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14단독(김진동 판사) 526호 법정.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동국대 교수 강정구씨가 들어서자 장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법정 안 이곳 저곳에서 “빨갱이를 처벌하라” “평양으로 추방하라” 등의 거친 고함들이 터져나왔다. 정리들의 몇 차례 주의 후 김 판사가 입장했으며 이어 강씨측의 변호 심문이 시작되자, 장내는 일순간 쥐 죽은 듯 조용해 졌다.

    자주 빛의 개량한복을 입고 다소 지친 기색으로 피고인석에 자리잡은 강씨는 준비해 온 자료를 찬찬히 훝어 보면서 변호인의 심문에 차례 차례 답변해 나갔다. 약 3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재판에서 강씨는 자신의 학문적 좌표에 대한 당위성을 내세우면서 검찰의 공소내용을 일일이 반박해 나갔다.



    목을 축인 후, 답변에 나선 강씨는 “전쟁과 분단으로부터 시작된 민족사적 비극을 다시 맞아서는 안 되겠다는 학문적 고뇌를 하게 돼 평화통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가 이뤄졌고 이러다보니 당연히 미국과 주한미군에 대한 연구를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것이) 학문의 좌표로 귀결됐다”면서 자신의 학문적 좌표 설정 배경을 우선 설명했다.

    강씨는 이어 “6·25 전쟁, 정통성 문제 등 전형적인 ‘냉전성역’은 과학적 지식이 없는 그야말로 반공·반북 이데올로기에 의존해 맹목적으로 믿고 있는데 이는 허구고 거짓말”이라면서 “비합리적인 것을 합리화 하려다 보니 극단적이 되고 결국 폭력이 횡횡하게 됐다”고 했다. “거짓을 밝히고 진실을 드러내 진리를 규명하는 학문하는 사람의 자세로서 ‘냉전성역 허물기’를 학문적 좌표를 설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도 했다. 2001년 방북 당시 김일성 생가인 망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을 이어받아 통일위업 이룩하자’는 글을 남긴 혐의로, 또 작년 7월 한 인터넷 매체에 ‘6·25 전쟁은 통일전쟁’이라는 내용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적용돼 기소됐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학문적 자유라는 주장인 셈이다.

    강씨는 그러면서 “저의 학문이 객관적이라고 본다. ‘냉전성역’이라는 것이 기존 학계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으로 의심하지 않고 있어, 이런 허구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비판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자신의 일련의 행동에 대해 “학문적 주장으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과 같은) 검증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도 했다. 강씨는 이어 변호인측의 학문적 좌표에 대해 ‘국보법을 의식하거나 고려하지는 않았느냐’고 묻자, “고심 많이 했다. 그러나 국보법 때문에 저버릴 수만을 없었다. 이는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유죄를 받더라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강씨는 자신의 학문적 좌표인 ‘냉전성역 허물기’를 내세우면서 검찰의 공소내용에 대해서도 일일이 반박했다. 강씨는 우선 분단책임 문제와 관련, “전적으로 미국이라고 주장한 적도 없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으며, 6·25 전쟁의 성격 규정에 대해서는 “통일전쟁이라고 해서 침략전쟁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는 전쟁주체와 목표에 따른 분류개념이다. 통일전쟁이면서 얼마든지 침략전쟁으로 규정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이것이기 때문에 저것은 안 된다’고 부정하면 학문할 자격이 없다”고도 했다.

    강씨는 또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가 주로 ‘반미단체가 아니냐’며 외부 활동을 묻는 변호인측의 심문에는 “외부활동이 학문 활동이 아닌 것처럼 아는 것은 잘못이다. 학문 활동의 연장”이라면서 “교수평가항목에도 ‘외부의 봉사 실천’ 영역이 있다”고 반박했다. “전통적으로 선비의 항목에 지·행·합·일이 있다. 우리 학문 세계의 덕목이었다”며 강한 자부심도 내비쳤다.

    장시간 계속된 변호인측의 심문에 강씨가 지친 기색을 내보이자, 잠시 휴정이 됐으며 이 순간 법정 밖으로 나온 강씨를 보자 일부 참석자들은 “빨갱이 XX들, 부모도 없느냐” “빨갱이 이 XXX들아!” “빨갱이들과 어떻게 우리가족이 같이 사느냐” “광화문 네거리에서 총살시켜야 한다” “숭북교수 강정구는 평양으로 가라”는 등의 격한 고함이 터져 나왔다. 이에 맞서 강씨의 주장을 ‘옹호’하는 일부 참석자들도 “어디서 욕이야!” “어떤 놈이 법정에서 떠드느냐”면서 맞고함을 주고 받으면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어 진행된 재판은 30여분 동안 진행되다가 이달 31일 속행 공판을 진행하는 것으로 한 채 끝났다. 이들 참석자들은 공판이 끝난 직후에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서로 멱살을 주고받으면서 격한 몸싸움을 벌인 후에야 각자의 길로 발길을 돌렸다. 한 참석자는 울분에 못이겨 “XXX들, 굶어죽고 있는 북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저 XX들 다 북으로 보내버려”라고 서울중앙지법 로비에서 고래 고래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한편, 이날 공판 진행에 앞서 ‘자유개척청년단’ ‘무한전진’ ‘애국국민운동대연합’ ‘해군동지회’ ‘나라사랑시민연대’ ‘자유넷’ 등 보수단체와 ‘강정구 교수 탄압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등 일부 단체 회원 약 100여명은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플랜카드를 들고 기자회견을 하는 등 초반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뉴라이트 전국청년연합 장재완 상임대표는 “강정구 단죄해 대한민국이 살아있음을 보여주자”며 “이것은 학문의 자유도 아니고 표현의 자유도 아니다. 이것은 명백한 국가반역이며 내란음모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 참석자는 “학문의 자유는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는 테두리 안에서만 보장돼야 한다”면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건국사를 왜곡·날조하는 주장은 가치가 없다”고 발끈했다. “학문의 자유는 커녕, 먹고 마실 자유가 없는 북한에 대해서는 왜 한마디도 못하느냐”고도 했다.

    아울러 ‘강정구 교수 탄압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및 ‘국가보안법 폐지와 학문의 자유 수호’ 단체 회원 약 50여명은 “국가보안법 철폐하라. 학문적 자유를 보장하라, 강정구 교수에 대한 탄압을 중지하라”고 맞섰다.