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마주 보고 환칠하기'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미안한 노릇이지만 과거지사를 좀 들먹여야 하겠다. 15,16대 두차례 대선의 결과는 김대중, 노무현 후보의 승리라기보다 이회창 후보의 패배였다. 당사자측이 한사코 이기기를 거부한 탓에 질래야 질 수 없는 경쟁에서 두차례나 거푸 무릎을 꿇게 된 것이다. 물론 갖가지 패인이 불거지긴 했다. 그러나 좌절의 결정적 요인은 필승 의지의 결여였다. 
     
    지지난해 노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날 저녁 한나라당 중앙당사에서는 이와 관련한 토론회가 열렸다. "죽이는 정치가 아니라 살리는 정치를 해야 한다. 아직 협상의 기회는 있다…." 토론자로서 제몫을 한답시고 이런 저런 훈수를 했었다.

    그 끝에 이런 말을 덧붙였다. "여러분, 노 대통령을 밀어내면 정권이 여러분 차지가 될 것 같습니까? 어림없는 욕심입니다. 이번에도 한나라당은 반드시 집니다. 자신의 이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 다수 의원과 정권 수호에 사생결단할 소수 의원의 싸움이라면 결과는 뻔하지 않겠습니까?" 대략 그런 의미와 표현이었다.

    그 후로 한나라당은 온갖 풍상과 우여곡절을 거쳤다. 특히 대선자금의 전모가 드러났을 때,그리고 탄핵소추를 강행했을 때는 거의 폐문(閉門) 지경에 이르렀다. 그 고비를 넘긴 것은 말 그대로 기사회생이다. 나아가 지난 5·31 지방선거에서는 집권 열린우리당을 완파하며 한껏 기세를 올리게까지 되었다.

    아마도 집권당의 지리멸렬,이후의 당·청 갈등을 지켜보면서 이른바 '정권 탈환'의 꿈에 부풀었을 법하다. 누구의 눈에든 너무 빠르다 싶을 정도로 정권의 노쇠 현상이 가속화했다. 청와대는 인사에 따른 부작용 혹은 논란으로 기진맥진한 분위기이고 여당도 지방선거 참패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탈기한 모습이다. 그런데 한나라당은,어떤 집단이든 그 와해의 요인이 언제나 안에서 자라고 부푼다는 것을 또 기어이 입증해 보일 모양이다.

    밖으로 드러나고 있는 정국 주도력 부족은 오히려 작은 문제다. 더 큰 문제는 내부에 있다. 대선 후보 경쟁자들 사이에 형성되고 있는 갈등 대립의 골이 어느새 회복 불가능할 정도에 이른 인상이다.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예비 주자들 주변 세력 사이에(혹은 일방에 의해서) 힘 겨루기가 있었다더니 이게 봉합되지 않고 구조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국민일보가 엊그제 보도했지만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 지지자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사이버 비난전은 이미 예사로 봐넘길 수준을 넘어섰다. 사회적 지탄 때문에 주춤하는 빛이지만 약간의 자극만으로도 격화되고 마는 게 이런 성격의 말싸움이다. 서로 헐뜯어 만신창이가 된 인물을 국민에게 선택해달라고 할 것인가. 자해행위로도 너무 어리석다. 마주 서서 서로의 얼굴에 환칠을 하면 내 얼굴도 같이 더러워지는 것을 왜 모르는가.

    "지금까지 봐온 바로 한나라당의 적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있었다. 내부의 갈등 대립을 슬기롭게 해소해내지 못하면 다음 대선에서도 희망이 없다. 당내 갈등을 해소 봉합 조정할 실질적인 기구를 만드는 게 어떤 혁신안보다 중요해 보인다." 지난해였던가 당 혁신안 토론회에서 이런 뜻의 권고를 했던 기억이 있다.

    어느 당의 후보이든 대통령 선거에 나설 사람은 국민적 보배로 아낌을 받아야 한다. 당내에서 갈고 닦아 빛나는 인물로 내놔도 국민이 선택할까 말까 하는 것이 대통령 선거다. 당은 물론 나라의 장래까지 두 어깨에 걸머질 인재를 지지자라는 사람들이 온갖 오물로 더럽혀 놓고 국민더러 뽑아달라해서 되겠는가.

    논란의 중심에 있는 당의 대선 예비 주자들, 그리고 당 지도부, 또 괜히 상대방 헐뜯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각 주자의 지지자들은 함께 시장 혹은 백화점에 나가 볼 일이다. 상인들은 몇 천원짜리 물건이라도 손님의 눈길을 끌게 하려고 온갖 아이디어와 정성과 노력을 쏟는다. 하물며 5년간 나라를 이끌어갈 대통령감을 내놓는 일에서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