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16일자 사설 '역시 그 대통령에 그 국정원장'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김만복 국가정보원장이 대선 하루 전인 작년 12월 18일 평양에서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유출한 사실을 고백하고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특정 신문사 간부와 전화로 접촉한 뒤 국정원 간부를 시켜 대화록을 전달했다고 실토했다. 국기(國基)를 흔든 충격적인 사건이다. 이런 사람에게 국가의 모든 기밀과 정보를 맡겼다니 참으로 아찔하다.

    김 씨의 사퇴가 끝일 수 없다. 문제의 문건을 유출한 이유와 과정을 낱낱이 규명해야 한다. 해명부터 앞뒤가 안 맞는다. 그는 자신의 방북이 보도됨으로써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이를 해명하는 자료를 신문사에 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해명을 위해서였다면 모든 언론에 브리핑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따라서 그의 행동은 특정 신문과 거래를 해서라도 위기를 모면해 보려 했던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국가조직으로서의 국정원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살고 보겠다는 행태였다.

    국정원직원법은 ‘재직 중은 물론 퇴직한 후에도 직무상 얻은 비밀을 누설하여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부하 직원들로 하여금 법을 지키게 하고, 위반한 자는 적발해 처벌해야 할 원장이 스스로 불법을 자행했으니 국정원의 위상과 기강에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가 났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국정원 직원들을 21세기 첨단 정보전쟁의 일선에 내보낼 수 있겠는가. 동맹인 미국 정보기관부터 이런 정보기관을 믿고 협력하기 어려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대선 전날 김 씨의 평양행은 대통령의 재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방북 사실이 드러난 이상 국회 정보위원회에라도 경위를 알려줬어야 한다. 노 대통령은 작년 아프가니스탄 피랍사건 때 김 씨가 납치범과의 협상에 개입하면서 신분을 노출해 물의를 빚었지만 버젓이 감쌌다. 함량 미달로 국정원 내부에서도 반대가 많았던 김 씨를 국정원장에 앉힌 책임은 더 크다.

    방북 보고서를 유출한 김 원장을 엄정하게 사법처리하고 국정원 대수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