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7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정당고(政黨考)'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조선의 정치를 문란케 한 요인이라면 붕당(朋黨)체제와 이에서 비롯된 당쟁(黨爭)이 첫손 꼽힐 것이다. 선조 8년(1575) 이조의 전랑(銓郞) 임명을 둘러싸고 벌어진 기성관료 측 심의겸과 신진사림 측 김효원의 반목 대립이 동서분당을 낳았다. 이 붕당체제는 이후 안동김씨 세도정치가 시작되었을 때(1804년), 혹은 고종이 즉위(1863)하면서 대원군이 집정했을 때까지 이어졌다. 크게는 ‘4색(色)당파’라고 하지만 근 300년간 명멸한 당파 이름을 다 들먹인다면 25개 정도에 이른다.

    정치이상 신조 정책 등이 서로 달라 나뉜 정파들이었다면야 ‘한국형 정당 및 정당정치’의 효시이자 전통이었다고 하겠지만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조 전랑은 인사권을 쥔 직책이었다. 그 때문에 이 자리를 두고 경쟁이 치열했고 그러다가 파벌이 형성된 것이다. 거기에 기성관료 대 신진관료의 대립 구도가 생겼고 지방색 문벌 학맥이 섞여들어 형성된 사적(私的) 이익집단이었다고 하겠다.

    그탓이었겠지만 분당(分黨)은 하나같이 집권 당파에서 비롯됐다. 힘이 없을 때는 싸울 일도 없지만 권력을 장악하고 그것이 특권적 이익을 만들어내면 몫 다툼 끝에 갈라서는 것이다. 반면 당에 대한 성원들의 충성도는 아주 높아서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25개나 되는 당파의 이름이 생겨났지만 뭉뚱그려 ‘4색’으로 정리될 정도로 계통이 뚜렷했다.

    요즘의 정당은 어떨까? 1962년 12월31일 정당법이 제정된 이후 지금까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록부에 오른 정당은 모두 115개다. 존속하고 있는 정당은 12개. 정당 평균 존속 기간은 3년1개월 정도다. 어제 스물세명이 무더기 탈당함으로써 원내 제2당으로 물러앉은 열린우리당의 경우 오늘로 3년2개월21일을 맞았으니 평균수명은 넘긴 셈이다. 탈당파나 잔류파나 ‘열린우리당’이라는 이름과 이미지로는 정권재창출은커녕 당의 존속조차 기약하기 어려운 만큼 신당 창당으로 일대전기를 마련해보자는 셈속일 터.

    후일의 재회를 위해 잠시 헤어져 있자며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것이겠지만 ‘통합신당’이라는 것이 버젓이 생겨날 수 있을지를 누가 알랴. 과거에는 집권자가 신당 창당을 주도하거나 아닌 척하면서도 그 중심에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극구 반대다. 아직 차기 주자가 결정되지 않은 만큼 확고하고 강력한 창당 주체가 부상해 있을 리도 없다. 이래저래 유랑정객들만 양산할 분위기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옛날 사당(私黨) 붕당적에도 의리 하나는 분명했다. 아마도 성리학의 의리론 덕분이었겠지만 당을 바꿀 생각을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지금은? 봐온 그대로다. 일부의 경우일 뿐이라고 해두자. 어쨌든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의리라는 것은 새털보다도 가벼운 덕목이고 가치가 된 지 오래다. 의리를 들어 질책하는 목소리도 아예 잦아들어버렸다.

    탄핵 바람에 한껏 부풀어 올랐던 헛배가 꺼지는 소리를 듣는다. 때를 잘 만나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던 사람들이 삭풍 속에서 또 살길을 찾아 우왕좌왕하는 것 같아 보기에 안쓰럽다. 아무리 신념이 없는 사람들의 정당이기로 창당 3년여 만에 당 의장이 열한 번째(예정된 정세균 의장까지)라니! 이 기회에 훈수 하나 들자. 다시 정당을 만들겠거든 제발 이번에만은 뜻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시라. 풍향 따라, 세력 따라 모여들었다가 또 금방 보따리 싸는 처지가 되기 싫거든.

    아주 분명한 판단 기준이 있다. 자식 보기에 부끄러운 일이면 말아야 한다. 그게 겨레와 조국을 사랑하는 길이다. 열린우리당 같은 정당의 리더라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할 말이 정말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