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8일 사설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경찰이 6일 대통합민주신당 선거인단 신청 과정에서 노무현 대통령 이름이 도용된 사건과 관련해 정동영 후보측 선대위 본부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려다 정 후보측의 저지로 실패했다.

    경찰은 명의 도용을 저지른 대학생 세 명이 정 후보 선대위 사무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경찰은 “대학생들에게 명의 도용을 지시해 구속된 서울시 구의원이 정 후보 캠프 사무실에서 명의 도용 대상자 명단을 갖고 나왔다는 관련자 진술도 확보했다”고 했다.

    정 후보측은 “압수 수색은 헌법상 정당 활동의 자유를 침해하고, 선거에서 국민의 자유로운 선택을 방해하는 행위”라고 하고 있다. 그러나 헌법이 보호하려는 정당 활동은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것이다. 명의 도용은 업무방해, 주민등록법 위반에 해당하는 범죄다.

    정 후보측은 “명의 도용은 다른 후보들도 한 일”이라고 하고 있다. 그것은 사실일 것이고, 정 후보는 억울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경찰의 정당한 압수 수색에 응하면서 다른 후보들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순서다.

    정 후보측과 경찰이 대치하고 있던 그 날 민주당 조순형 후보는 후보직을 사퇴했다. 조 후보는 언론 인터뷰에서 “명의 도용, 조직 동원, 금권이 판치는 경선에선 나의 원칙과 정도를 지킬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조직은 돈으로 형성되고 유지된다. 그게 우리 정치, 선거 풍토다”고 말했다. 가진 것은 선친의 연금과 아들 전세금뿐인 그에겐 자원봉사자 20여명밖에 없었다. 조 후보는 “지역 위원장들에게 공천 문제를 언급하라는데 도저히 못하겠더라. 대선 후보에겐 그럴 권한이 없다”고도 했다. 조 후보가 이렇게 원칙을 고집한 결과는 여론지지도에선 자신이 상대를 배 가까이 앞섰으면서도 그 후보에게 당내 경선에선 배 이상의 득표율 차이로 뒤진 것으로 나타났다.

    조 후보는 “결국 내 방식이 (우리 정치판의) 현실에 안 맞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조 후보는 상대 후보의 돈과 조직이 누구한테서 나온 것이냐고도 묻지 않았다. 국민조차 궁금한데도 말이다. 조 후보의 말과 행동은 뻘밭에서 뒹구는 여 신당의 세 사람에게 “당신들의 방식과 원칙은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