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내 친박(親박근혜) 진영이 친이(親이명박) 진영과 전면전을 치를 태세다. 친이의 좌장격인 이재오 최고위원이 “좌시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발언에 대해 공개 사과했지만 친박측은 5일 이 최고위원에 이어 이방호 사무총장의 사퇴까지 요구하며 물러설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친반 진영에서는 “이미 기싸움은 시작된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오전부터 예고됐었다. 이 최고위원이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에서 “오만하게 비춰진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지만 박근혜 전 대표는 즉각 “사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거부한 것이다. 박 전 대표의 강경한 자세에 친박 의원들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김무성 최고위원을 비롯해 최경환 유승민 이혜훈 김재원 등 친박 의원 32명은 이날 여의도 한 식당에서 오찬을 함께 하고 “이 후보는 화합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며 ‘이재오·이방호 거취’ 문제를 제1의 과제로 제시했다. 이번 오찬은 김기춘 의원의 생일 축하 자리를 겸해서 열렸다. 


    오찬에 참석한 한 의원은 이날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의원들 모두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격한 발언들도 많이 나왔다”고 분위기를 전한 뒤 “이 최고위원 사퇴는 얘기할 필요도 없이 당연한 것이며 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며 “이 사무총장에 대해서도 사퇴를 요구하는 것으로 결론 지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사무총장은 출마할까 말까 기로에 서 있는 이회창 전 총재를 ‘최병렬 수첩’ 얘기까지 꺼내며 등 떠밀어서 나오게 만들었다”며 “사무처 인사에서 보여준 독선과 전횡 등 일을 그르치는 장본인이라는 이야기가 많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화합의 진정성을 높이려면 이 최고위원의 사퇴가 출발점이 돼야 한다. 이 후보는 화합의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여라”며 “당권 대권 분리라는 당헌당규도 지키는 모습을 보이고, 당을 다 쥐고 흔들지 않는다는 것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최고위원이 “집권 이후 신당을 추진하겠다”고 했다는 한 언론의 보도를 거론하며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고 의심어린 눈빛을 보냈다.

    역설적이게도 친박 진영을 달래기 위한 이 최고위원의 공개 사과가 오히려 강경한 자세로 돌아서게 만든 모양새다. 한 친박 의원은 의총에서 “당이 며칠간 어수선했다. 이 최고위원이 입바른 소리 한번 하다가 혼이 나고 있다”는 안상수 원내대표의 발언을 지적하며 “입바른 소리 했다는데 이게 무슨 망발이냐”고 발끈했다. 이 최고위원의 문제 발언을 ‘입바른 소리’로 표현한 안 원내대표의 말에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친이 진영의 시각 묻어난다는 것이다. 그는 “(좌시하지 않겠다는 발언에 대해) 잘못했다고 하지 않고 ‘비춰진 것에 사과한다’고 하면서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생각을 스스로 입증했다”고 비판했다.

    최경환 의원은 “‘사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박 전 대표의 말에 모두 공감했다. 말로 사과한다고 될 일이 아니지 않느냐”며 “생각은 그게 아닌데 ‘창(이회창) 출마설’에 김경준(BBK 사건 핵심인물)까지 온다고 하니까 위기의식을 느껴서 체면치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친박 의원은 “최근 2,3주 동안 이 후보 측 책임 있는 분들이 돌아다니면서 ‘할 만큼 했는데 박 전 대표가 마음을 안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끼리 갈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다”며 “경선 이후 일련의 과정에서 쌓여온 것들이 누적돼 ‘오만의 극치’로 표현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사무총장이 취하는 일련의 조치에는 이 최고위원이 배후에 있다. 그래서 이 사무총장까지 가야(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친박 진영의 강경한 태도에 박 전 대표와의 화합의 장으로 만들려 했던 11, 12일 대구·경북지역 국민성공대장정 필승결의대회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대구경북(TK)은 한나라당의 본산으로 이 후보보다 박 전 대표에 대한 지지율이 더 높았던 곳이기도 하다. 대구 지역의 한 친박 의원은 “(필승대회에) 박 전 대표가 내려오는지 안내려오는지를 봐야 한다”며 “계속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참석 여부를 고려해 봐야겠다. 박 전 대표까지 나서서 이 최고위원의 정리를 요구했는데 잘 안되면 나도 (참석할 지) 봐야 겠다”고 말했다.

    이 후보 측을 향한 친박 진영의 전면전 선포는 ‘이회창 대선 출마 임박설’과 함께 맞물려 묘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친박 측은 “이 전 총재는 출마선언도 아직 하지 않은 상태다. 출마 하는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며 “이 전 총재 측과 연고가 있는 의원들도 오해 받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상황”이라고 거리를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