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체류 중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이 29일 포용과 통합의 정치를 강조하면서 ‘새로운 중도(신중도)의 길’을 가겠다는 의지를 밝혀, 내달 1일 귀국 이후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전 의장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귀국에 즈음한 인사를 통해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시대를 위해서는 새로운 변화와 질서가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변화와 질서로 ‘신중도’를 강조했다.

    정 전 의장은 “세계사의 흐름으로 보아 이미 냉전의 시대는 지나가고 이제 세계 선진각국은 세계화의 엄청난 도전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좌파는 탈급진하고 보수는 자기개혁을 통해 가운데로 모아지는 힘을 키우고 있다”면서 향후 신중도의 역할을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이어 “이러한 새로운 변화와 질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포용의 힘과 긍정의 힘이 필요하다”면서 “국민들은 오래전부터 갈등의 정치, 대결의 정치에 대해 넌더리를 내왔다”고 말했다.

    정 전 의장은 자신의 정치의 길을 소회하면서 “포용과 통합의 노력이 부족했음을 자인한다”면서 “국민 가슴속에 있는 '더 나은 미래'와 '모두의 번영'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했다.

    이와 관련, 당내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박영선 의원도 최근 향후 정계개편 논의와 관련, “신중도 기치 아래 일류국가로 가려는 세력연합을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어, 정 전 의장의 귀국 이후 당내 정동영계가 정계개편의 물고를 틔기위한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선도 포착되고 있다. 또 당내 일각에서는 정 전 의장이 귀국과 함께 오는 10․25 인천 남동을 재보선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다음은 정 전 의장의 귀국인사 전문

    이제 한국에 돌아갈 시간입니다. 막상 짐을 싸려 하니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곳 독일에도 정이 들었나 봅니다.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마주 대했던 숲과 거리가 눈에 밟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두 달 반 동안 걷고 생각하고 읽고 대화하며 보낸 시간은 제가 정치를 시작한지 십일년만에 가진 첫 방학이자 귀중한 재충전의 기회였습니다. 처음으로 멀리 떨어져서 나를 돌아보고 나를 있게 한 조국의 현장을 멀찌감치 조망하면서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과 문제의 핵심을 통찰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동안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가 변한 것 같습니다. 하나는 체중이 4킬로그램이나 늘었고
    또 하나는 귀밑에 흰 머리카락이 허옇게 늘어난 것입니다.

    누군가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짧다면 짧았지만 독일 체류기간을 정리하고 돌아가 만날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낍니다. 아직 젊다는 증거가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내 조국이 자랑스럽습니다. 세계사의 변두리에서 맴도는 조국이 아니라 세계의 중심을 향해 전진하고 이동하고 있는 조국의 역사에 작은 역할이나마 동참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역시 가슴이 뜁니다.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
    두달반 동안 내내 내 머릿속과 가슴속을 맴돌던 화두였습니다. 동안거에 들어간 스님들이 가부좌를 하고 참선화두 하나를 붙들고 씨름하는 것처럼 베를린의 숲속을 걸을 때 생각의 밑바닥을 파고 또 팠던 화두였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 드리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국민 가슴속에 묻혀있는 희망을 꺼내 하나로 묶어내고 그 희망을 지켜내는 '희망지킴이'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숲길을 걷고 생각하고 스스로 대화하면서 가슴 속에 들어박힌 몇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이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서울을 떠나올 때 여름이 무성했는 데 이제 푸른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공중에 흩날리고 있습니다. 곧 긴 겨울이 다가올 것이고 또 다시 겨울을 이기고 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뿐만 아니라 인간의 역사 또한 쉼없이 변하고 발전합니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지금 옳다고 믿는 것 가운데 역사의 관문을 통과하는 것은 많지 않다'고 갈파한 바 있습니다.

    어떤 사물이나 생각도 정립이 있으면 반드시 반정립이 나오고 다시 정립과 반정립을 지양하고 종합하여 합일의 길로 변화해 간다는 변증법적 역사관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저의 생각의 토대를 이루고 있습니다. 역사가 때로는 종잡을 수 없이 방황하는 것 같지만 결국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은 한국 현대사의 발전과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베를린에서 좋았던 것은 체류장소로 베를린 시내가 아닌 베를린 서남쪽으로 약 20Km쯤 떨어져 있는 포츠담의 교외주택 2층방 하나를 얻어 생활한 점입니다. 사과나무들이 심어져 있는 집 마당 바로 앞으로 베를린 장벽이 지나가고 있었던 집이었습니다. 또한 집 건너편 언덕위에 올라가면 동서베를린을 분단하면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로 일컬어진 '글리니케 브뤼케'가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아침, 저녁으로 집마당의 장벽이 있었던 흔적 위를 거닐면서 혹은 석양무렵 언덕 벤치에 앉아 과거 분단의 상징이었으나 지금은 무심하게 차량들이 오고가는 글리니케 다리를 물끄러미 응시할 때마다 이데올로기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 이념의 수레바퀴에 치여 얼마나 많은 인간의 삶이 부서지고 망가졌던 것인가. 분단도 장벽도 이데올로기도 모두 역사가 되어 버린 포츠담 현장에서 지구상의 유일한 분단국에서 온 이방인으로서 가슴속에 절절한 느낌이 차올랐습니다.
     
    평화를 위한 경제, 경제를 위한 평화가
    우리가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이자 전략
    1945년 2차대전 패전과 함께 동서독으로 분단되면서 서독은 나토의 일원으로 동독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일원으로 동서 냉전의 첨병이 되어 대결의 길을 걸었습니다. 동독을 인정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국교를 단절하겠다는 서독의 할슈타인 원칙에 맞서 동독은 베를린의 장벽을 세우고 대결의 골을 더욱 깊이 팠습니다.

    60년대 후반에 등장한 브란트수상의 '접촉을 통한 변화' 즉, 동방정책은 대결의 역사를 화해의 역사로 돌려놓음으로써 정립에 이은 반정립의 역사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였습니다.요즈음 국내에서 독일통일에 대한 동방정책의 기여도를 깎아 내리는 일부 견해도 있습니다만 통일은 분명 밖에서 주어진 상황의 산물이 아니라 상황에 앞서 분단을 주체적으로 극복하려는
    치열한 노력과 이를 뒷받침한 국민적 동의가 있었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전 상황을 비교해 보면 독일은 한국과 세가지가 다릅니다. 하나는 동서독간에는 전쟁경험이 없었습니다. 둘째는 동서독간에는 1년에 5~6백만명에 달하는 인적교류와 함께 전면적인 방송교류가 있었습니다.셋째는 동독내에 교회와 시민사회가 존재하고 있었고 서서히 성장해 왔습니다.

    이같이 다른 조건속에서 우리가 추구해갈 방향은 두가지로 압축됩니다. 하나는 지속적인 긴장완화를 통해 확실하게 평화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둘째는 인적교류와 물적교류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궁극적으로 남북경제공동체를 지향해 가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독일의 경험에서 확인한 '접근을 통한 변화'와 함께 아직도 냉전의식으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지 못한 우리 내부의 동의기반을 확대함으로써 '변화를 통한 접근'이라는 두개의 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이 많지만 가장 필수적인 요소 두가지만 든다면 그것은 깨끗한 공기와 물일 것입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에게 공기와 물에 해당하는 것은 평화와 경제입니다. 평화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와 같아서 평소에는 그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지만 조금이라도 평화가 흔들리면 공기가 희박해 지는 것과 같이 호흡이 막히고 삶의 토대가 통째로 흔들리게 됩니다.

    무역의존도가 70%가 넘고 주식시장의 40% 이상을 외국인투자자들이 차지하고 있는 현실상황속에서 평화의 공고화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필수적 요소입니다. 평화의 제도화는 곧 통일을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우리 국민이 보다 윤택한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서 경제의 성장과 발전이 필요하고 이것을 흔들림없이 뒷받침하기 위해 평화가 필요합니다. 평화없는 경제발전은 불가능합니다. 평화속에서 세계적인 경제대국을 이룩한 사례가 바로 일본입니다.

    평화가 정착되면 경제가 안정되고 경제가 발전하면 평화 또한 더욱 튼튼해집니다. 즉, 평화를 위한 경제, 경제를 위한 평화가 우리가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이자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성공단은 대표적인 평화사업이며 경제 사업입니다. 독일 사람들도 개성공단 사업은 자신들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라면서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개성공단을 성공시키고 제2, 제3의 개성공단으로 확대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바로 평화를 공고화 하고 경제를 활성화 시키는 지름길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작년 베이징 9.19 공동성명 합의는 어떻게 해서라도 되살려내야 할 한반도의 예비 평화장전 같은 것입니다. 동북아 지역에서 언제 공동의 안보협력을 마주앉아 논의해 본 적이 있으며 언제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해 나갈 것을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그리고 남북한이 진지하게 협상하고 공동성명이라는 형식으로 담아내 본 일이 있었습니까.

    한국이 구경꾼이 아니라 한반도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로 북한 핵의 폐기와 북의 체제 보장 합의를 이끌어 내는데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은 한국의 평화외교가 일구어낸 역사적 성취였습니다.

    공교롭게도 9.19 공동성명합의 직후 북한위폐 문제가 불거짐으로써 9.19 합의가 이행단계로 진전되지 못하고 6자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6자회담을 재개시키기 위해 포괄적 접근 방안을 마련키로 한 것은 다시 한번 기회의 창이 열린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기회를 살려내기 위해 한국외교의 창의적 능력이 발휘되어야 합니다.

    포츠담에 사는 동안 여러번 찾아갔던 곳이 포츠담 협정이 이루어졌던 포츠담 호숫가 궁전인 Cecilienhof 였습니다. 스탈린과 처칠(회의 중반 애틀리로 교체)과 트루만이 모여 패전국 독일의 처리와 함께 한반도의 분단을 결정했던 비극의 장소 Cecilienhof에 설 때 마다 우리의 지난 역사가 너무 쓰라렸습니다.

    지난 세기 우리는 우리가 식민지로 전락하는지도 모른채 식민지가 됐고 분단이 되는 지도 모른 채 분단국이 됐고 전쟁이 나는지도 모르고 동족 상잔의 전쟁에 휘말렸습니다. 비극적 역사의 경험은 우리의 운명을 우리 대신 풀어 줄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타율의 역사를 끝내고 최소한 우리 스스로 우리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역사의식과 역량으로 무장해야합니다.
     
    3단계 로켓은 내부동력의 통합
    두번째 생각은 약점이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어렵다고 생각한 환경이 훗날 오히려 발판이 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유럽국가 가운데 독일은 가장 늦게 국민국가를 형성했고 1871년에야 비로소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하면 산업화도 늦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늦게 이룩한 통일과 늦게 시작한 산업화를 약점이 아닌 강점으로 바꿔 앞서가던 나라들을 추월했습니다. 예를 들면 증기기관을 이용한 공장설비에는 뒤쳐진 반면 전기를 이용한 동력화의 흐름을 활용하여 오히려 생산력을 배가한 것이지요.

    우리 한국의 국가발전과정을 우주선 발사에 비유한다면 산업화라는 1단계 추진로켓 및 민주화의 2단계 추진로켓을 거쳐 이제 3단계 로켓의 추진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3단계 로켓은 내부동력의 통합이라고 생각합니다. 내부 분열과 갈등으로 소진되고 있는 에너지를 포용과 통합으로 묶어내는 것이야 말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대한민국을 세계사의 중심으로 확실하게 올려놓는 강력한 추진로켓이 될 것입니다.

    독일은 분단의 질곡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독일을 만들어 냄과 동시에 EU통합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음으로써 21세기 유럽역사의 중심에 섰습니다. 오늘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내부분열과 남북분단의 조건 역시 발상을 바꾸어 통찰하면 우리의 역사를 진취적이며 적극적으로 밀고 갈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 각국이 직면하고 있는 고민은 유사성이 있습니다. 특히 독일의 경우, 세계화의 물결속에서 어떻게 계속 선진 경제강국의 위치와 복지제도를 유지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고민하고 있습니다.

    고용없는 성장과 통독의 부담속에서 크게 늘어난 실업의 극복, 다시 말하면 일자리 창출이 최대의 과제입니다. 우리와 다른 것은 일자리 창출과 국가경쟁력 강화 등의 과제를
    여와 야가 갈등과 대결이 아니라 토론과 타협을 통해 해결책을 함께 모색해 간다는 점입니다.

    얼마전 기민당의 메르켈 총리가 전임자였던 사민당의 슈뢰더 전 총리의 '어젠다 2010' 추진을 높히 평가한 것 역시 공존과 타협을 통한 협력의 정치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우리가 거울로 삼아야 할 선진국 정치의 특징이겠지요.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것이 사회통합의 핵심요소이며 복지국가로 가는 길

    독일에 있는 동안 관심사 중의 하나는 독일 중소기업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중소기업과 독일에서 생각하는 중소기업 사이에는 개념의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주로 기업의 크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반면 독일의 Mittelstand (중견기업)는 규모보다는 내용과 역할에 촛점을 둔 개념입니다. Mittelstantd 곧 중산층 기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일자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Mittelstand가 독일의 중산층을 두텁게 하고 떠받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계시장에서 Market Share 1등을 차지하고 있는 중견기업이 5,000개도 넘는 탄탄한 경쟁력이 중견기업 근로자들에게 고급 일자리를 제공하고 사실상 최고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는 셈이지요. Mittelstantd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에 더 하겠습니다만 우리 중소기업에도 분명 희망이 있습니다.

    9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 국민 중 2/3 가 자신을 스스로 중산층에 속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IMF를 거치고 사회 경제적 양극화에 시달리면서 이제는 30% 미만의 국민만이
    자신을 중산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중산층을 두텁게 하는 것이 사회통합의 핵심요소이며 복지국가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산층을 확장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지름길입니다. 정치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바로 중산층의 재창출에 있고 이를 위해 중소기업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야 합니다. 중소기업 강화의 핵심은 R & D의 효율화와 산학연의 강화에 있다고 봅니다. 중소기업문제는 나중에 다시 한번 본격적으로 짚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얼마전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 가전 박람회에 가서 확인한 것은 시대와 기술이 변화할 때 기회가 생긴다는 것이었습니다. 베를린 가전 박람회를 휩쓴 것은 삼성과 LG 였습니다. 박람회장 바깥 마당은 한국 두기업의 회사로고 깃발로 물결을 이루었고 박람회장 한 중앙에 위치한 두기업의 전시장은 잔칫집 마당처럼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참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102cm 짜리 초대형 PDP,LCD TV 앞에서 연신 카메라를 눌러대는 독일 손님들을 보면서
    옛날에 우리 선조들이 세계박람회 구경 갔을 때 경탄하고 부러워했을 장면이 겹쳐 떠올랐습니다. 일본의 SONY가 박람회 참가를 포기하고 삼성과 LG의 잔치가 되어버린 것도 격세지감과 함께 가슴이 벅찼습니다만 제가 더욱 기뻤던 것은 박람회에 나온 40여개 우리 중소기업의 존재였습니다. 디지털과 가전 기술에서는 우리 중소기업도 세계 수준과 어깨를 겨루며 경쟁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브라운관 TV 시절에는 거대기업들만 생산할 수 있었던 TV 산업이 디지털 TV 시대가 도래하면서 중소기업들도 생산과 판매 시장에 뛰어들 수 있게 됐습니다. Viewwell, Viewfine, Atec 등 등 국내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상표를 달고 10개가 넘는 중소기업들이 디지털 TV 시장을 파고 들고 있었습니다. 독일의 대표적 가전기업인 GRUNDIG 의 경우 자체 생산라인은 없고 주문자 제작 방식으로 바깥에서 아웃소싱으로 만들어 자기상표를 붙이는데 여기에 납품하는 업체들이 바로 우리 중소기업이었습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TV 제작 생산이 거대 장치산업으로 부터 중소기업들도 TV 패널과 뒷면의 키판을 사다가 조립할수 있는 산업으로 바뀐 것이지요. 조금 길어졌습니다만 시대와 기술변화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적응력은 뛰어납니다. 아날로그 시대가 계속된다면 우리가 따라잡기 어렵겠지만 어느새 디지털 시대로 기술 진보가 이루어지면서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것입니다.

    제가 아는 신진 기업인 한사람이 했던 이야기가 귓가에 생생합니다. '내가 사업때문에 동유럽으로, 인도로, 중국으로 뛰어다닐 때 국내정치가 발목을 잡지않고 등을 밀어줄 수 있다면 지금의 몇 배를 더 할 수 있을 것이요'
     
    대외개방과 함께 대내복지를 같이 밀고가야 합니다.
    세계 1등을 해본 기억이 없었던 우리가 이제 기업과 기술 그리고 문화와 한류, 스포츠 등에서 우뚝 일어서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우리는 세계화의 시대에 적응하며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세계화의 흐름에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우리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역사학도로서 19세기 말 우리 조상들이 개방의 물결을 활용하지 못하고 안으로 움츠러들고 결국 쇠락의 길을 걸었던 역사와 20세기 후반 적극적인 대외개방으로 후발주자이긴 하지만 근대화에 성공한 것을 거울로 삼아 이제 세번째 역사의 기로에 서서 두려움을 버리고 진취적인 자세로 대외개방을 밀고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전제가 있습니다. 대외개방과 함께 대내 복지를 같이 밀고가야 합니다.
    개방에는 희생자와 열패자가 생길 수 밖에 없고 이것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 넘길 수는 없습니다. 역사상 제3의 개방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민적 동의위에 확실한 보상체계와 대내복지의 강화가 필수적 입니다.

    산업화와 민주화에서 뒤졌던 후발주자의 약점을 정보화와 세계화 시대에 오히려 강점으로 바꾸어 낸다면 21세기는 단군 이래 최초로 코리아 르네상스 시대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
    세번째로는 인간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가슴에 새긴 것입니다. '머리위에는 밤하늘의 빛나는 별, 그리고 내 가슴속에는 빛나는 도덕률'이라는 칸트의 명제가 독일에 와서 더욱 절실하게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인간은 우주의 중심입니다. 인간이 사라지면 우주가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이유로도 인간을 파괴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이유도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한 조건을 마련하기 위한 것입니다.

    실직한 가장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동반자살하는 사회는 인간적인 사회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최소한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사회가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아닐까요.

    성장이 우선이냐 복지가 우선이냐 하는 이분법적 선택을 요구받는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이 질문은 성장과 복지가 서로 상충하는 대립적 개념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두개가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하는 것이라고 본다면 이 질문은 잘못된 것입니다.

    독일에서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밝고 행복한 모습이었습니다. 인문계 고등학교도 가 보았고 실업계 학교와 엘리트 고등학교도 방문해 보았습니다. '독일 학생들은 대체로 학교 생활에 만족하고 자기들 나름대로 삶을 즐기고 있다'는 교장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며 새벽 부터 밤 늦게 까지 시달리며 몸부림치는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너무 안쓰러웠습니다.

    사교육비에 관한 저의 질문에 대해서는 질문 자체를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지체 장애와 중증 정신 장애 학생을 일반 학급에 통합해 가르치고 있는 실업계 학교 교장 선생님은 일반 학생들은 약자를 도우며 함께 어울려 사는 법을 배우고 장애 학생들은 사회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교육을 통해 사회적 통합을 이루어가는 따뜻한 교육, 따뜻한 사회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로운 중도의 길을 가기 위해서는 포용과 긍정의 힘이 필요합니다.
    베를린은 어디를 가나 숲이 깊어서 걷기가 좋고 걷다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것 같아 좋았습니다. 어느 시대나 그 시대를 지배하거나 특징짓는 정신을 시대정신이라 합니다. 오늘 우리의 시대정신은 무엇입니까?

    저는 그것을 국민 가슴속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하게 말하면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시대를 국민들은 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 위해 변화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고 새로운 질서가 필요합니다.

    새로운 질서는 양극단의 논쟁에서 벗어나 가운데로 모아지는 힘을 키우는 일이라고 봅니다.
    아직 명확하게 내용을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새로운 중도(신중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새로운 질서와 신중도는 우선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첫째, 세계사의 흐름으로 보아 이미 냉전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냉전의 시대는 양극화의 시대였습니다. 이제 세계 선진 각국은 세계화의 엄청난 도전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좌파는 탈급진하고 보수는 자기개혁을 통해 가운데로 모아지는 힘을 키우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독이후 가장 못사는 지역의 하나인 독일 중동부의 작센안할트 주를 방문했을 때 뵈머 주총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최대의 과업입니다. 세계화가 진행되고 있고 갈수록 경쟁이 심해져가는 지금과 같은 시대에 정치가들이 자신의 이념과 정략을 고집하며 다투는 것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커다란 호사이며 사치입니다'

    둘째, 동북아 지역을 보면 중국은 공산당 일당 지배체제를 유지하고 있고 일본은 자민당 집권사상 가장 보수 우익적인 정권이 연속 집권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교류하면서 새로운 동북아 질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중도의 길을 가는 것이 우리에게 국가이익을 극대화 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셋째. 우리 국민들의 중도지향의 바램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국민들이 시대의 흐름을 정치가들보다 더 잘 보고 있는지 모릅니다.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질서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포용의 힘과 긍정의 힘이 필요합니다.
    국민들은 오래전부터 갈등의 정치, 대결의 정치에 대해 넌더리를 내왔습니다. 이와 같은 국민적 요구에 대한 대답은 포용과 통합의 정치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고 우겨대더라도 훗날 역사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허망한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조선시대 사색당파의 주장들은 당시로 보아서는 각자가 목숨을 건 심각한 주의 주장이었습니다만 오늘날 되돌아보면 당대 지식인들의 허무한 싸움이었을 뿐입니다.

    그 때문에 조선이 근대화의 기회를 잃고 낙오했으며 백성의 삶은 황폐해졌습니다. 오늘의 여야 정당간의 정치쟁점을 둘러싼 쟁투도 나중에 보면 허망한 일이 될 수 있음을 새겨야 합니다.

    사회적으로도 포용의 힘을 가진 사회가 따뜻한 사회입니다. 포용사회로 갈 때 국민 통합의 길도 열리게 됩니다. 포용의 정치가 통합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포용의 정치로 증오와 갈등의 정치를 넘어설 수 있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스스로 걸어온 정치의 길을 되돌아 보면서 포용과 통합의 노력이 부족했음을 자인합니다. 국민 가슴속에 있는 '더 나은 미래'와 '모두의 번영'이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행복한 시대를 열어가야 합니다.

    우리 국민은 위대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하고 검소한 국민이라는 독일국민보다 더욱 근면하고 역동적인 국민입니다. 맨손으로 근대화와 민주화를 이루었고 또다시 새롭게 일어서려는 국민입니다.

    숲 바깥에서 보면 안에서 보는 것 보다 숲을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밖에서 보는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나라입니다. 역사 이래 우리 국민이 오늘날 처럼 깨어있고 향상의 욕구에 가득 찬 시대는 없었습니다.

    우리 국민은 세계에서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고 역사의 도전에 가장 적극적으로 응전하는 국민입니다. 오늘날 우리 정치가 해야 할 일은 국민위에 서서 이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국민속으로 들어가 국민이 원하는 바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국민을 받드는 것이 정치의 출발점이자 궁극적 지향점이라 믿습니다.

    가을의 풍성함에서 누가 하나 예외 되지 않는 따뜻한 한가위가 되길 바라며
    10월 1일, 고국에서 뵙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