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6층 회의실. 최고·중진 연석회의 도중 홍준표 원내대표가 웃었다. 기뻐서 웃는 게 아니라 머쓱한 웃음이었다.

    송광호 최고위원이 발언 중이었다. 송 최고위원은 여야가 처리하기로 합의한 경제관련 법안을 시간이 부족해 통과시키 못한 어처구니 없는 전날 본회의 상황을 언급했다. 시급한 경제관련 법안이 11개나 발목을 잡혔는데 이는 민주당의 지연전술 탓이 크지만 172석이나 되는 한나라당이 회의 의결정족수조차 채우지 못한 영향도 적지않다.

    원내사령탑인 홍 원내대표의 책임론도 나올 수 있는 상황이고 실제 친이명박계 진영에선 불만이 크다. 그런데 송 최고위원은 대뜸 "어제 본회의장에서 그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는 것은 지도부의 치밀한 계획이 있었고 추진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도부를 치켜세웠다. 홍 원내대표는 머쓱한 듯 웃었다. 곧바로 송 최고위원쪽으로 손을 내밀며 발언을 만류했다.

    하지만 송 최고위원은 홍 원내대표의 만류를 보지 못했고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곧바로 "야당에서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의도적 의사진행을 방해했다든가 하는 문제도 있었지만 통과되지 않은 몇개의 법을 보면 우리 거대 여당이 좀 자성도 해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전략미숙으로 법안처리를 못한 지도부에 대한 비판인가 싶었으나 그는 오히려 "어제 원내대표께 의원이 몇명 오셨나 물어보니 '104명 오셨다'고 했다. 우리가 172명이다. 문자를 한 번을 넣든 두 번을 넣든 원내대표가 지시를 하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줘야 한다"며 소속 의원들에게 원내대표의 지시에 적극 협조할 것을 요구했다.

    홍 원내대표는 더 머쓱해졌다. 다시 손을 뻗어 발언을 만류했지만 이번에도 그는 보지 못했다. 송 최고위원은 "공개적으로 하면 수치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수치도 드러내자"고도 했다. 이 때부터 홍 원내대표는 발언 만류를 포기했고 등을 의자에 기댄 채 멋쩍은 듯 웃기만 했다. 송 최고위원은 "냉정히 생각했을 때 야당에 이길 수 있지 않겠느냐"고 반문한 뒤 "상대만 질타하는 것도 문제가 있고 앞으로 의원들은 정신 바짝 차려 금년 1년을 임해줬으면 한다"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법안 미처리에 대한 지도부 책임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그의 발언은 홍 원내대표 지원사격이었으나 홍 원내대표에게는 그의 발언이 공개비판보다 더 따갑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