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일보 13일자 오피니언면에 명지대 교수인 김희상 예비역 육군중장이 쓴 시론입니다. 네티즌의 사색과 토론을 기대하며 소개합니다.  

    지난 50여 년간 우리는 수많은 국가적 도전을 극복하고 안정과 번영을 이룩하는 데 ‘한미동맹’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왔다. 이승만 대통령이 온갖 노력을 다해 가까스로 이끌어 낸 한미동맹이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해 온 셈인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금처럼 소중하고 필요한 때는 일찍이 없지 않나 싶다.

    예컨대 체제유지의 한계상황으로 몰려가고 있는 북한은 핵 개발로 그 마지막 운명을 시험하고 있고,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남한에서 보수정권이 집권하면 전쟁의 화염에 휩싸일 것이라며 노골적으로 전쟁위협까지 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북한을 동북4성으로 만들고 싶어한다는 중국의 전략적 행보는 전에 없이 날카롭고 급속한 상황이다. 자연히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한·미 간의 진실한 우의와 혈맹적 결속’이 절실할 수밖에 없는 때이다. 내 힘이 부족하면 남의 힘이라도 빌리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지혜가 필요하다. 오늘 이 시점에 그럴 만한 힘을 갖춘 나라는 미국뿐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때에 ‘몇 년 내에 전시 작전통제권을 단독 행사하고 2012년까지는 한미연합사(CFC)를 해체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것이 결국은 주한미군의 철수와 한미동맹의 질적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어 실무자는 우려하는 반면, 정책 결정권자는 오히려 조급해한다는 말도 들린다. 물론 언젠가는 어차피 그래야 하겠지만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다. 사실이라면 아직은 주한미군 및 CFC가 갖는 첨단의 위기관리 역량과 강력한 한미동맹의 상징성을 스스로 내던지는 것이고, 우리 안보체제의 기축을 뒤흔드는 문제가 될 것이다.

    당장 강력한 억제력을 상실해서 자칫 정말로 북한의 오판을 부를 수도 있고 한반도의 장기적 불안정성을 증가시킬 수도 있다. 또한 이스라엘이 GDP의 9%, 싱가포르도 5% 이상을 쓰는 데 반해 3%도 안 되는 국방비로 버티는 ‘경제적 국방’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작통권 단독행사’는 그 자체가 이미 CFC와 UNC(유엔군사령부)의 존립을 부정하는 것이니 이런 우려는 훨씬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역량과 태세도 의문이다. 최근 한 조찬 강연회에서 벨 연합사령관은 ‘이것은 정치가 아니라 군사문제’라고 강조했다. 정치적 이유로 오판하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그리고 2012년에 CFC를 해체한다면 막대한 돈을 들여 건설하려는 평택의 새 기지는 또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서울에서는 나가라 하고 평택도 안 된다’는 일부 시민단체들의 주장과 함께 ‘우방을 우롱하는 결과’가 되고 한·미 간의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의 근원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굳이 작통권 단독행사를 강행해야 한다면 우선 합당한 군사력을 먼저 건설하고, 한미동맹에 필적할 만한 대체 역량도 먼저 마련한 후라야 맞는 일이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설사 충분한 조건을 갖추었어도 우리가 한반도를 통일하고 중국이 민주화되어서 주변정세가 완전히 안정될 때까지는 이런 논의는 서둘지 않는 것이 지혜 있는 자의 태도일 것이다.

    더욱이 미국은 이미 이런 가능성에 충분히 대비해 오고 있는 듯하다. 주일미군의 재배치와 함께 일본 자위대를 괌 같은 태평양상 미국 영토에도 배치해서 합동작전 능력을 강화한다는 파격적인 이야기도 들린다. 튼튼한 한미동맹이 가장 필요로 하는 이 시점에 경솔한 조치로 한미동맹을 사실상 형해(形骸)화하게 된다면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전략적 실수가 될 것이다. 나라가 죽고 사는 안보 문제를 함부로 시험하려 들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김희상 명지대교수·예비역육군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