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피습사건으로 입원해 있는 9일 동안 그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던 유정복 대표비서실장은 6일 박 대표에 대해 “정말 흔들림 없이 의연한 모습으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줬다. 정말 의연한 모습이었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유 실장은 이날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병상일기’를 통해 ‘테러’라는 극한 위기상황에서 빛을 낸 박 대표의 리더십에 대해 높게 평가했다. 그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보다는 당을 걱정하는 마음이 가득했고 그래서 대표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침착함과 의연함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며 “마취도 국소마취로 하고 마취 후 진통제도 사양한 채 빠른 회복에 대한 집념을 보이는 모습에 박 대표의 인내력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박 대표는 어떤 문제에 대해 대처해나갈 때 원칙과 명분이 있는 일에 대해서 더욱이 책임을 져야 할 일에 있어서는 소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해 가는 분”이라며 입원해 있는 동안 박 대표가 했던 말들을 발언 순서대로 나열하면서 ‘책임감, 위기 관리능력, 선거대책위원회 의장으로서의 역할과 사명감, 진정성’이 느껴졌다고 했다.

    그는 또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가장 놀란 것은 박 대표의 의연함과 인간적인 모습이었다”며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급박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박 대표 삶의 원동력은 바로 오랫동안 고통으로부터 단련돼 나오는 것”이라고도 했다. 

    <다음은 유정복 비서실장의 글 전문>

    위기에서 안도로, 그리고 희망으로

    5월 20일의 박근혜 대표님 피습사건으로 인해 겪어야 했던 지난 열흘간은 가장 충격적이고 힘들었던 시간이었지만, 새로운 깨달음을 가져다 준 시간이었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표님께서 당하신 불의의 사고는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그리고 정상적인 문명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테러 사건으로 저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의 경악을 자아낸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대표님을 최측근에서 모시고 있는 저로서는 한없는 죄책감도 느끼면서 당원과 국민들께 송구스런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이제 열흘간의 병상생활을 마치고 퇴원한 상황에서 지난 시간들을 회고해보게 됩니다.

    상황이 발생하고 처음 며칠동안 저는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배고픔도 느끼지 못했고 졸리지도 않았습니다. 한참이 지났을 무렵 기자들과의 얘기 중에 사건이 발생한지 만 3일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야 그 3일이 저에게는 열흘 이상의 긴 시간으로 느끼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제가 그 3일 동안 긴장하고 있었는지 이제 와서야 회상이 됩니다.

    이번 사태를 맞아 제가 갖게 되었던 부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표님의 신상에 문제가 생긴다면 대표님 개인적으로도 물론이겠거니와 당과 나라를 위해서도 이만저만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머리를 무겁게 했습니다.

    그래서 병원 측에서 수술과 치료를 위해 모든 정성과 노력을 다하도록 해야 하는 일이 급선무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병원장 이하 주치의 탁관철 교수께서는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셨고 그 결과 의료진도 놀랄 정도로 수술경과는 좋았습니다.

    의료원장과 병원장 모두 저의 고교와 대학 선배이어서인지 심적으로 큰 위로와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대표님의 피습소식을 접하고 놀란 각계 인사들의 위로 방문과 전화 등도 제가 감당해야 하는 일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병원 측의 방침에 따라 대표님 면회가 금지되어 있는 상황 속에서도 각계 인사의 위로 방문은 줄을 이었고 저는 열흘간 1,000여 명의 방문객을 맞아야만 했습니다. 대표비서실 직원들의 헌신적인 도움과 몇 분 의원님들의 적극적인 협조 속에 방문인사들에 대해 상황설명과 함께 감사의 뜻을 충분히 전하고자 했습니다. 박사모 등 지지자들의 밤샘 기도 등에 대해서도 정말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표님의 피습 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에 대한 대응도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대표님의 근황은 병원장과 주치의, 그리고 저를 통해서만 국민들께 전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저는 매우 신중하게 대처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대표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는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전달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목격하고 의료진들로부터 들은 대표님의 근황에 대해서 조금도 가감 없이 있는 그대로 언론을 통해 국민께 알려드렸습니다.

    그리고 의사가 말한 대로 ‘진짜 모범환자’였던 대표님께서 병상에서도 정말 흔들림 없이 의연한 모습으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신 것은 저 자신도 감동받게 된 새롭게 발견할 수 있었던 대표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사건 현장에 있었던 저였지만 워낙 순간적으로 일어났을 뿐 아니라 누구도 알 수 없었을 정도로 침착한 대표님의 행동 때문에 저도 사건 발생 후 세브란스병원 응급실에 도착한 후 대표님의 상처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10㎝는 더 넘어 보이는 찢어진 상처에 많은 피를 흘리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저에게 던진 한마디는 ‘많이 놀라셨죠?’라는 말이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두려움을 뒤로 하고 오히려 저를 위로하며 던진 이 한마디에 대표님의 따뜻한 인간미가 저의 가슴을 저며 오면서, 이 말씀이야말로 저를 더욱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정말 의연하신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말씀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이 일단은 생명에는 지장이 없겠구나 하고 생각하면서 상처 입은 부위가 얼굴이라는 점에서 앞으로 생길지 모르는 흉터 걱정이 오히려 컸었던 것이 당시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잠시 후 병원장과 주치의가 병원에 도착하고 수술 준비가 되어 수술실로 들어가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대표님께서는 저를 찾아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거중입니다. 당에서는 흔들림 없이 선거운동에 임하도록 지시하세요.”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보다는 당을 걱정하시는 마음이 가득하셨고, 그래서 대표로서의 책임을 다하는 침착함과 의연함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대표님께서 수술실로 들어가신 후 수술 장면을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밖에서 지켜봐야 했던 저의 마음은 만감이 교차하였고, 왜 이리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는지 모르겠고 안타까움만 쌓여갔습니다. 3시간이나 걸린 수술 때문에 불안감도 커져만 갔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나온 탁 교수의 첫마디가 “기적입니다. 하늘이 도왔습니다.”였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말씀을 들어보니 11㎝ 정도의 자상(사실은 깊은 상처였기 때문에 의학적 용어로는 열상)을 입었고, 깊이가 1~3㎝의 상처였는데도 불구하고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안면신경을 피해갔고, 조금 아래 부분에 이르렀으면 경동맥을 다쳐 손써볼 수도 없는 치명적인 상황이 될 수 있었다는 주치의 말씀에 안도보다는 머릿속이 아찔해졌습니다. 마음을 진정시키고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대표님께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제가 뵈었던 평상시의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오히려 더욱 의연한 모습으로 의료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마취도 국소마취로 하였고, 마취 후 진통제도 사양한 채 빠른 회복에 대한 집념을 보이시고 계신 모습을 보면서 대표님의 인내력과 의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수술을 마치고 입원실로 옮기시는데 병원 측에서는 때마침 크고 안락한 20층 VIP병동의 특실 환자가 방금 방을 비웠기 때문에 사용 가능하다고 하였지만, 저는 수없이 많은 지방출장으로 비행기를 이용하실 때에도 반드시 보통석을 이용하시는(좌석이 없어서 불가피하게 비즈니스석을 타신 경우가 딱 한번 있었지만) 대표님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외부차단을 위해 불가피하게 20층 병동을 쓰되, 그 병동의 일반 병실을 얻어 입원하시도록 하였습니다.

    입원 후 의료진에서는 상처부위가 깊어 피부 외상뿐 아니라 피부 안쪽 근육과 침샘 일부까지 파손되어 이 부분에 대한 봉합수술도 있었던 관계 등으로 말씀을 자제해야 한다고 하였고, 따라서 일체의 면회가 금지되어 부득이 제가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보고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보고는 가급적 간단하게 드렸고 말씀을 안 하시도록 하기 위해 서면으로 하면서 읽어보시고 특별히 지시하실 사항이 있으실 경우에만 간단한 말씀이나 필담으로 하시도록 권유하였습니다.

    입원 다음날(21일) 오전 보고 시, 대표님께서는 “계획된 선거운동을 차질 없이 추진하도록 지시하세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지시사항에 대해 원내대표와 사무총장께 바로바로 전해 드렸고, 또한 당내 상황에 대해 저에게 알려주신 당직자들의 당무사항을 정리하여 대표님께 보고 드렸습니다.

    그날 당에서는 몹시 분주했습니다. 오전 8시에는 불의의 사고에 대처하기 위한 긴급 최고위원회의가 열리고, 오후 2시에는 의원총회가 열리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당의 상황을 이해해야 되고, 또한 대표님의 근황이나 말씀을 전달해야 하기 때문에 잠시 시간을 내어 당의 회의에 참석하였습니다. 오후 2시 의총장에 잠시 들렀다가 오후 3시로 예정된 대통령 비서실장 방문을 비롯한 외부인사 접견으로 병원에 돌아와 일정을 보다가 거의 오후 5시가 다 되었을 무렵 당의 상황이 궁금하여 의총 상황을 알아보니 아직도 회의 중이며 테러 사건에 대한 정치적 의혹 제기 등 많은 격론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 상황을 대표님께 보고 드렸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오버하지 않도록 하세요.”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원내대표에게 즉시 전화를 걸었으나 회의 중이라 통화가 되지 않아 유승민 의원에게 전화해 원내대표를 바꾸도록 하였고, 원내대표에게 대표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대표님의 말씀이 전해지기 전까지는 다소 흥분하기도 하고 당황하기도 했던 의원님들의 과격한 발언도 쏟아졌었지만 원내대표께서 박 대표님의 말씀을 전해주신 이후로 당은 냉정함을 되찾아 차분하게 대책을 세워나가게 된 것 같습니다.

    다음날(22일) 오전에는 당무보고와 함께 선거 판세에 관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드리고자 보고서를 드렸습니다. 대표님께서는 여론조사 결과를 보시자마자 “대전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병상에 계시지만 대표적인 취약지역이며 또한 반드시 이겨야만 한다고 생각하셨던 대전에 대한 궁금증이 크셨던 것 같습니다. “대전·제주는 오늘 조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결과가 나오면 보고 드리겠습니다.”하고 보고를 마쳤습니다.

    24일 오전 보고 시에는 저에게 메모지를 하나 건네주셨습니다. 입원기간이 길어지면서 문병객과 위로전보·편지 등이 답지하였고 이러한 상황을 개략적으로 보고 드렸는데, 대표님께서는 각계각층의 격려에 감사한 마음을 말로써 다할 수 없었던지라 이를 글로써 적어 저로 하여금 메시지를 전달해 주도록 하신 것입니다. 병실에 있던 세브란스 마크가 바탕에 새겨진 메모지에 자필로 쓰신 편지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나라당 지방선거 후보자와 당원 여러분께

    저의 갑작스런 사고로 인해 많은 염려를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점차 회복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제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여러분과 함께 하지 못하고 이렇게 병원에 있어서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비록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항상 마음은 여러분과 순간순간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후보자와 당원 여러분 힘내시고, 투표일까지 법을 어기지 마시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만나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2006.5.24 박 근 혜 드림

    26일에는 병상생활이 계속되는 동안 대표님의 건강회복에만 신경 써 오느라 기록으로라도 남겨둘 사진 한 장 찍지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 차에 일부 언론에서는 대표님 사진이라도 공개해야 하지 않느냐고 요청이 있어 대표님께 사진 촬영을 건의하였고, 대표님께서는 이를 받아들여 처음으로 병상 사진을 촬영하여 언론에 공개하게 되었습니다.

    27일 주치의인 탁 교수님이 이젠 퇴원해도 좋다는 최종 소견을 피력하셨고, 그에 따라 29일 오전 11시에 퇴원하기 위한 절차를 밟게 되었습니다. 퇴원 후의 행보에 대해 언론과 국민들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처음에는 선거일 전에 퇴원이 가능하다면 유세를 가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였습니다만, 지원유세를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료진을 비롯한 주위의 만류와 여론의 부담 때문에 저도 지원유세를 만류하고 있었습니다. 퇴원 당일 아침 대표님께서는 대전과 제주를 가시기로 결정하시면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병원에서 퇴원하는 마당에 당의 대표로서, 선대위 의장으로서 선거기간 중에 선거유세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한 일을 하는데 이런 저런 이유를 들어 유세를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정략적인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니 대표님의 원칙과 철학을 잘 알고 있는 저로서는 더 이상 대전으로 가시는 것을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 대표님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 대처해나갈 때 원칙과 명분이 있는 일에 대해서, 더욱이 책임을 져야 할 일에 있어서는 소신을 가지고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해 가시는 분입니다. 결국 29일엔 대전에서, 30일 엔 제주에서 지원유세를 하고, 선거 당일인 31일에는 고향인 대구에 가서 직접 투표를 하셨습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제가 가장 놀란 것은 대표님의 의연함과 인간적인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피습을 당하고 병원에 도착해서 당황해하는 저에게 하신 첫 말씀이 “많이 놀라셨죠?” 하시면서 오히려 안심시키고 위로의 말씀을 하실 때, 순간적으로 대표님이 살아오신 그간의 삶의 원천이 무엇이었던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대표님이 쓰신 일기 가운데 이런 구절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겪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 끊임없이 겪게 되는 어려움들이라 이제는 어느 정도 만성이 되었다. 옛날 같으면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생각되는 고통일 텐데도 지금은 눈물 한 방울 없이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1989년 11월 5일자 일기 중에서)”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급박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대표님의 삶의 원동력은 바로 오랫동안의 고통으로부터의 단련에서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병상에 계시면서 화제가 되었던 몇 가지 대표님의 말씀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위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병원에서 첫 말씀이 “많이 놀라셨죠?”라는 두 마디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에서 보이신 의연한 대처와 인간적인 배려가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두 번째 말씀은 수술실에 들어가기 직전에 하신 “지금은 선거중입니다. 당에서는 흔들림 없이 선거운동에 임하도록 지시하세요.”였고, 세 번째 말씀은 다음날 입원실에서 하신 “계획된 선거운동을 예정대로 차질 없이 추진하도록 지시하세요.“였습니다. 이 말씀들에서 대표로서의 책임을 다하시는 모습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네 번째 말씀이 “정치적으로 오버하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대표님의 피습으로 지방선거가 요동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지방선거의 본질을 흐리는 정략적 이용, 사실에 바탕을 두지 않는 여론호도, 근거 없는 정치공세로 인한 역풍 등을 경계하신 말씀으로, 위기 상황을 타개해 나가는 대표님의 의지와 결단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또한 개인적인 이익 등에 연연하지 않는 대표님의 관리능력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말씀은 수술 후 처음으로 당무와 지방선거 여론조사 보고를 드리는 중에 “대전은요?”하고 물으신 것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의 쟁점이 될 수밖에 없는 대전·충청권에 대한 관심의 표명입니다. 대표님께 부여된 중앙당 선거대책위원회 의장으로서의 역할과 사명을 잠시도 머릿속에서 떼어놓지 않는 책임감을 보여주셨습니다.

    여섯 번째는 저의 보고와 신문 등을 보시고 국민들의 관심과 위로·격려 등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국민들께서 염려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런 짤막한 몇 마디의 말에 대해 당에서는 물론이고 국민들께서도 매우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고 계십니다. 정치인이란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가리고, 말할 때와 장소를 가려 하는 진솔함과 성숙함을 갖추어야 합니다. 대표님은 이런 진솔함과 성숙함을 몇 마디의 말씀으로 보여주었고, 이로써 많은 국민들에게 감동을 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간 정치권에서 국민에게 상처만을 주어왔던 수많은 말과 비교해볼 때 대표님의 진정성이 더욱 두드러져 보이는 것입니다.

    모 신문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불행 중 다행으로 몇 가지의 기적과 같은 행운이 있었습니다. 칼날이 조금만 더 위아래로 그어졌다면 치명적일 수 있었다는 것과, 대표님의 침착한 응급지혈과 그나마 병원이 멀지 않아서 바로 응급조치를 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권위 있는 교수가 지방으로 가다가 아슬아슬하게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는 것과, 때마침 다른 수술이 없어 수술실이 확보되었다는 것 등입니다. 돌이켜보면 하늘이 도왔다는 주치의의 말이 실감나면서 한없이 다행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대표님이 병상에 계신동안 잊지 못할 것은, 자신을 일용직 노동자라고 소개하신 분이 찾아와서 대표님 빨리 회복하게 해달라고 하시면서 200㎖ 우유팩 4개롤 꼭 쥐어주고 가신 것입니다. 이 분의 정성을 통해 대표님이 국민들에게 어떠한 존재인가를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종이학 2000개를 접어서 보내주셨던 대전시민들의 정성과, 이화여대생의 편지가 대표님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산삼을 보내주셨던 김천의 한 분에게 일부러 비서진을 시켜 돌려보내면서 감사의 말씀을 일일이 챙겨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박사모 회원 여러분들께서는 밤마다 병원 앞에서 촛불을 켜놓고 대표님의 쾌유를 기원하신 일 등 저에게 감동을 가져다주는 일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대표님이 퇴원하시면서 하신 말씀 또한 우리 가슴에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저의 상처로 우리나라의 모든 상처가 봉합되고 대한민국이 하나 되는 계기가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아직도, 아니 앞으로 정말 대표님께서는 할 일이 많습니다. 대표님 말씀대로 대표님이 병원을 무사히 걸어나게시게 된 것도 아직도 할 일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찌 보면 대표님의 삶은 당신께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이 아니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 몸이면서도 당신 몸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대표님께서는 남은 인생은 덤이라고 생각하고 부강하고 안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비서실장으로서 병상에 계신 대표님을 대신해서 잠시 동안 대표님의 입과 몸이 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표님을 걱정해주셨던 당원동지 여러분, 의원님들, 찾아와 눈물을 보이시면서 걱정하시던 많은 분들, 그리고 위로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던 많은 국내외 인사 여러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그 과정에서 무엇보다도 소중한 대표님의 안위를 위해 불가피하게 대표님과의 직접 대면을 차단하고 대표님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공유하지 못한 점 양해바랍니다. 누가 이 역할을 맡았어도 어쩔 수 없는 조치였으리라 생각합니다.

    대표님 힘내세요! 국민이 있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