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27일자 오피니언면에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쓴 '진보 내전 관전법'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진보 내전이 ‘가열차게’ 전개되고 있다. 대통령까지 가세한 이 싸움의 최종승자는 누가 될지, 그 결과 진보진영은 어떻게 재편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번 논쟁의 최대 특징은 빅 마우스(big mouth)들이 뿜어내는 백가쟁명에 있다. '변혁적'과 같이 도저히 중도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수식어를 갖다 붙인 '수상한 중도'가 있는가 하면,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급진적 민중주의에서 대안을 찾고자 하는 '퇴행성 진보'도 있다. 사회투자국가, 사회연대국가와 같이 정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 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해결해 보고자 하는 새로운 담론들도 있다. 물론 왕년의 김일성주의 또는 마르크스주의를 고집하는 '일편단심 NL 또는 PD'도 여전히 일각을 점하고 있다.

    이처럼 2007년 한국진보는 실로 그 스펙트럼이 다양해 대통령식의 '유연한 진보 대 교조적 진보'라는 구도로는 그 중층적 구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그렇다고 대분류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작금의 한국진보는 다음의 3색으로 분류된다.

    첫째, 반수구냉전 노선이다. 정동영의 평화개혁세력연합, 김근태의 양심세력대연합, DJ의 범여권통합론 모두 이에 해당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나라당에 차기 정권을 넘겨주어서는 안 된다며 '전쟁 대 평화' 구도 창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그 지적재산권이 가장 먼저 반보수대연합을 부르짖어온 김정일에게 있다는 점이다.

    둘째, 반신자유주의 노선이다. 진보적일 것이라고 믿었던 김대중, 노무현 두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을 무분별하게 수용함으로써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실현할 진보정치세력의 영향력 확대가 한나라당 집권 저지보다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최근의 '백낙청 대 최장집' 논쟁은 바로 이 둘 간의 충돌이다. 국정의 우선순위를 민족공조, 대미 자주화, 과거사 정리 등 민족문제에 둘 것인지(백낙청), 아니면 양극화 해소와 복지확대라는 사회경제적 이슈에 둘 것인지(최장집)가 초점이다. 이는 비록 '우리 민족끼리'와 '민주적으로 조율된 시장경제'로 그 지향점이 순화되기는 했으나, 민족모순과 계급모순 중 어느 쪽을 중시할 것인가 하는 점에서 '21세기판 NL 대 PD' 논쟁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은 반올드레프트 노선이다. 보수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에 앞서 진보의 환골탈태가 급선무라는 인식이다. 경제성장과 세계화에 대한 부정을 넘어 적극적 대안을 제시하고 국익중심의 실용외교를 수용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기존 진보의 고질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이처럼 현재 3색 진보는 어색한 동거를 하고 있다. 지난 10년간 권력의 단맛을 봐서 그런지 권위주의 시절의 '노선을 초월한 끈끈한 유대'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래서 '끝내는 큰 길에서 하나가 되는' 감동의 드라마보다는 각자 제 살 길을 찾아 떠나는 냉정한 분화의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진보의 위기가 대대적으로 거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0년대 초에도 사회주의권 몰락이라는 외적 충격으로 진보는 존폐위기의 몸살을 앓았다. 그러나 압축 산업화의 적폐를 청소하기 위한 민주화가 거스를 수 없는 시대흐름으로 정착되면서, 한국의 낡은 좌파는 연명을 넘어 세력 확장과 권력획득에 성공하는 '역사적 행운'(?)을 누렸다.

    그런데 현재의 위기는 내부로부터 온 것이다. '시끄럽고 무능한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염증은 극에 달했다. 앞의 위기와는 차원이 다른 자업자득의 결과인 만큼 뼈를 깎는 혁신을 도모해야 하나, 당사자들의 인식은 안이하다. 역사상 집권기간에 내부혁신에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는 점을 감안할 때, 뉴라이트와 경쟁할 뉴레프트의 본격적인 등장은 아무래도 내년 총선 이후를 기약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