가야 하는가, 가지 말아야 하는가? 잘난 사람들은 “가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겠지만, 잘나지 못한 우리 같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가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이게 우리가 살아온 기구한 역사다. 이 역사를 살아보지도 않은 작자들이 이제 와서 ‘친일’ 어쩌고 한다. 참 하기 쉬운 이야기다. 그런데 이 하기 쉬운 이야기가 왜 지금 한창인가? 한 마디로 그들의 계획적인 프로파간다 때문이다. 대한민국 건국과정이 ‘반민족적’이었다는 프로파간다.

    대한민국은 이에 대해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 일제 때의 도구적 기능인들을 '필요악(必要惡)'으로서 불가피하게 국가 운영의 테크노크라트의 일부로 고용한 대한민국의 고육책이, 그와 반대로 나갔다고 주장하는 김일성, 김정일의 기아(饑餓) 왕국을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고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