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민일보 26일자 오피니언면에 이 신문 이진곤 주필이 쓴 '역성드는 것은  좋지만…'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대통령이 곤경에 처한 장관을 격려하고 역성까지 들어주는 것은 아름다운 장면일 수가 있다. 이런 광경을 지켜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에겐 큰 위안이다. 어디에서든 인간관계는 먼저 정(情)으로 다독여진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또 있을까.

    그런 심정으로 듣자. “(우리는) 미국이 실패했다고 말하면 안 되느냐. 옳지 않은 것은 옳지 않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니냐.” 노무현 대통령이 어제 국무회의 모두에 했다는 말이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의 발언들에 대한 언론과 야당측의 비판을 겨냥했을 터이다. “미국은 오류가 없느냐. 한국은 미국의 오류를 말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런 말도 덧붙였다고 들린다.

    내 나라 대통령도 직설적으로 비판하는 대명천지 민주국가에서 다른 나라 정부의 정책적 실패를 지적한다고 잘못이라 할 까닭이 어디 있으랴. 미국의 대북 압박정책이 무슨 효과를 거뒀나. 오히려 남북한 관계의 경색, 한반도 긴장의 고조만 초래하고 말았지. 일생에 도움이 안돼요. 뭐 그런 불만이 나올 법도 한 상황이다.

    다만 이 장관이나 노 대통령이나 사태의 본(本)은 슬쩍 뒤로 밀쳐놓고 말(末)을 쳐들어 보이는 게 문제다. 누구도 미국이 실패했다고 말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는 것 같지는 않다. 미국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고 전제하고 그것으로 우리 정부의 실패를 호도하려는 당국자의 태도를 유감스러워하는 말이 들릴 뿐이다. 북한의 무모한 군사적 모험주의와 안하무인의 행동·태도에 대한 우리 정부의 지나친 유화정책이 자칫 북한의 도박심리를 부채질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의 목소리도 섞여 있다. 그런데 정부가 왜 ‘미국의 실패’를 국내의 정치적 비판자들에 대한 해명 및 반박의 명분으로 삼으려하는지 그걸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뻔한 이야기지만 간과되는 듯하니까 다시 말해두자. 북한의 무기(그게 핵무기든 미사일이든)의 제1타깃은 남한이다. 그들의 군사적 압력에 가장 취약한 지역 또한 남한이다. 유사시에 핵무기 등 대량살상무기의 인질이 될 사람이 남한의 4800만 국민 말고 달리 있겠는가.

    북한은 전체 인민의 생존보다는 체제의 유지를 우선하는, 말하자면 반민족적 집단이다. 그렇지 않다면 쌀과 비료의 지원이 끊길 것을 뻔히 예견하면서도 대화를 거부한 채 미사일 압박을 계속할 리가 없다. 만에 하나 군사적 충돌이 있게 될 경우 남북의 7000만 겨레에겐 미증유의 재앙이 될텐데도 벼랑에 버티고 있는 것 또한 체제의 위기를 감수하느니 민족의 공멸을 택하겠다는 심리이겠다.

    기실 현재의 대북정책은 엄밀한 의미에서 정책이라 하기 어렵다. 정책일 수 있으려면 기대되는 효과와 추구하는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정부의 대북화해·협력정책이 겨냥하는 바는 무엇인가. 미국 역사학자 크레인 브린턴의 표현(누적적 지식-비누적적 지식)을 흉내내서 말하자면 남한의 대북지원·협력이야말로 전형적인 ‘비누적적’ 정책이다. 북측의 이익을 훼손하거나 기분을 거스르면 그때마다 ‘원점회귀’하는 것을 어떻게 정책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사정사정해서 이어가면 진정한 화해 협력의 시대가 오리라고 정말 믿는가. 개꼬리 묵혀 황모되길 기다리는 게 차라리 낫겠다.

    남측의 안전보장회의 상임위원장인 이 통일장관이 북측의 입장에 이해를 표하면서 미국에 맞서는 인상을 주고, 국군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그를 역성을 드는 장면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살가운 인정은 좋은데, 북측의 목숨을 건 군사적 곡예가 그 바람에 더욱 기승을 부리지나 않을지…. 그럴 리는 없다고 보지만 북한 당국이 계속 어이없는 착각과 한심한 오만에 빠져 있도록 바람을 불어넣는 일은 특별히 자제해야 한다.

    그럭 저럭 임기는 끝날 터이고 그 후에야 내 알 바 있느냐는 심사는 절대 아닐 것이라 믿기는 한다. 그렇지만, 천변만화하는 북한의 태도를 보고 있노라면 온갖 일이 다 마음에 걸려서 괜한 걱정까지 사서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