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오후 5시경 세종로. 공공운수노동자 총궐기대회 무대위에 보기에도 앳된 여학생이 마이크를 잡고 올라섰다. 중학교 3학년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학생은 "이명박 대통령이 시민의 의견을 무시하고 미국과 FTA를 마음대로 체결하고 대운하도 마음대로 만드는 모습을 보고 나왔다"며 연설했다. 바닥에 앉아있던 '아버지뻘'의 노조원들은 사실과는 다른 주장을 펴는 아이를 세워두고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보냈다. 때로 말이 끊기면 함성으로 격려를 보태며. 이 학생은 "학교에서 저항하라고 배웠다"고 했다.

    이날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뉴라이트전국연합과 선진화국민회의, 국민행동본부 등 10여개 보수단체들을 주축으로 열린 '법질서 수호를 위한 국민대회'에서는 촛불시위를 타이르는 노인에게 한 여학생은 "닥쳐라. 늙으려면 곱게 늙어라"고 험한 욕설을 퍼부었다. 또 '이명박 OUT '이라는 피켓을 든 한 중년 남성은 보수단체 집회를 보며 "삽질한다. 매국노들…이 새끼들, 다 총으로 쏴죽여버려야 한다"며 위협적인 말을 내뱉었다. 주위에는 어린 학생들이 보고 있었다.

    시위대의 과격 행동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세워진 컨테이너 박스 앞. 한 포털사이트 깃발 아래 여중생들이 모여 앉아있었다. 똘망똘망하게 보이는 아이들은 말그대로 시위를 놀이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맨 앞줄에 위치했지만 두려움이나 긴장 하나 없이 웃고 떠들며 서로 얘기를 주고 받았다. 담배를 꼬나문 청년들은 재미삼아 농담을 던졌고, 심지어 50대 중년의 남성도 한마디씩 툭툭 던진다. 미국 쇠고기 수입 재개와는 상관없는 "저런 남자는 조심해야돼"와 같은 류의 실없는 소리를 한참이나 하고 지나갔다.

    지난달 29일 시위현장에서 촬영된 것으로 보이는 '초등학생의 욕설' 동영상은 큰 충격이다. '과격불법촛불시위반대 시민연대' 카페에 올라있는 동영상에서는 시위대 진입을 가로막은 경찰을 향해 어린이 두명이 "개XX들아. XX" 등 아무 거리낌없이 큰 소리로 욕을 해댄다. 경찰들의 반응이 없자 어린이들은 "어이, 전경. 나 체포 좀 해주라. 에이 XX, XX놈들아"라며 도발까지 했다. 주위 어른들은 "용감하다"며 아이들을 치켜세운뒤 경찰에게는 "좋냐, 꼬맹이들한테 욕 먹는게"라며 조롱했다.

    한달여 진행된 촛불시위 이래 최대 인파가 몰렸으며 시위를 반대하는 맞불시위까지 벌어져 10일 광화문과 세종로 일대에는 긴장감이 돌았지만 큰 충돌없이 마무리되면서 다행이라는 평가를 낳았다. 그러나 시위현장에 나온 무방비 상태의 청소년들을 '보호의 대상'으로 보는 시위대는 적은 듯 했다. 안타까움과 걱정이 교차되는 순간, 바닥에 뒹구는 한 보수단체의 유인물이 눈에 들어왔다. "청소년 성추행보다 청소년 혼(魂)추행이 더 심각하다"는 '나쁜 어른'들을 향한 경고문이 적혀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