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아이들은 왜 형제가 이름이 똑 같지요?"

    미국학교에 있을 때 한국서 온 아이들 이름때문에 미국선생들이 자주 이런 질문을 하곤 했습니다. 큰 아이는 '범서' 동생은 '범식'이니 둘 다 이름이 같은 '범'이라서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그때마다 나는 설명해주느라 진땀을 흘렸답니다. 한국말에는 '범'과 '서'가 독립된 글자라서 그렇게 쓰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름은 '범서'라고 불러야 맞으니 그렇게 하라고 말해주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지만 여전히 혼동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 부모들이 입학서류에 그렇게 써 놓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서양사람들 이름은 First name(첫 이름) Middle name(중간이름) Last name(끝이름: Family name=성)으로 구분하여 짓고 부른다는 것은 다들 아시는 일입니다. 여기에 맞춰 한국 이름을 써 넣을때 사람마다 달라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원래 한국 이름은 중간이름(Middle)이 없는 걸로 압니다. 성과 하나의 이름 뿐입니다. 굳이 따진다면 돌림자(항렬 行列)인데 이것은 이름에서 분리해서 부르는 독립된 이름이 아니지 않습니까. 혈족관계에서 같은 형제뻘은 같은 항렬자를 이름에 넣어 대수(代數)관계를 표시하는 문자일 뿐입니다.
    더구나 요즘에는 순우리말로 짓는 이름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연예인의 예명이 아니라도 '새별' '초롱' '슬기'등 예쁜 이름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런 순 우리말 이름조차 '새'를 첫이름으로, '별'을 중간이름으로 떼어 쓰지는 않겠지요.



  • 빈칸 메우려고? 없는 중간이름 만들면 안돼

    그런데 미국 서류에 있는 형식에 맞추어 굳이 중간이름난에 한국 이름 중 첫글자를 써 넣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또 첫이름난에 이름이 아닌 '성'을 써 넣는 사람도 많습니다. 이러면 미국사람들이 혼란스러운 것은 물론이고 따라서 자기 자신도 곤경에 처하는 경우도 수없이 생기게 됩니다.

    미국 사람들은 누구나 첫 이름과 중간이름이 있고 성이 있습니다. John William Smith가 이름인 경우, John도 독립된 이름이고 William도 독립된 이름이고 Smith는 성입니다. 친밀한 사이라면 'John'만 부르고 공식적으로는 Mr. Smith라고 부르게 됩니다. 우리 한국 이름이 '김범식'일 경우, 미국서류 첫이름칸에 'Bum'을 쓰고 중간이름 칸에도 대문자로 'Shik'을 써 넣으면 미국사람들은 '범'이 독립된 첫이름인 줄로 여길 수 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성'을 앞에 쓴다고 알고 있는 미국인들은 'Bum'을 성으로 착각하고 이름은 'Shikkim'아니냐고 묻기도 합니다.

    'Bum'은 건달, 'Bong'은 방구쟁이

    이런 이유 탓으로 미국 학교의 한국 아이들은 놀림감이 되기도 합니다. 첫글자만 불러서 발음이나 뜻이 이상하지 않은 경우는 다행히지만, 영어의 뜻이 이상한 글자일 때는 미국아이들에게 두고두고 놀림감이 될뿐만 아니라 한국아이들 사이에서도 그 이름으로 놀려대곤 합니다. 예컨대, 'Bum'은 영어로 '거지'나 '건달' 뜻이기 때문에 미국아이들은 범서 범식 형제를 보고 '큰 거지' '작은 거지'라고 놀려댑니다. '동기'라는 이름을 가진 아이는 미국선생들이 '동'이라고 불러서 한국아이들이 '똥똥'이라고 놀려대고, '봉희'는 '봉'만 부르니 '퐁퐁 방구쟁이'가 되어 버리고 맙니다.

    한번은 한국아이에게 이름을 물어보니 '병'이라고 대답을 하기에, 그것이 너의 본이름이냐고 다시 물었더니 "한국이름은 '병준'이고 미국이름이 '병'입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병준'이라면 한국이름이든 미국이름이든 '병준'이지 왜 '병'이냐고 했더니 그 이유는 자기도 모르겠다며 미국선생님이 늘 '병'이라고 불러서 미국이름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엉뚱한 개명...부모 실수로 놀림감

    물론 이것은 아이들이나 미국 교사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학교에 입학시킬 때 부모가 이름을 그렇게 적어놨기 때문에 그만 자기 아이의 이름을 스스로 그렇게 개명해버린 결과를 빚은 것입니다. 미국식 이름 형식을 잘 몰라서 그렇게 썼다면 충분히 이해가 가지만, 알고 난 뒤에도 무관심하다든지, 또는 미국사람들이 '범'이니 '동'이니 욕설 같은 이름을 그냥 불러도 "미국사람들이니까"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태도는 정말 이해하기 힘듭니다. 만약 같은 한국사람들이 그렇게 첫자만 부른다면 금방 화를 낼 것입니다.

    한국에서 온지 얼마 안되는 아이들은 언어도 안통하고 모든 것이 낯설고 어색하여 답답하기만 한데, 이름조차 괴상하게 불려지고 또 때로는 이유조차 모르면서 놀림을 당하니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언젠가는 아예 나한테 달려와서 "미국 이름을 새로 지어달라"고 울먹이며 호소하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하이픈 넣든가...한단어로 묶든가...

    어떤 사람들은 어차피 미국사람들이 우리 이름을 올바르게 발음하지도 못하는데 아무렇게나 불려진들 어쩌겠느냐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한국사람이면 한국이름을 외국사람들이 정확히 알고 부르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민 가서 사업하는 분들은 물론이고, 막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놀림감이 되어 미국 아이들과의 공동생활에서 왕따 당하게 되고, 장래 미국시민으로 성장하는 과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걱정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 이름의 미국식 표기법을 표준화 했으면 좋겠습니다. '병준'이라면 'Byung-joon'으로 하이픈을 가운데 넣어 한 단어로 이어주든가, 아예 'Byungjoon'으로 붙여서 완전한 독립이름으로 쓰는게 좋겠습니다. 최근 세계 골프계를 휩쓰는 한국낭자들 중에 이렇게 이름을 붙여쓰는 선수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역시 신세대는 다르다고 느껴 집니다.

    '중간이름' 칸은 꼭 비워두세요!
     
    이민이나 여행을 위해 여권 만들때부터 통일된 이름을 잘 만들어 사용해야 합니다. 그리고 미국서류에 처음부터 이름을 잘 써넣어야 두고두고 후회하지 않습니다. 첫이름(First name)칸에 반드시 이름 두글자를 다 써 넣어야 하고, 끝에 성(Family name=Last name)만 쓰면 됩니다. 중간이름은 없으므로 중간이름(Middle name)칸은 아무것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중간칸이 비어있다고 잘못될 일은 없으니까 안심하고 비워 두십시오.

    자녀들을 글로벌 무대에서 맹활약하는 '국제인'으로 키우려면 먼저 이름부터 잃어버리지 않도록 지켜주는 엄
    마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김유미 작가의 홈페이지 www.kimyume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