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7일자 오피니언면 '조선데스크'에 이 신문 윤영신 경제부 차장대우가 쓴 칼럼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꼭 5년 전 노무현 당선자 시절, 새 정부 첫 조각을 앞두고 줄대기가 극에 달했다. 하이라이트는 한 권력기관장 자리를 놓고 세게 맞붙은 A씨와 B씨의 경우였다. A씨는 노 당선자 핵심 측근의 학맥을 파고들었고, B씨는 노 당선자와의 지연과 노 당선자 친인척과의 친분을 붙잡았다. 대결 끝에 A씨가 노 당선자에게 단수 추천됐다. A씨는 게임이 끝났다고 판단하고 그날 저녁 지인들과 축배를 마셨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임명된 사람은 A씨도, B씨도 아닌 엉뚱한 C씨였다. 거의 옷 벗기 직전까지 갔던 관료였던 C씨는 새 정부에 들어가 노무현 코드의 첨병으로 변신해 영전을 거듭했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10년간 우리나라 관료사회는 이처럼 운 좋은 사람에겐 못 당한다는 '운칠기삼론(運七技三論)'이 지배했다. 새로 출범하는 이명박 정부에서 실력보다 운 좋은 사람들이 입신양명하는 사태를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연줄과 코드로 내 편, 네 편 갈라 내 사람만 뽑아 쓰지 않도록 하는 것은 기본이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세히 보면 정권교체기에 써도 좋은 공무원과 그렇지 않은 공무원을 감별하는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공무원으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대통령의 돌격대가 되겠다고 접근하는 관료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다. 조직 내에서 '깜'이 안 되는 인물로 통하다가 줄을 잘 타 하루아침에 감투를 쓴 관료들 가운데 이런 부류가 꽤 있었다. 이들은 능력과 리더십이 안 되다 보니 대개 엉뚱한 짓을 해서 대통령에게 뭔가를 보여주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사고를 쳐도 크게 친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비판 신문들에 서슬 퍼런 세무조사의 칼을 휘두르고 과징금 폭탄을 던진 국세청장과 공정거래위원장들과, 노무현 정부 때 갑자기 분배주의 전도사로 앞장선 장관들이 그렇다.

    김대중 정부 때 경기 부양을 한답시고 카드 규제를 풀어서 서민들을 빚쟁이로 만들고 나라 경제에 재앙을 안겨준 관료, 권력자의 재벌 길들이기를 돕기 위해 폐지됐던 출자총액제한제도를 부활시켜 나라의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 관료도 공직자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어버린 케이스다.

    이런 사람들이 펼친 정책은 엄청난 부작용을 불러 대통령에게도 국정 실패라는 타격을 주고 말았다. 국가정보 최고 책임자인 김만복 국정원장의 내부문건 유출이라는 전례없는 사건도 자질 모자라는 사람이 과분한 일을 맡아 엉뚱한 일을 계속하다 빚은 비극이다.

    정권이 바뀌면 일단 새 행정 수반인 대통령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 게 공무원의 숙명이다. 하지만 인사권자의 부당한 욕심을 채워주기 위해 한 발 더 나아가려는 관료와, 인사권자의 지시로 잘못 탄생한 정책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려고 애쓰는 관료는 구분돼야 한다. 어떤 사람이 '돌격대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는지를 판별하는 것은 의외로 쉽다. 인사권자는 측근들로부터 올라오는 인사카드와 인물평에 의존하지 말고, 인사 대상자의 능력과 사람됨이 어떤지, 그가 속한 조직 내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한번쯤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노무현 정부에서 요직을 맡았기 때문에 안 된다거나 출신지가 비호감이어서 안 된다거나 정적(政敵)과 가까워서 안 된다는 등의 모든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히려 '네 편' 중에서 유능한 인재를 기용한다면 제갈공명에게 투항해 촉한의 장수가 되어 위나라 명장 사마중달을 물리친 강유 같은 인물을 얻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