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은 지금 승리의 집단 환각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

    5·31지방선거 압승 이후 2002년 대선 패배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표정관리’하며 잔뜩 자세를 낮추겠다는 한나라당의 ‘노력’을 무색하게 하는 말이다. 한나라당내 의원모임인 국가발전전략연구회가 19일 마련한 ‘5·31지방선거의 반성적 평가와 한나라당의 시대적 과제’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는 한나라당에 대한 이 같은 쓴 소리가 쏟아졌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길리서치 홍형식 소장은 이날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아무도 다음 대선에서 한나라당의 필승을 장담하지 못한다. 오히려 분석가들이나 전략가들은 2002년의 반복을 경고한다”며 “지방선거 이후 한나라당은 선거 승리에 도취돼 2주를 보냈다. 그나마 표정관리라도 했다는 것이 2002년의 학습효과”라고 꼬집었다.

    홍 소장은 “국민들은 이번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의 공과에 대해서는 심판을 내렸지만 한나라당에 대한 심판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며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결과를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있다. 국민이 한나라당이 좋다고 말한 것으로 넘겨짚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는 “미래지향적인 비전 제시나 정책 마련을 통한 보수 노선의 재정립은 찾아보기 어렵다”며 “기득권에 연연한 정책을 다시 꺼내들고 이미 국민의 평가를 받고 떠났던 정치인들이 복귀하려 한다. 한나라당은 지금 승리의 집단 환각에 빠진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한나라당이 집권하기 위해서는 ‘한나라당만의 대안’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지방선거 압승으로 대부분의 기초자치단체장이 한나라당 소속이라는 점이 역으로 한나라당에 독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지금의 권력을 어떻게 쓰는지 지켜볼 것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제1야당일 뿐 아니라 가장 높은 정당지지도와 함께 지방권력을 장악한 책임정당으로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한나라당 대선 주자 관리의 중요성도 지적했다. 한나라당내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전 대표와 이명박 서울특별시장이 팽팽하게 경쟁하고 있는 만큼 그 틀을 대선경선까지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선거 피습사건으로 더 이상 독재자의 딸이 아닌 희생자의 이미지를 얻었다. 즉 보수의 순교자가 된 것이다”며 “이명박 서울특별시장의 위상이 큰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니 이 두 개의 강력한 힘은 언제 원심력으로 돌아설지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차기 대선과 관련해 공정하게 경선을 관리할 수 있는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지향하는 보수의 색깔을 보여주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과거의 권위주의적 기득권적 냉전적 과거회귀 그리고 차떼기로 각인된 부정부패를 벗어나 미래지향적이고 합리적인 보수로 지향점을 명확하게 해야 한다”며 “남북문제에 대한 입장정리와 사회적 책임성 등 보수주의를 어떻게 해석하고 정책화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훈 중앙대 교수는 한나라당을 축구대표팀에 비교해 “최근 들어 성적이 비교적 괜찮지만 여전히 답답하고 불안해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한나라당은 재보선에서 연이은 승리를 거두고 있고 지방선거에서도 크게 이겼지만 온건 보수 정당으로서 기본기가 충분하지 않다”며 “보수 정당으로서 콘텐츠를 채워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지난 2002년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선거 초반부터 40%대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를 달렸지만 결국 민주당 노무현 후보에게 진 것은 선거연합을 외면했기 때문”이라며 “민주당은 노무현과 정몽준 연합 등 선거 연합이 이뤄진 반면 한나라당은 이회창 대세론에 빠져 선거 정치의 핵심인 합종연횡을 외면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공성진 의원은 5·31지방선거 결과에 대해 “열린당이 싫어서, 노무현 정권이 미워서 나온 결과물일 뿐”이라고 평가절하한 뒤 한나라당의 ‘안방’인 영남지역 투표율이 하락(광역단체장 경우 2002년 70.9%→2006년 68.2%)한 것과 경남에서 밀양과 함양 두 곳의 기초단체장을 열린당에 넘겨준 것, 호남 지역 득표율이 저조했다는 점 등을 지적하며 “과연 한나라당의 승리냐”고 반문했다. 그는 이어 “선거결과에 대한 반작용으로 국민 견제심리가 작동하면 선거결과가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반사이익’이 아니라 ‘반사손해’가 될 수도 있다”며 “내년 대선을 위해 한나라당은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혁신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노 정권과 열린당에 대한 국민적 심판의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